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타임즈

연애몽 : 당구장의 창 가에서

어제 허우샤오시엔(侯孝賢) 감독의 영화 ‘쓰리타임즈’를 보았다. 영화의 본 제목은 ‘最好的 時光’이다. 시제가 뚜렷하지 않은 이 중국어를 ‘가장 좋았던 시간’이라고 해야할 지, ‘가장 좋은 시간’이라고 번역해야할 지 주춤거리게 한다. 時光 또한 ‘시간’인지 ‘시간의 빛’이라고 해야할 지 번역에는 난점이 있는 제목임에는 틀림없다.

이 영화는 옴니버스식이다. 첫번째 이야기는 연애몽이다. 1966년의 카오슝을 배경으로 낡은 당구장을 관리하는 아가씨와 군에 입대한 사내의 이야기인데, 이들은 민남어를 사용한다. 두번째 이야기는 자유몽이다. 1911년 따다오청의 기루에서 기녀와 중국 시민의 근대화를 추구하는 신사의 만남을 그리고 있는데, 그들의 대화는 자막처리되고 있다. 마지막 이야기는 청춘몽이다. 2005년 타이뻬이를 배경으로 젊은 남녀의 다소 퇴페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다. 이들은 본토와 대만 모두의 표준어인 만다린으로 대화를 나눈다.

하지만 세편의 이야기에는 좋았다거나 좋다고 할만한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문제는 앞으로 더 좋아지거나 나아질 것 같다는 기대를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아무런 기대를 할 수 없을 때, 불행하게도 지금 이때야말로 어쩔 수 없이 ‘가장 좋은 시간’이라는 것, 바로 이것이 이 무료한 영화를 들여다보게 하는 것 같은데, 무료한 영화를 무료하게 들여다보는 사람이나, 영화의 주인공이나, 무료하고 한심하기는 매한가지다. 이것이 허우 감독의 뛰어남이 아닌가 싶다.

참고 : 쓰리 타임즈

This Post Has 5 Comments

  1. 旅인

    대만은 두개의 언어를 가진 슬픈 섬이다. 복건성 남부 사람(민남인)들이 17세기말 이후 대만에 들어와 살게 되면서 민남어가 이들의 언어가 되었다. 하지만 1949년 장개석 국민당 정부가 본토를 잃고 대만으로 들어와 대만 본토인이 된 민남사람들을 무력으로 다스리게 되면서 대만의 북부는 만다린이 생활어가 되고 토착인들이 밀려와 살게된 남부는 민남어를 주로 사용한다.
    두번째 이야기 때인 1911년에는 일제의 식민지 시대였다. 하지만 이때의 언어는 민남어만 사용되어 중국어 내부의 갈등은 없었을 것이지만, 지배언어는 일본어였을 것이다. 그래서 영화에서 식민지의 언어는 발음되지 않고 글로 쓰여진 것이 아닌가 싶다.

  2. 위소보루

    보고 싶어지네요. 제목은 영화 줄거리를 읽어보니 ‘가장 좋았던 시절의 빛’ 정도가 아닐까 싶은 생각입니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세개의 시대를 보여주기에 시간보다는 시절이 좀 더 맞지 않을까 합니다.

    다른 시절의 사랑 이야기에 국한되는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그 시대의 대만과 그 사랑의 대상이 되는 무언가와의 관계를 보여준 것인지가 궁금해집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여인님의 해석에 빌어, 대만이 가지고 있는 지정학적, 역사적 한계를 그려내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여인님께서 대만이 참 슬픈 섬이라고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아마도 전 회사에 다닐 당시 Formosa사를 방문하고 난 후의 포스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1. 旅인

      서기와 장진이 주인공으로 세번 나오는 옴니버스 영화입니다. ‘시절의 빛’이라는 번역어가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지정학적 역사적 문제는 거론되지 않습니다.

      포르모사가 있는 카오슝만해도 날씨가 화창해서 좀 낫겠지만, 2005년의 타이뻬이의 모습은 여전히 구질구질합니다.

      이 영화는 그의 영화, 戀戀風塵(1986)-연애몽, 海上花(1998)- 자유몽, 밀레니엄 맘보(?)- 청춘몽을 집대성한 작품 같습니다. 밀레니엄 맘보는 보지 못했습니다만, 그의 영화는 그다지 재미가 없습니다. 그는 삶의 리얼리티를 추구하지 드라마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3. 아톱

    마지막 문단의 말씀이 엄청 슬프게 들리는데 그래도 적확한 말 같습니다.
    요즘 영화관에 직접 발을 들여놓지 않으면 영화를 잘 안 보게 되는데 기회가 된다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삶을 노래하는 건 저에겐 언제나 흥미로운 소재라서.. 🙂

    1. 旅인

      허우샤오시엔 영화는 극장에서 본 적이 한번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의 비정성시가 너무 유명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동양을 대표하는 감독이라고 하지만 너무 상업성이 없는 영화를 만들어서 극장에서 상영하기엔 손님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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