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은 나쁘지 않다

N=R*×fp×ne×fl×fi×fc×L

드레이크 방정식(The Drake Equation)이다. 우리 은하계 내의 교신 가능한 외계문명의 수를 구하는 방정식이다. 우리 은하계 내의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을 찾고 생명체가 태어난 지적 문명체로 진화하여 우주와 교신할 수 있는 통신을 갖고 있을 확율을 구하는 것이 방정식에서  fc까지이다.

…L

문제는 공식의 마지막에 매달려있는 ‘L’에 있다. L은 ‘우주에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시간의 길이’라고 한다. 인류는 간신히 100년이라는 시간을 조금 넘겼을 뿐이다. 그리고 인류의 문명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포격을 가하고 팔레스타인이 텔아비브의 지근 거리에 있는 아마겟돈(므깃드의 언덕 : 텔 엘 무테세림)에 불꽃을 터트린다. 계시록의 그 날이 온다. 그러면 드레이크 방정식의 N의 숫자, 즉 교신 가능한 외계문명의 수가 백이 되었든 천이 되었든, 결국 사라진 인류에겐 무의미하다.

통신 가능한 문명을 이룬지 한세기도 안되어 인류는 완벽한 수준의 멸망시스템을 만들었고, 일촉즉발의 초위험사회로 들어섰다. 미국과 러시아 등 열강들은 인류를 진멸할 수 있는 강력한 폭력이야말로 평화를 담보한다고 한다. 우리는 생존에 치명적인 초위험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더 가공할 초위험을 포개가면서 평화를 간신히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이 세기의 평화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공포’이다.

요즘 SF 영화를 보면, 외계인은 하나같이 인류에게 처절할 정도로 폭력적이다. 그들은 은하계의 저 쪽 끝에서 어쩌면 단 하나 밖에 없을 지도 모르는 외계문명인, 인류문명을 싸그리 튀겨먹겠다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가공할 화력으로 중무장을 하고, 수십만 광년, 수백만 광년을 은밀하게 낮은 포복으로 날아온 것 같다.

그토록 폭력적인 외계문명이, 그토록 가공할 공격체계를 갖추고서 서로 싸우지 않고 그토록 오랜 시간을 공존해왔다는 것은 믿을 수 없고, 있을 수도 없다. 폭력적인 문명에 걸맞게 무수한 전쟁 끝에 마지막으로 생존한 종족일지라도 내부적으로 분열하고 서로를 파괴하다가 사라져 버린다. 따라서 살아남는 문명은 비폭력적일 수 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지구에 당도한 외계문명은 폭력적일 수 없다. 그것은 인류가 지금의 폭력적인 시스템(무기체제 뿐 아니라, 자본주의)을 그대로 유지한 채, 우주를 넘어 다른 문명세계로 다가갈 수 있는 기술을 이룩할 수 있는 싯점까지,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 하는 의문의 답이기도 하다.

이제 L, ‘우주에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시간의 길이’에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쯤 되는 것일까?

This Post Has 12 Comments

  1. ree얼리티

    살아남는 문명은 비폭력적일 수 밖에 없다….
    이 문장의 의미를 모두가 깊이 새겨야 겠네요.
    아이들과 얼마전에 ‘건담’을 다시 봤어요.
    둘째가 군대를 곧 가는데 가기전에 다시 보고 싶다고 해서 막내까지 합세해 봤네요.
    폭력과 비폭력 사이에서 ‘비틀림’의 의미를 스스로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시간이었어요.
    애니메이션, 그 평면적 흐름이 실체처럼 느껴지는 건 그들이 보여주는 끈끈함 때문이었을 거예요. 만화든, 영화든, 책이든, 글이든 우리에게 무언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여인님의 글에서
    다시 확인하네요.~~ 큰 우주와 하나의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방법까지도요.
    많이 느끼고 배우고 갑니다…

    1. 旅인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디엔가 샘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어린왕자와 같은 외계인을 꿈꿔본다면 어떨까요?

      모닥불을 피워놓고 좁아터진 지구의 문제를 “너희들의 문명이 발전하는 동안 발생한 그 많은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했니?”하고 물을 수 있다면, 또 “너희들에게 신이란 영혼이란 무슨 의미냐?”, “죽음을 수용하는 너희의 입장은…?”, “너희도 진리라는 것을 추구하느냐?” 등을 물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해봅니다.

      결국 우주를 바라보는 천체물리학의 마지막 답은 기독교와 불교, 세상의 모든 종교와 신념을 뛰어넘는 종교와 영혼의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2. ree얼리티

      공감이…
      어린왕자 좋아하는데.~~
      어린왕자가 되어 꿈꿔보는 건 아직 안해봤네요.
      꿈처럼 좋은게 없는데
      꿈꾸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린시절의 나를, 나와 다른 어린왕자를…
      머물고 싶은 공간을 담아갑니다.

