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아침이다

아침이면 자전거를 타고 골방으로 간다. 다리에 올라서면 서울의 가장 낮은 곳이 보인다. 낮은 곳으로 강물이 모이고, 그 오목한 위로 구름이 보이고, 구름 사이로 하늘이다.

오늘 아침 볕은 구름 아래로 그림자를 끌며 낮게 도시로 스며든다. 강 가의 건물들은 속수무책으로 아침에게 한쪽 등을 드러내놓았고 그 등에는 햇빛이 아로새겨져 있다.

그리고 가을이다.

This Post Has 12 Comments

  1. 위소보루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시는군요. 아침엔 제법 날씨가 선선하다 못해 춥기도 했습니다.

    오늘 지하철을 타려고 개찰구에서 카드를 댔을 때 지난 한달여 간 쌓여왔던 교통비들이 리셋되었음을 느끼고는 그제서야 10월이 시작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큼 다가온 가을이었습니다.

    1. 旅인

      하늘 30 구름 70의 날들을 좋아하는데 어제 아침이 그랬습니다. 오늘은 하늘이 잔뜩 흐리더니 조금 전에는 비가…
      추석이 일러서 그런가 가을이 빨리 오는 것 같습니다.

  2. 리얼리티

    가을의 눈을 가진 이는 어떤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사람일까요?
    애니의 한 장면이 떠오를 것 같은 글이예요…

    현재를 살아가면서 볼 수 있는 것들은 자신이 느낄 수 있는 것들의 전부라는 생각에
    가을의 눈을 가진이는 가을을 가진 걸꺼라는…
    사계절 중 가을은 가장 넉넉한 계절이란 생각이예요.
    하늘은 더 높고 더 넓어진 시야에서 이룬 것들의 자리를 옮겨야 하기도 하는~~

    1. 旅인

      秋水같은 눈동자라면 깊고 그윽하여 그 눈을 바라보면 바라본 사람의 영혼이 빨려들어갈 것 같거나 맑고 고요하여 침묵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릅니다.

      조금 더 지나면 추수로 개울물이 다시 부풀어 오르게 되는데 그 물은 맑아서 바닥을 다 비추이는 것은 물론 하늘과 숲과 도시의 건물의 모습들을 다 담을 수 있습니다.

      가을이면 아무래도 마음이 고요해지는 것 같습니다.

    2. 리얼리티

      답글에 묘사된 가을이 너무 투명해서
      가을을 마음에 담고서 하늘을 보게 되네요~
      우리는 우리가 기억하는 것들과 생각하는 것들로
      얼마나 풍족하게 살수 있는지…
      언젠가 글에서 추수에 대한 묘사를 읽은 기억이
      나네요~~

    3. 旅인

      아마 쌍계사에 대한 글 속에 추수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 시정은 10km 남산이 바로 눈 앞에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일기예보에는 일주일 내내 노란 해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정말 가을인가 봅니다.
      이제 아시안게임이 끝나 살고 계신 그 곳도 조용해지겠네요.
      저는 가을과 겨울을 좋아하는 편이라 요즘 마음이 흡족합니다.

  3. 흰돌

    골방이 어디인가요?
    묘사가 탁월하셔요:*)
    자세히 오래오래 바라보면 그런 눈이 생기는 건가요 –

    1. 旅인

      골방은 집에서 자전거로 35분 거리입니다. 그 곳으로 가면 창문도 없이 복도로 난 문과 대여섯평의 벽으로 둘러싸인 골방이 있습니다. 이 글 전날 쓴 포스트에 골방이 어떤 곳인가를 설명했습니다.^^

      때로 간혹 매일보던 풍경이 미치도록 찬란하게 변해있다거나, 바깥 세상에 널어논 인생과 같은 모습일 때 어떤 철자법으로 그것을 써야 하나 생각하게 될 때가 생깁니다. 시월 초하루날 아침의 풍경이 그랬나 봅니다.

  4. 후박나무

    문장이 아름다워요^ ^

    아~ 정말 이제 가을이네요.
    3일간의 연휴. 가을을 만끽하시며 평안하게 보내셔요~~^^

    1. 旅인

      구름 밑으로 햇빛이 내려앉는 강변의 아침 소경이 아름다웠을 뿐 입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소복히 낙엽이 쌓이겠네요. 오늘 아침 은행열매들이 쏟아져 내린 길에는 냄새들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5. 아톱

    저도 가을을 좋아했습니다.
    차분함과 뭔지 모를 쓸쓸함이 공존하는 가을이 좋았어요.
    어느 순간부터 가을이 두려워지기 시작했어요.
    여름과 가을은 좋아함에서 두려움으로 바뀌었지만 그 맑은 기운만큼은 아직 마음 속에 남아 있습니다.
    건강해지면 곧 즐길 수 있겠지요. 여인님처럼…^^

    1. 旅인

      저도 약한 아토피 피부염이 있는데, 가을이 되고 건조해지면 피부가 가려워지지 시작합니다.
      저도 체력이 떨어지고 기분에 따라 가려움이 심해지더군요.
      하지만 여름의 더위와 땀을 버틸 수가 없어서 가을을 좋아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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