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의 번지수

1.

잇빨을 뽑고 염증이 있으니 지어준 소염제와 항생제를 다 먹어야 한다고 했다. 약을 다 먹고 난 삼일 후에도 입 안에는 아픔이 감돌았다. 전에 먹다 남었던 약을 먹으며 아픔을 삼켰다. 하지만 통증이 입 안 어디에서 반짝하고 일어나 어느 쪽으로 물결을 지으며 번져나가는 지를 알 수 없었다.

칫솔질에도 아프지 않았던 사라진 잇빨과 잇몸은 미지근한 수돗물에 화들짝 놀랐다. 잇빨을 닦고 치약을 행궈낸 양칫물에 뼈가 삭는듯한 아픔이 왈칵 쏟아졌고 한 5분간 통증은 목과 정수리 부분까지 번져나간 후 서서히 소멸되었다. 아픔의 끄트머리는 따스한 고요함과 서로 뒤섞이며 사라졌다.

블로그의 제목을 ‘adayof…Homo-Babiens’라고 지은 싯점부터 살(肉) 위에 돌(잇빨)이 자라고 박혀있다는 그 사실이야말로 당연한 것이 아니라 기괴한 일이며, 살에 돌이 끼어 있거나 돌 사이에 살이 섞여 있다는 것이 당연히 아플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서서히 알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머리를 굴리거나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科의 동물인 Homo sapiens sapiens이기 이전에 Homo Babiens, 밥(Bab)을 먹어야 하는(Babius) 동물(Babiens)이라는 절대절명의 명제는 나의 살 속에서 허물어져 내리는 돌들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한 것인지도 모른다.

두 주간 동안 아픔의 번지수가 어디쯤인지를 찾았다. 아픔이 잇빨이 뽑힌 자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 옆의 다른 잇빨에서 비롯한다는 것을 가까스로 알았다. 뽑았던 잇빨 치주의 염증 뿐 아니라 다른 잇빨의 통증 또한 나를 괴롭혀 왔다는 것을 몰랐다. 당면한 고통에 숨어있던 2차의 통증은 잇빨에 뽑혀져 나간 후에 1차 통증으로 현재화되었지만, 나는 아픔의 번지수가 뽑혀져 나간 잇빨에 머물고 있다고 오인했던 것이다.

결국 잇빨을 갈고 돌 속에 촉수를 뻗고 있는 신경을 들어내는 치료를 했다.

의사는 내가 들여다 보지 못하는 나의 잇빨을 들여다 보면서, 늘 그렇듯 혀를 차면서 소식을 전했다.

“얼마 남지 않았지만, 쓸 수 있을 때까지 써봅시다.”

2.

신경 치료를 하고 지하철을 두번인가 갈아타고 올라온 지상은 가을의 폭양으로 가득했다. 볕이 있는 정오는 더웠고, 가로수 그늘 아래 기온은 섭씨 5도 정도 급강하했다.

어금니 깊숙히 찔러 넣은 마취주사 때문에 목구멍 절반이 마비된 채, 건널목에 서서 가을 속으로 햇빛을 쨍쨍 반사하며 질주하는 차들 너머로 몽롱한 거리를 보았다.

“물질이 없는 정신만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나는 그렇게 반문하고 있었다.

존재할 수 있겠지만, 물질과 정신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물질이 정신의 한계를 짓고 정신이 물질에 영향을 미치는 이 사바세계와는 다르리라는 것, 물질이라는 한계가 없는 쾌락과 고통으로 가득한 현실이 존재하며, 그 쾌락과 고통에는 몸이 없으리라는 것, 그것이 결론이었다.

This Post Has 6 Comments

  1. 흰돌고래

    치통 때문에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셨겠어요.

    저는 어릴적을 제외하면,
    사랑니를 뽑은 것, 그리고 치아교정을 하면서 멀쩡한 이를 뽑은 적이 있었네요.
    사랑니가 참 아팠던 기억이 있는데.. 여인님의 치통에 비하면 비할바가 못되는 듯 해요.

    정확한 근거도 없으면서, 어렴풋이나마 물질이 없는 세계가 있을거라고 믿고 있어요. (저처럼 정확한 인과 관계를 따지는 사람이 말이에요.)
    그런데 물질이라는 한계가 없는 쾌락과 고통이 가득한 현실이라니. 물질이 없는 세계는, 우리가 사는 지금 여기와는 다른 보다 의식 높은 세계일거라고 생각했는데. 한계마저 없는 고통이라면, 싫으네요. T_T

    1. 旅인

      사고시뮬레이션이라는 것이 있는데, 사고실험이죠. 우리는 머리 속으로 천국과 지옥 그리고 타임머신, 신, 시간과 공간의 끝, 모든 것을 실험해볼 수 있죠. 이 실험은 모든 상상력을 키워갈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상상으로 가능한 것들이 왜 현실에서는 안되는가 하는 것은, 결국 현실이야말로 가장 최적이라는 ‘보수적인 가설’ 즉 ‘현실적’이라는 명제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자본주의가 최적이라는 ‘보수적인 가설’에만 머물 수 없기에 ‘강남 세모녀’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 세상을 꿈꾸게 됩니다.

  2. 아톱

    통증때문에 고생 많으셨겠습니다
    딱딱한 걸 한 번 잘못 씹어도 그 통증이 오래가는 법인데 신경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었으니 오죽했을까 싶네요
    여기저기 안 아픈 곳이 없었던 저는 아픈 거라면 이골이 난 상태이고 웬만한 것은 참을 만 하지만 치아에 관련한 아픔은 상상이상으로 견디기 힘든 일이긴 하더군요
    모쪼록 빨리 치유되시길 빕니다

    주변 사람들은 천상의 세계가 존재할 것처럼 생각 많이 하더군요 아무래도 종교인이 많아서 그러겠지만 전 생각이 좀 달라요
    더 특별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말씀대로 이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거든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물질이 없고 영혼만 있다는 것 그 자체가 고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1. 旅인

      죽은 다음에도 현실과 다르지 않다면 미춰버릴 지도 모르기 때문에, 지금의 빌어먹을 현실과 달라야만 한다는 MUST 명제가 아닐까요?

      죽고 난 후의 문제가 아니라, 빌어먹을 이 놈의 세상을 어떻게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힘들어도 열심히 버텨내면 저 세상은 훨씬 살기 편할꺼야라는 희망인지 변명인지를 만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주 재미있는 것은 지옥에 대한 상상을 하긴 쉽지만, 천국에 대한 상상을 하기는 몹시 어렵다는 것입니다. 영원하고 끝없는 고통에 대한 생각은 가능하지만, 영원하고 끝없는 쾌락에 대한 상상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3. 후박나무

    많이 아프셨겠어요.ㅠㅠ
    시간이 흘러가면서 여기저기 아픈 곳이 나타나고,
    그것을 통해 세월의 무게와 무상함을 맛보게 되는 느낌.
    좀 쓸쓸하고 허한 것 같아요.ㅠ

    지금과는 다른 세상. 그 속에서 고통도 쾌락도 없이 충만한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의 여러가지 고통들도 참고, 견뎌내볼만할까요?

    1. 旅인

      벌써 그 고통에 대해서 다 잊어버린 것 같습니다. 저도 세월의 무게와 무상함에 대해서 맛보게 되리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마주하게 되는 것은 불편함입니다. 불편함과 함께 하면서 육신의 노쇄함을 느끼고 무상함을 깨닫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열반인지 깨달음인지 모르겠지만, 이 세상의 수많은 고통과 번뇌는 천상계라면 깨달음에 이르고자 하는 동기를 얻기 어렵다는 불교의 말씀과 이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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