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하신 지름신

KLH 21 External

요즘 음악을 많이 듣습니다. 하지만 음악을 남들보다 좋아해서는 아닙니다.

어렸을 적엔 음악을 들으면 울었습니다. 박재란씨의 ‘산 너머 남촌에는’이란 음악을 들으면 방 안이 문득 깜깜해지고 벽들이 나로 부터 멀어져 가는 느낌이 들면서 왠지 모르게 슬퍼졌습니다. 라디오에서 “오~ 오~ 오~ 새애~애드 무비이”라고 새드 무비의 가사가 흘러나오면, 가슴 속이 간질간질해서 견딜 수가 없었지요.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아버지의 담배갑에 코를 박고 심호흡을 몇번인가 하고 나면 진정이 되곤 했습니다. 그런 저를 보고 어른들은 참 이상하다고 하셨지요. 담배갑에서 새어나오는 연초냄새가 얼마나 시원한지는 모르실 겁니다.

음악을 듣게 된 것은 중학교 때의 친구 때문이지요. 클래식같은 것을 억지로 들었고 그때도 가요와 같은 것은 듣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93.1, KBS 제1FM을 켜 놓고 그냥 듣습니다. 클래식도 국악도 다른나라의 음악도 재즈도 나오는대로 듣습니다. 곡명을 알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곡이 흘러나와도 그냥 흘려보내며 듣습니다.

최근에 부쩍 음악을 많이 듣게된 데는, 쓸데없는 취미 때문입니다. 값싼 오디오를 사다가 소리가 뭐가 다른가? 하고 들어보는 것입니다.

지난 주, 토요일에 사진의 스피커가 15만원이라고 오디오 중고장터에 떴습니다. 사진은 그럴듯해 보입니다만, 스피치와 같은 털많은 강아지를 목욕시키려고 물에 집어넣으면 바람빠진 것처럼 1/3로 축소되듯, 앞면의 그릴을 벗겨내면 직경이 10Cm(4″) 밖에 안되는 볼품없는 풀레인지가 딸랑 하나 들어있을 뿐 입니다.

사지 말자, 참자, 스피커가 벌써 몇개냐 하다가 결국 사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스피커는 KLH 21라는 라디오에 연결해서 스테레오로 듣기 위한 스피커입니다. 따라서 2개 1조로 파는 것이 아니라, 1개씩 팔던 스피커입니다. 출력이 낮은 탁상용 라디오용이라 스피커가 받아들일 수 있는 내입력의 한계도 상당히 낮고, 결코 하이 피델리티를 지향한 제품은 아닙니다.

속는 셈치고 가져온 스피커를 앰프에 연결했습니다. 그랬더니, 상식을 초월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밀폐형 스피커에 소형 풀레인지이지만 소리의 박력은 놀랄만 했으며, 소리의 명료성  또한 뛰어났지만, 무엇보다 저를 감탄하게 한 것은 울림이었습니다.

그리고 통에서 유닛을 꺼내보았더니 낱개로 팔았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두개 다 1966.9.19일이라고 날짜가 찍혀있습니다.

요즘은 시험하듯 스피커를 듣고 있는 셈입니다.

어떤 인연으로 이 스피커가 48년동안 세상을 떠돌다가 제 손으로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오랫동안 간직하며 듣고 즐기고 싶습니다.

공자님께서는 젠틀맨이란 모름지기 시로 일어나고, 예로 서며, 음악으로 이룬다(興於詩 立於禮 成於樂)고 했습니다. 비록 제가 일어서지도, 똑바로 서 있지도, 이룬 것도 없지만, 음악을 즐긴다(樂於樂)고 크게 허물은 되지 않겠지요?

12 thoughts on “재림하신 지름신

  1. 파동에도 영혼의 끌림이 있나봐요..
    스피커의 사연에서, 한 사람의 연을 만난듯한 감정이 전해져요

    ‘이전 스피커를 쓰던, 혹은 스피커를 만든 이의 연이 저 사물에 파동으로 남겨져 있는 걸까?’

    사람은 눈을 마주하면
    미세하게 흔들리는 그 떨림에서
    왠지 이어질 것 같다는 감정을 느끼곤 해요. 근데 가끔 사물에서도 그럴 때가 있어요
    사물이 말을 걸어온 것도, 나에게 다가온 것도, 다른 존재로 변한 것도 아닌데
    나의 눈동자가 떨림으로 응답 할때,

    그 작은 차이가, 오랜시간 함께하고픈 존재로, 파동으로…

    제 모니터 옆 요란하게 굴곡진 스피커하고는 상이하게
    정가는 네모난 나무상자에 얇은 먹선으로 그림을 그려넣고 싶은 부드러운 천을 두룬
    여인님의 스피커,

    ^^; 정말 왠지 그 작은 차이를 발견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저도!

