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인지 오늘인지

여름이다. 땀에 베개가 젖는다. 열대야에 켠 선풍기는 발등을 매만지고 나는 가면 속에 빠진다. 잠 속에 집 앞 도로로 라이트를 하얗게 켠 차들이 언덕을 올라와 다시 내려간다. 밤벌레는 밤을 갉아먹고, 남자 하나가 슬리퍼를 탈탈 끌며 불꺼진 골목길을 간다. 검은 골목 끝에는 하얀 얼굴을 한 24시간 편의점이 있다. 사는 것이 땀에 찌든 여름밤의 열기같기도 하고, 잠든 골목을 울리는 슬리퍼 소리처럼 외롭기도 하지만, 불을 밝힌 편의점이 피곤할 리는 없다. 나의 잠은 온갖 세상의 소식들로 얼룩지고 몇번인가 자다 깨다를 반복한 끝에,

문득 일어났다. 어제인지 오늘인지를 헤아리기 위하여, 몇시간 간격으로 깨어났는지를 나누기 위하여, 밤 사이에 거실과 식탁이 누구에 의하여 어떻게 어질러졌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시계를 본다. 4시 20분. 육신은 고달프지만 하루가 무르익기 시작할 무렵이다.

마른 장마의 아침에 우는 매미의 소리는 끝이 늘어지지 않고 짧다.

울어라! 매미야. 7년, 11년, 13년동안 굼벵이로 땅을 파먹다가, 매미가 되어 우는 것이야 겨우 한달이 채 못되거늘.
7월의 하늘이 깨져도 좋으니 울어라.

낮에는 발터 벤야민의 글을 읽었다. 졸지는 않았지만 정신은 모아지지 않았다.

“1900년 전후에 기술적 복제는 그것이 전승된 예술작품 전체를 대상으로 만들고 예술작품의 영향력에 심대한 변화를 끼치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예술의 작업방식에서 독자적인 자리를 점유하게 될 정도의 수준에 도달했다.”

사진과 영화가 예술이냐를 따지기 이전에, 그것들이 고전적 예술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시 묻고 싶다, 무엇이 예술이냐고?

7/28일에…

오전에 강변으로 나가니 구름과 하늘이 뒤섞여 도시는 나즈막했다. 강변을 따라 내륙풍이 한강하구 쪽으로 분다. 시원하다. 그리고 7월이 서서히 끝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요즘 도시에서 우는 매미는 밤매미인가 보다. 해가 뜰 무렵에는 맴맴대지만, 한낮에는 치르르하고 울기만 할 뿐, 맴맴하고 소리높혀 울지는 않는다.

매미가 울음을 멈춘다면 한 생애가 끝나는 것이겠지.

7/29일에…

This Post Has 18 Comments

  1. 아톱

    요즘 저는 지속적으로 울어대는 그 메미소리가 귀에 거슬릴 때가 많더라고요.
    그게 아마 토종메미가 아니라서 그렇다고 들은 것 같은데 이명소리처럼 수십수백마리가 메~~!!!!!!! 하는 날엔 귀가 얼얼할 정도였어요.
    메엠~! 메엠~! 하는 소리가 듣고 싶은데 요즘은 갈수록 그런 메미가 도심에는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조금 씁쓸하네요.
    이제 장마도 끝났고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할 텐데 무더위에 지쳐 잠 못 드시지 마시고 기분좋은 여름 보내시길 바랍니다.^^

    1. 旅인

      이 동네의 매미가 우는 소리는 좀 불쌍합니다. 낮에는 별로 울지도 않고 날이 흐리거나 새벽 어스름 때나 맴맴하고 우니… 세상의 매미가 다 그렇게 기운이 없나 했는데, 부산에도 그런가 봅니다.

      좀 시끄러워도 기운들 내야 하는데…

      아무튼 무더운 날씨가 빨리 지나가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톱님도 더위먹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요.

  2. 위소보루

    낮의 매미는 치열하지만 밤의 매미는 고요한 것 같습니다. 평일에 쉬시는걸 보니 휴가기간이 아니신가 합니다. 여름날의 한낮엔 시간이 더디게 가면서 모든 풍경이 눈에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즐거운 휴가 보내시기 바랍니다.

    1. 旅인

      예 잘 보내겠습니다.

      밤 매미는 새벽에서 아침 사이나 흐린 날 많이 운다고 합니다. 더운 한 낮은 피하는 모양입니다.

      잠이나 푹 자고 싶습니다.

  3. ree얼리티

    맴맴 소리내 울지않는 매미는 밤매미인가요.?
    울음소리로 자신을 대변하는 매미는 처량한가요.?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소리내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매미보다 못한 걸까요?
    힘이 좋은 매미는 높이 올라가 짝집기에 유리하다는 아이에 말에
    나무 위를 올려다 봅니다. 맴맴 우렁차게 우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아이와 걷습니다.
    소리가, 바람이 뒤에서 따라옵니다.

