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이고 강을 건너는 전철

땅거미로 까맣게 탄 철교 위로 하얗게 밝힌 차창을 이끌고 전철이 도심의 강을 건넌다. 열차의 바퀴소리는 늦은 햇살을 등에 지고 서쪽으로 잠잠히 흐르는 강의 소리에 지워졌다. 차창 속의 고달픈 하루를 보낸 자들의 지친 무표정은 보이지 않고, 전철이 지나간 교각 위로는 저녁이 여물고 있다.

하루살이들은 남은 생애를 탕진이라도 하려는 듯 맹렬히 동그라미를 그리며 날고 있다. 사람들은 저무는 강 건너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 하루의 여분 위에 밥상을 펴고 마른 숟가락을 밥그릇에 드리우고 남은 끼니를 때울 것이다.

그래서 저녁을 이고 강을 건너는 전철을 보면 마음이 느긋해진다.

8 thoughts on “저녁을 이고 강을 건너는 전철

  1. 햇살을 등에 지고, 강의 소리에 지워졌다, 하루의 여분 위에 등등의 표현이 진짜 멋져요.
    어떻게 하면 이런 표현들이 나오는 것인지요? ‘-‘
    여인님의 글을 보면, 지금 여기에 있는 순간들의 정수를 깊이 느끼시는 것 같아 부럽습니다.

    1. 의도하였다기보다 들어갈 말들이 저절로 선택되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 흰돌고래님도 글을 쓰다보면 글이 저절로 쓰여지듯 말입니다.
      인위적으로 애써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중에 저절로 되고 있는 부분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1. 정작 그 풍경을 볼 때는 아무 생각이 없이 참 아늑하다고만 느끼다가 쓰게 된 글입니다.

  2. 무언가 느즈막한 오후에 아궁이에서 때운 밥짓는 연기가 굴뚝으로 올라오는
    그런 붉게 저물어가는 시골 저녁이 떠오릅니다.

    퇴근길에 자전거를 타고가다가 보신 풍경이신가 보네요.

    1. 퇴근길은 동쪽으로 달려가기 때문에 노을이 지는 방향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풍경은 땅거미가 질 무렵 서쪽의 뚝섬 유원지 방향으로 달려갈 때, 청담대교 밑을 건너가는 7호선의 풍경입니다.

  3. 다독을 하시고 다작 하셨다는 게 느껴집니다.
    표현력에 감탄만이 나오네요.

    1. 다독은 아직 모자라는 것 같고, 블로그 포스트가 천개가 넘었으면 다작에 들어가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포스트의 면면을 보면 아쉽기가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이웃분들의 글을 읽으면서 같은 나이 때 내가 과연 이와 같은 생각과 글을 쓸 수 있었을까 하고 반문해보면 그렇다고 감히 말할 엄두가 서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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