    1. 1960년대말에 나온 스피커로 당시에는 몹시 참신한 디자인이었겠지요. 하지만 나무로 틀을 짜고 아마포로 그릴을 만든 점 등이 마음에 듭니다.
      ree메인님처럼 그림을 그리는 분들은 그릴을 캔버스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바이올린 등의 악기가 수명이 다하는 싯점에 가장 좋은 소리를 내듯, 48년이라는 세월은 삭아내리기도 하지만 좋은 소리를 내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제 아껴서 잘 들어야 겠습니다.

  2. 여인님의 대나무숲에서 아이의 댓글을 발견하니 감회가 새롭네요.~~
    줄 수 있는 것이 적어서 안쓰러웠던 아이에게 문을 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산책을 하며 저에게 많은 용기를 준 아이예요.
    서로 성장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게 해 준 고마운 아이…
    엄마의 나침판을 주고 싶은데 작동이 잘 안되는 무늬만 나침판일 때가 있어서…
    어른- 아이 하나같이 함께하는 세상이 보기 좋아요.~~

    1. 제가 ree얼리티님의 블로그나 ree-channel에서 본 것은 저에 대한 부끄러움이었습니다.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진심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점, 그리고 끊임없이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것 등이 놀랍게 했습니다.

  3. 역시, ‘수명을 다 하는 싯점’ ‘물의 결정’
    가장 아름다운 한순간이군요…
    아껴야 할때는 그때겠어요 아니,
    그때가 되면

    ‘소리내지 않아도 풍겨올 것만 같아요’

    1. 좋은 컨디션 상태라면 맑고 투명한 소리만 나겠지요. 나무가 삭고 모르는 균열도 있고 어느 한곳은 무너져 내리고 있어야 삶의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300년이 다 되어서 바스러져 내리기 직전인 스트라디바리우스가 가장 심금을 울리는 바이올린인가 봅니다.
      300년동안 통 안에 소리를 담아왔으니, 소리가 그것의 영혼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4. 사람은 풍류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쪽으로만 꽉 막힌 것(관심을 한 쪽으로만 두는 것)이 결코 좋다고 생각이 안 들거든요.
    다방면에 귀를 열어두고 어느 쪽으로도 막힘이 없는 상태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인님이 자주 음악을 듣는 것은 모든 길로 통하려 하는 그 마음이 느껴져 좋네요.

    1. 바람둥이가 한자어 風人입니다. 그런데 풍인은 문둥이, 나그네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유랑시인(그래서 시경에 국풍 등의 시의 분류가 있습니다)입니다. 그러니까 바람둥이란 바람을 피우는 사람이 아니라 바람처럼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니면 노래와 소식을 전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풍류란 소식과 노래가 흘러가는 것, 즉 소통이란 말씀이니, 저처럼 꼭 막힌 사람에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5. 오늘 지름신 강림하셨다는 포스팅 많이 보이네요. ㅎㅎ
    지름신은 참 한가한가봐요. 시도 때도 없이 괴롭혀요. ㅠ_ㅠ

    궁금하네요. 들어보고 싶어요. ^^

    1. 지름신은 인터넷 쇼핑몰과 중고시장에 임재하시며, 기호하는 자를 권면하사 후회의 음침한 골자기로 인도하시니… 카메라를 기호하는 자에게는 태양처럼 밝은 렌즈와 손바닥만한 촬상소자로 그의 뇌리에 도장을 찍으시노라.

      스펙에 나오지는 않지만, 8Ω에서 100W 이상의 허용입력을 가진 스피커에 비교한다면, 4W 정도 밖에 안되는 스피커일 것 입니다. 조금 있으면 식상할 지 모르지만, 울림(響) 면에서는 좋습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국악을 들을 때 소리가 탁월합니다.

  6. 저 보다 나이가 많은 스피커님이 주인을 잘 만난것 같네요.^^

    저도 언젠가부터 음악듣는걸 좋아학 되었는데,
    요즘은 듣는 음악만 듣고 있어서…ㅎ
    다른 장르의 음악과도 만나봐야 할 것 같아요^^;

    1. 저도 알고 즐기는 음악의 범위가 제한되어 있고, 요즘 음악은 MP3와 이어폰에 맞추어져 있어서 울림이 없는 것이 특징이라 잘 안듣게 됩니다. 재즈를 좀 알고 싶은데 체질 상 잘맞지 않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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