  2. 아톱

    저도 요게 좀 불만입니다.
    공포를 조장하는 정치, 언론, 기업등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굉장히 분노했던 적이 있습니다.
    미국 사회가 그토록 발전했다 하면서도 온갖 공포를 사람들에게(그것도 존재하지도 않는) 심우주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요.
    외계문명도 마찬가지겠지요.
    사실 잠깐만이라도 주변을 둘러보면 인간만큼 공포스러운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외계문명이 인간의 이런 모습에 학을 떼어 접근조차 하지 않는 것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아요.ㅎㅎ

    1. 旅인

      우리가 어렸을 적의 우주 공상과학 영화는 상당히 긍정적이었습니다. 그때는 우주 개발이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했지만, 동서냉전 구조가 뚜렷했던 탓도 있는 것 같습니다. 동구와 소련이 붕괴하고 난 후, 피아가 구분이 가지 않기 시작하면서 외계인이란 단 하나의 이미지, 가공할 무기체제를 갖춘 적으로 등장하고, 외계인은 반드시 미국이나 미국인에 의하여 박멸됩니다. 9.11사태가 발생하기까지, 발생한 후에도 미국은 명백한 주적 개념을 세울 수 없었고, 주적이 없는 팍스 아메리카나는 군사력을 바탕으로 금융, 경제의 패권을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점 입니다. 9.11이 발생하고 나서야 미국은 간신히 주적개념을 만들어 내는데, 알카에다 등 국가시스템에 기반하지 않는 다국적 테러집단입니다.
      주적을 다국적 테러집단으로 설정하고 난 후, 국제 정치지형이 바뀌게 되는데, UN이라는 국가간의 평화를 위한 연합은 제대로 기능하지 않고, 테러리스트들은 체포될 경우 제네바 협약에 의한 ‘전쟁포로의 대우’를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국가 간의 공법이 기능을 못하는 지점이 생깁니다. 이 테러리스트는 법의 층위에 있지 못한 관계로,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중간 층위에, ‘안 죽은 자’로 대우됩니다.
      그래서 공상과학 영화마저 미국 군산복합체의 주구로 작용하며 폭력을 조장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3. 위소보루

    정말 그런 외계문명과의 대화에 성공해서 진리에 대한 문답을 논한다면 무척이나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왠지 그들의 신념과 종교는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순수과학의 발전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피아의 구분이 필요없는 분야에서조차 굳이 구분을 하려고 한다는 것은 그 행위의 어떠한 목적이나 원인이 있을 것 같습니다.

    1. 旅인

      인간의 오성의 범주와 동일한 범주를 가졌다면, 감성의 형식이 시간과 공간이라면 아마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외부를 받아들이는 형식이 시간과 공간이 아니며, 인간들의 사고의 범주와 다른 사고의 범주를 갖고 있다면 그들이 보는 세상은 우리가 보는 세상과 완전히 다르며 가장 자명하고 선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수학조차 2X3=6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완전히 다른 지식체계를 유지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그 미지가 외계인을 한번 만나보고 싶게 만드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4. ree메인

    어렸을 적 어느 한 은하의 모습과 인체의 모습이 닮은 사진을 보고
    낮에 본 나무가 가지를 뻗은 간격과 밤하늘에 뜬 별빛들의 간격이 어렴풋이 오버랩돼 보이며
    ‘왠지 나뭇가지가 뻗는 모습처럼, 별과 별로 – 은하와 은하로 이어지는 way가 있을것만 같다’는 생각에 잠겨…

    분명, 있을것만 같은 그것만으로도
    그릴 수 있는 충분한 요소가 되기에

    은하와 인체의 신비 사진을 접했을 즈음,
    삼촌이 제게 물은 외계인 만남에 대한 물음에

    전 제가 느끼고 있는 ‘만남’이라는 단어 그대로를 표현했고
    그건 어릴적 제가 느끼고 있던 만남, 외계인이란 존재여서 달라질 게 없는 그런 만남이길 소망했던것 같아요.

    ‘영혼’, 이란 말에 생각에 잠겨 봅니다.
    그리고 ‘남겨진 시간’이란 개념에, ‘인류’라는 틀을 ‘영혼’이라는 개념으로 확장시켜봐요.

    인류의 존속-남겨진 시간 . 왠지… 우린
    영혼이 되어서도 그 기억을 지닌채 그들을 만날 것만 같은 (그들도 같은 조건으로.)

    하지만 현실에선,
    비폭력, 자본주의 같은 ‘인류’의 그릇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를 맞닥드리고 해결하기 위해

    우리 영혼들은
    각자의 사명을 지니고 이곳게 내려왔다고, 강하게 느껴요.

    첫인사 드립니다. 갑자기 이런 글을 쓰게됐네요.. 첫방문 첫포스팅이… 제가 너무 좋아라하는 주제들이라…헤헤…^^;;

    ree얼리티님 소개로 들어오게 된, (저도 ree예요ㅎㅎ ree얼리티가 엄마고요…^^;;)

    이렇게 여인님의 공간을 알게되어서 설렙니다 (이 하얀색의 공간만큼이나요!)

