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오후 세시 이십칠분

PM 3:27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이 나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다.

가을이 텅비어버려 하늘이 파랗던 날, 평상 위의 고추는 자줏빛으로 햇볕을 머금고 있다. 마침 바람부는 언덕 위에 내 생애를 햇살 아래 마악 널어놓은 참이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마을은 먼지와 가을 햇살 속으로 눈부시게 소실되고 산맥과 하늘은 까마득해서 전설같은데, 자신의 벗은 몸을 햇빛으로 가린 개울이 산과 들 사이로 스며들고 있다.

이때는 내 생애 속으로 덜거덕 정차한 세상의 오후 세시 이십칠분.

마침내 세상이 나를 살고 있었다는 것을 눈부신 햇살 아래, 느긋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다 그런 것이었다. 내가 세상을 살아가기가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나를 살아가기가 힘들었다는 이 나른한 이해(理解)의 아래, 널어논 생애가 뽀송하게 마르고 있다.

세상이 나를 살고 있다는 이 나른한 무화(無化)함 속으로 풍경이 흘러든다.

8 thoughts on “세상의 오후 세시 이십칠분”

    1. 성찰의 힘이라기 보다는 살아온 날들의 차이, 즉 군번이 좀 빠른 탓이라고 할까요. 젊을 때는 비겁하면서 용기가 있을 수 없고, 슬프면서 즐거울 수 없고, 불의하면서 정의로울 수 없었는데, 이제는 모두가 뒤죽박죽 뒤섞여 있어 비겁하면서도 용기를 갖게 되고, 즐거우면서도 슬프고, 누구보다 불의하면서도 정의를 외치는 모순들을 감내할 수 있게(감내할 수 밖에 없게)되어버린 탓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잘못인지 옳은 것인지 조차 모르게 되고 결국 그 모든 것의 구심점이던 내면의 자아가 점차 무력해지면서, ‘세상이 나를 살아가는 것’이라는 자신의 삶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게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때때로 내가 무화되고 세상이 나를 살아간다는 느낌이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1. 흰돌고래님에게 단 댓글에 대한 흰돌고래님의 의문이 담긴 답글에 댓글을 달려다가 이 포스트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댓글을 달기에는 가을햇빛과 바람이 너무 좋았던 하루가 아닌가 싶습니다.

  1. 멋진 글이네요.
    이걸 보다 보니 저도 세상이 힘든게 아니라 내가 세상을, 다른 이들을 힘들게 했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편안하게 둥글 둥글 살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

    1. 특히 나를 둘러싼 가족, 회사동료, 친구 등 조그만 세상들이 저를 버텨내기가 그리 수월치는 않았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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