우리의 실체

‘우리’라는 단어를 생각했다. 나보다 너가 먼저 있었다는 사실, 네가 있음으로 해서 너와 다른 내가 분별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무섭게 했다. 가장 무서운 적은 가까이 있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속내를 모른다. 멀리 있는 적은 뚜렷하고 적이 되어야 할 뚜렷한 이유와 거리와 방향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적이 될 수도 있는 너는, 피아로 갈라질 이유도, 거리도, 방향도 없다. 우리라는 내면으로 부터 폭발처럼 짜갈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균열과 단층은 적보다 날카롭고 더 야비할 것이다. 그것을 배신이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라는 믿음처럼 근거없는 믿음이 또 있을까? 우리 안의 나와 너는 별개이며, 우리로 감싸안기에는 너무 별개다. 너무 별개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믿음과 의리와 같은 단어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 남편은 아내 속에 들어있는 내력을, 아내는 남편의 마음을, 부모는 자식들의 일상을, 자식들은 부모들의 뼈저림을,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온갖 허위와 알게 되면 짜릿할 수 밖에 없는 진실들을 알려고 하지 않고 단지 사랑이라는 것으로 얼버부리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알려고 하면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온갖 괴물들을 우리는 애써외면하는 것이다. TV가 나온 후, 사람들은 더 이상 이웃과 만나지 않는다. 이웃의 애매모호한 표정 속에 간직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인간의 괴물성을 직면하지 않기 위해서 더 이상 이웃과 사귀지 않고, TV에 나오는 극명하고 추잡한 막장 드라마를 이웃으로 삼는 것이다. 이것이 너(You)의 실체라는 점이다. 너는 미지수 X이다.

This Post Has 4 Comments

  1. 후박나무

    삭막해진 세상.
    서로의 온기보다는 뜨겁게 달궈진 스마트폰과 더 많이 접촉하고 소통하는 사람들.
    이 속에서 저도 점점 차가운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아 씁쓸할 때가 있네요.

    1. 旅인

      아마 본질을 가리고 있는 외피, 윤리 도덕 그리고 종교적 신념이 중요한 이유일지도 모르지만, 이 시대는 이 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온갖 외피들을 벗겨내려는 작업들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삭막해지고 서로가 서로를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2. 아톱

    나도 정확히 모르고 너는 더 모르고 그런데 우리라니. 더더욱 모르겠는 거 아닐까요.
    참… 그러고보니 말씀하신 대로 그 말이 필요없다면 생기지 않았을 텐데 우리라는 게 묶이기 어렵다보니 의리 신뢰 믿음 친분 등등 이런 말이 생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사랑이 온전히 우리에게 존재했다면 사랑이란 단어도 없었을 텐데… 하는 생각. 없으니까 더욱 사랑을 외치는 현재가 우리의 불안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드네요.

    1. 旅인

      단어와 그 지시체가 완전히 일치한다면 언어와 사물 사이에 아무런 틈이 없기 때문에 단어도, 사유도, 사유하는 주체(나)도 없을 것이라는 것이 현대 언어학이나 심리학의 최종기착지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아톱님께서는 그 이론을 그냥 관통하신 셈입니다.

      그러니 의리, 신뢰, 사랑 등의 단어 속에는 의리, 신뢰, 사랑은 없고, 단지 의리란 이런 것이다 저런 것이다 라는 의미의 강요(insist)만 남게 되며 이런 허약한 의미의 결합 탓에 사람들은 언어를 사용할 수 있고 제멋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얻지만 대신 불안과 타인에 대한 공포를 얻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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