    안갯속에 쓰여진 글 같네요 이곳은 마치,
    ‘보일듯 말듯’ 영원할 것 같아요

    1. 旅인

      제석천(인드라)의 궁전 안에는 구슬로 된 거대한 그물망이 있습니다. 그물코마다 구슬이 매달려 있는데, 구슬은 모든 것을 비추이고 있는 동시에 각각의 구슬을 비추고 있다고 합니다. 각각의 구슬을 들여다 보면 모든 구슬을 비추고 있고 삼라만상이 반영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의상대사는 “인드라의 그물에 빛이 떨어지니 한 구슬에 모든 구슬의 빛이 어리고 티끌 하나가 온 우주를 담았고 우주의 모든 것에 또 우주가 포개지다.”(一中一切多中一/一卽一切多卽一/一微塵中含十方/一切塵中亦如是)라고 그의 화엄일승법계도에서 노래합니다.(참고 : https://yeeryu.com18 )

      이것이 불교의 연기법의 실상인데, 이 말에 의하자면 우주의 저 끝에서 누군가 등을 켜면 그것이 우리의 존재에 반영된다는 이야기이며, 우주는 상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실존의 장이라고 하지요.

      1975~1976년 영국에서 방영된 ‘스페이스 1999년’이란 드라마의 시작은 달의 뒷면에 만들어진 핵폐기장이 폭발하면서 달의 궤도를 이탈하여 우주로 날아가기 시작합니다. 달에 있던 사람들이 처음으로 맞딱드린 시련은 지능적인 생명체가 사는 행성과 부딪힐 위기에 직면합니다. 월면기지의 사람들과 행성의 생명체가 만나 위기를 타개할 방법을 모색하는데, 생명체가 말하길 자신의 행성이 영적인 진화단계에 만나게 되는 마지막 시련이라며 달과 행성이 충돌하기 전에 자신들의 행성이 물질에서 영적인 차원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달은 행성의 인력에 끌려가 충돌하려는 순간, 행성은 사라지고 눈 앞에는 광대한 우주가 열립니다. 이 드라마는 물리적인 언어보다 영혼 등의 종교적인 언어가 우주라는 초거시 체계를 설명하기 쉽다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제 블로그는 저로서도 정체가 모호합니다. 그냥 아무 것이나 쓰고 있으며, 논쟁꺼리도 많은 곳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아무 것이나 늘어놓으면 그 속에 언젠가 진실이나 그런 것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소망도 있습니다.

      오히려 ree얼리티님과 ree-channel과 같은 공동적인 블로그 작업에 흥미로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블로그 운영지침은 정반대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익명성의 원칙입니다.^^

      이렇게 만나게 되어 너무 반갑습니다.

  5. ree메인

    오히려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받고
    진실과 진실을 닮은 것, 진실이 아니었지만 진실이 될 것만 같은 것들, 그리고 그와 같이 눈앞에서 이뤄지는, 변화들 소통들 생각들…
    이런 흐름을 담아내기위해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그 변화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겠네요

    저도 분명 그런 것들에 깊은 관심과 그 흐름에 몸을 담아보고 싶은 한 人인데,
    제가 끌리는 쪽은 ‘저로 실체화 하는 것’ 입니다.
    그런것들이 굳어져 ‘나의 공간을 꾸미는’ 방식이 됐는데요

    그렇게 되면 전체의 흐름 보다는 개인의 그릇 안의 흐름으로 표현되겠지만
    타인이라는 또하나의 개인이 어떤 걸 느끼기엔- 한 人의 모습을 한 그 그릇이 와닿는 면도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한사람 한사람과 이어지는 것, ‘함께-하나’라고 느끼고 싶기에…

    여러 방식들의 길이 아름답길 소망해요

    예수도, 부처도, 알라도
    ‘여정은 다르지만 그 길이 다다르려는 곳은 같다’는 표현으로,
    ‘다름’에서 또다른 설렘과 반가움을 간직합니다.

    저도 정말 반가워요^^

  6. 흰돌

    우와 저런 방정식이 있다니, 신기하네요:)
    그런데 L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건가요…
    외계인, 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관심있는 분들이 많다니
    +_+ 반가워요.

    1. 旅인

      저는 남아있는 시간에 대해서 무척 비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인간 중에서도 상상도 못할 정도로 잔인하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심각한 사람들이 빨간 보턴을 누르라고 최종지시를 내릴 위치에 앉아있기 때문입니다.

      외계인에 대한 관심은 아마 인류문화 중 신, 인간이란 무엇인가 등 형이상학적 문제를 일거에 해소해줄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외계인을 만나게 되면 너희들이 믿는 신도 여호와냐고 묻는 이 꽤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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