    1. 旅인

      한낮 하늘이 깨져라 울어대는 매미소리는 장마가 끝나고 곧 가을이 올 것 같아 듣기 좋습니다. 하지만 비오는 날이나 아직 날이 새지도 않았는데 우는 매미소리는 어쩐지 처량합니다.
      매미나 나무나 소리나 다 바람에 속한 것이라 좋습니다.

    2. ree얼리티

      며칠 전 저희집 방충망에 매미가 앉았어요.
      “어쩐 일이니?”
      “네 얘기 요즘 많이 하니까 누군가 보러왔니?”
      사진을 찍어주고, 기억할께 애써 찾아왔으니
      하면서 글을 쓰려는데 우렁차게 우네요.
      그렇게 가까이서 우는 모습은 처음봐요.~~
      꼬리를 흔들면서 그렇게…
      짝짓기가 ‘짝집기’인 줄 알았어요.^^
      사람처럼 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나봐요.
      글을 쓰다보면 귀에는 익은데 막상 쓰고 나면
      낯선 느낌이 들때가 있어요.
      그러면서 생각해요. 낯섬 – 별거 아니구나.~~

    3. 旅인

      말은 생각처럼 흘러가는데, 글은 남아있고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산사의 여름 새벽, 안개가 가득차 있을 때면 제가 자던 방벽에 온기를 찾아온 벌레들이 까맣게 매달려 있곤 했습니다. 장수벌레, 풍뎅이, 매미 등 놈들을 아로나민통에 넣고 라이터로 열기를 채워주면 날개를 붕붕대다가 안개 속 아침을 향해 날아가곤 했습니다.
      방충망에서 울던 매미의 소리란 얼마나 까칠했을까요?

    4. ree얼리티

      자기의 울음을 옆에서 들어주는 사람들에게
      무슨 소린지 헤아려보려는 사람들에게
      신나서 우는 매미의 울음은 울음이 아니라
      장난처럼 꽁지를 움직이는게 신기했어요.
      다르게 산다는 건 이런 거구나…
      낯설지만 눈에 띄는 그래서 얘기를 할 수 있는
      그래도 지켜줄 순 없었네요.
      그와 나는 달라서 방법을 몰랐거든요.
      얼마쯤 지난 후 사라진 모습에
      ‘어디로 간 거니’그 곳을 보고 묻는게 다였네요.

    5. 旅인

      매미의 울음은 성대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소리판을 긁어내는 소리라서 그런가 봅니다.

  4. 후박나무

    꿈자리가 뒤숭숭하고, 새벽에 잠을 뒤척이게 되는 요즘입니다.
    머리가 무겁고 멍하기도 한….

    이제 여름도 한 달 정도…
    아직 남은 날이 많게 느껴지긴 하지만, 돌아보면 어느덧 시원한 바람이 불겠죠?
    그때까지 홧팅!!^^

    1. 旅인

      온도보다 습도가 좀 낮아지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빨리 여름이 지나가면 좋겠습니가.

  5. ree메인

    ‘여름에 베개에 땀이 젖는다.’ 왠지 이쪽이 더 익숙한 문장으로, 난 그런 무더위에 태어나 세상빛에 눈물만큼 땀을 흘리며 기억나지 않는 쓰라림에 땀을 흘리며 첫 세상을 맞이한다.
    내 삶이 그저 자연이었다면 나 또한 매미처럼 잠깐 빛을 보고 도태되었을 것을,
    나를 끌어안고 달래는 어머니의 손길이 있어 이 약한 한 목숨, 그 여름의 고비를 견뎌냈다. 그리고 스물네번째 여름을 맞이할 수 있게 됐다.

    다행스러운 것들의 연속, 그런 삶. 한가지 아쉬운건
    ‘너무 여러 여름을 견뎌낸 덕에 이젠 그 더위를 버텨내는 것만으로 만족하게 된걸까’
    ‘그때의 매미닮은 세상을 마주한 목청의 울음처럼 소리법을, 이젠 잊어버린 건 아닐까’

    날 일깨우는 소리, 한해의 여름.

    (다시한번) 다행히,
    이번 여름 나에겐 또다른 선물들이 있다.

    ‘만남’
    소중히 기억해야 할

    ‘그들의 연속’

    – – –

    어쩌다 이런 방식의 댓글이 쓰여지게 됐는지 저도 의아할정도예요
    왠지.. 순간 댓글을 쓰고있다는걸 잊고 ‘뭔가 보이는 글’을 쓰고 말았네요..

    조심스럽습니다 이 공간은 제게..
    들어오는 사람들도 많고 (오랜 관계가 있으신 분들이신것같고)
    이렇게 다시 제 댓글을 보니.. 다른 분들과 너무 다르다는 생각이 들어 비밀글로 바꿔버렸..어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스무살 즈음에,
    그 만남을 동경했습니다. ‘어떻게 그 젊은 시인은 편지를 보낼 생각을 했을까?’
    편지가 소개글이 되고, 사연이 되고, 물음이 되고, 시가 되고…
    왠지 점점 읽을수록 젊은 시인과 답하는 시인을 구분지어 비교하게되는게 아니라
    서로의 그 시너지에 감탄하며 – ‘편지라는 형태의 그들의 만남이 계속 이어지길..’ 바랬..네요

    하지만 그것도 한때, 라는 걸..

    그렇게 용기있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내보여
    시대의 차이를 극복한 만남-소통도,
    젊은 시인도, 릴케도

    책 페이지가 끝나듯
    여운을 남긴채.

    ‘네가 있고, 여인이 있고, 그리고 또하나의 공간이 있는 것 같다’

    그런 만남을 동경했던 걸 알았던 엄마가 소개해준 여인님,
    어떻게 시작했는지도 갑작스러워 ‘내가 용기를 내었는지도 잘 모르겠어.. 뭔가 바라기만 한 건

    아닐까 징징거리는 모습은 싫은데…’
    그렇게 우왕좌왕하고 있을때 ‘두려워하지말고 내보이라’고 말했고, 그게 내안에 징처럼 울려
    ‘뭘까 이느낌은…’ 한동안 그 울림에 울림에 울림이 퍼지고 퍼지길 반복했어요.

    ‘그래서 용기를 내야겠다’고..
    하지만 이 방식은 좀 지나치지 않을까 ‘역시 보이는 것도 보여지는 것에는 차이가 있기에..’

    “그런 또하나의 공간에서 하는 말 같아. 그게 어떻게 보여질 지는..”

    이렇게 다가가도-멤돌아도
    괜찮을런지요..

    1. 旅인

      편지와 일기는 무척 다릅니다. 자신과 대화하는 일기는 자신을 초월하기가 어렵습니다.일기는 자기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표현을 더하며 더욱 두루뭉실해지지만 편지는 글로써 표현되지 않는 부분은 잘라내야만 합니다.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쓰기를 포기하거나 설명할 수 있게 표현의 날을 갈아야 하며, 이해시키기 어려운 것은 이해시키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을 필경이라고 하나 봅니다. 붓과 펜으로 여름 한철 밭을 가는 것처럼 고력을 기울여야 간신히 남들이 돌아볼 수 있는 글 한줄을 쓸 수 있다는 의미인지도 모릅니다.

      머물다가 가신다면 저는 늘 환영입니다.

  6. ree메인

    글이 처음부터 무거운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남겨지고 돌아보기 위해 그리고 전해짐을 위해 갈고닦다보면 그 무게감이 늘어납니다. 어째 갈고닦는데 부피가 늘어납니다. 나올 수 있는 구멍은 풍선의 바람구멍처럼 작은데 비로소 내안에 가득한 이리튈지 저리튈지 모르는 공기방울들이 있다는 것에 당황합니다. 그렇기에 더 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역시 그 상태로는 전해지기에 버거울테니…
    그 과정의 무게감인 것 같습니다. 자신을 알아가는. 자신을 내보이는.
    글을 읽어내는 게, 적어내려간다는 게, 처음부터 이렇게 무겁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초월하는-다른이와 이어지는, 그 간결한 글 한줄을 만나기 위해 이렇게,

    ‘필경’란 단어. 마음에 새기고 갑니다.
    (이건 그림에 대한 견해지만, 붓으로 선을 그을때마다 얼마나 얇은 선부터 두껍고 힘있는 선까지 표현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그리고 그 강약과 길이-간격을 가늠하기위해선 한해가-한평생이여도
    매번 새로운 것 같다는 순간이지만 긴 인상이..)

    1. 旅인

      아마 어린 시절과 나이든 시절의 간빙기적 애로인 것 같습니다. 자신을 발산해야한다는 점과 자신을 절제해야한다는 두가지가 과제로 남아있는 시절이지요. 저도 그 나이 때에 글쓰기가 몹시 힘들었습니다. 저 나름대로 표현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제 스스로도 제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들을 정리해나가는 기술을 배워야 했지요. 책을 읽으면서 제 생각을 정리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배우면서 조금씩 생각을 가다듬었다고나 할까요?

      김훈씨의 ‘칼의 노래’를 읽으면서 필경의 노고를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천재성이 아니라 글은 노동이라는 것을…

  7. 흰돌

    소리가 바람에 속하는 것이군요..
    멋져요:-)
    그런데 나무는 어떻게 바람에 속하게 되는건가요?

    1. 旅인

      바람이 나무에 속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소리는 바람을 귀로 아는 것이라면, 나무와 풀이 누우면 바람이 부는 것을 눈으로 알게 되죠. 나뭇잎 사이를 바람이 지나며 노래를 하기도 하고…
      주역에서는 손목(巽木 바람 나무)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가 죽으면 가마니에 말아 높은 나무가지 사이에 풍장을 지내고, 나무로 배를 만들어 바람의 힘으로 바다를 건너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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