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 20140620

내가 사는 곳은 도시의 끄트머리, 터미널 옆 이다. 방방곡곡에서 올라온 고속 또는 시외버스들이 터미널을 빠져나가는 버스들과 5cm 간격으로 얽히는 사이로 터미널에 사람을 내리고 또 태우려는 택시들과 승용차들이 다시 섥힌다. 우르르 강을 건너온 전철이 사람들을 마구 쏟아낸 건널목에 파란불이 들어온다. 사람들을 버스와 차들 사이의 빈틈으로 스며들어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지방 어디론가로 사라진다. 승객들이 내린 전철의 옆구리는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로 채워지게 마련이고, 빈 택시는 또 다른 손님으로 채워진다. 이렇게 도시의 인풋-아웃풋 시스템은 인구밀도를 조절한다. 여기로 온 사람들은 어디론가로 가지만, 나는 머문다.

모든 사람이 흘러가는 곳에서는 머물고 있는 자가 오히려 외롭고 낯설기 마련이다. 까닭에 이 곳이 변두리라는 느낌은 머무는 사람들에게 더욱 절실하다.

사람들이 스쳐지나도록 안배된 곳은 어디서나 정을 붙이기에는 모든 것이 엉성하고 들떠 있다. 이 지점을 지나는 무수한 차량과 사람들, 또 무수한 그들이 무수하게 밟고 지나간 하중으로 도로의 바닥은 너덜너덜하고, 지하철과 터미널에 이르는 계단들, 난간, 심지어 그 앞의 보도블럭들은 가라앉거나 뭉게져 있다. 무너지고 갈라진 것들의 사이로 세월과 빗물은 스미고 고였다.

버스정류장 옆으로는 먼 길을 달려와 피곤하고 허기진 사람들을 유혹하기 위한 포장마차가 있다. 일렬횡대의 포장마차에선 몇년된 식용유가 끓는 냄새가, 철판 위에서 눌는 떡볶이의 고추장 냄새와 어묵국물의 짠내에 마구 섞여, 길거리로 흘러나왔다. 계절과 하루의 시간에 따라 역한 냄새는 강해지거나 약해졌다. 여름 낮에는 아무 냄새도 들리지 않았지만, 늦가을과 저녁이면 냄새는 환청처럼 내습했다. 냄새가 내습하면 사람들은 보도에 늘어논 테이블에 마주 앉아 술을 마시고 옆 테이블의 소음 때문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목에 핏대를 세우고 와글와글 소리를 질러대야만 하는 사람들의 사연을 나로서는 알길이 없다. 사연이란 한 사람의 인생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연이란 몸에 입력된 적당한 알코올의 농도, 함께 술을 먹는 사람과의 친밀도 그리고 그 날의 날씨와 일상이 마구 뒤섞여 발효되는 아주 우발적인 것이기 때문에 다음날 아침이면 그들은 자신에게 닥쳐왔던 사연을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자명한 것이 있다면, 여기는 도시의 가장자리라는 점이다. 그래서 도시의 내륙의 찬란한 색깔은 여기에 당도할 때 쯤이면 빛이 바래고, 지방의 소도시보다 남루해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남루가 생활의 본질이라고 하기에는 이곳은 들떠 있고, 조잡하다. 이 곳은 도시의 가장자리가 누려야 할 조용함마저 사라진 곳이다.

이 곳이 싫다. 이 곳에는 교각 위로 지하철이 우르르 울며 지나고, 파란불이 켜진 건널목을 차들이 예사로 가로지르고 지랄들이다. 70년대 풍의 작부집이 늘어서 있는 것에 걸맞게 길거리에는 쓰레기들이 굴러다니고, 골목 안을 바라보면 황폐하여 도무지 사람들이 서식한다는 느낌이 없다. 집과 건물의 창에는 먼지가 더께로 앉아 있고, 그 안으로는 몇년동안 빛과 한번도 살을 섞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 어둠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5월과 6월이 다 지나도록 골목에 라일락 향기라든가, 장미가 담벼락에 피어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이상하게도 이 동네에선 해(日)가 서쪽에서 떠서 북쪽으로 진다. 동쪽과 남쪽이 거의 붙어있다는 것을 이 동네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지하철을 타고 하늘과 대지가 다 펼쳐보이는 지점인, 모텔 하이눈이 있는 곳에 다다르면, 굴절된 동쪽과 남쪽이 펴지면서 3시, 6시, 9시, 12시 방향으로 동서남북이 뚜렷해진다.

펼쳐지는 하늘을 바라보면, 문득 삼년 넘게 끊은 담배를 피고 싶다.

그것은 문득, 세상의 마지막인 이카텐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므깃트를 지나 비아스몬 산맥의 아래, 메마른 광야의 먼지가 황혼이 되는 그 곳에선 사랑하거나 꿈꿀 것이라곤 없지만, 최소한 적요함이 있고 더 이상 구겨버릴 수 없는 고독이라는 것이 있을 것이며, 담배라도 피워야 외로움과 벗하고 천일(千日)하고도 또 하루의 고요를 직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 때문에……

This Post Has 7 Comments

  1. 아톱

    여인님도 저처럼 주변인이시군요.
    저도 가끔은 나락아닌 나락에 서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무언가 사람 냄새 나는 것들이랑은 저만치 떨어져 있는… 생동감이라곤 물에 젖은 김처럼 푹 죽어 있는 그런 상태요. 그냥.. 읽다 보니 알게 모르게 내 얘기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전 도시의 중심부에 살지만, 묘사된 것들이 꼭 제 마음 같다랄까요.
    잘 읽었습니다.

    1. 旅인

      주변인이란 콜린 윌슨이 말하는 아웃사이더의 개념에 포함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아주 좋은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까뮈의 ‘이방인’에서 형편없는 인간인 뫼르소는 보통 인간과 그들의 삶이 무가치하고 타성적이어서 타인이 구축해 논 윤리에 매몰되어 있고 얇팍한 인간관계를 맺고 근근히 자신이 살아야 하는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며, “마치 그 커다란 분노가 내 괴로움을 씻어주고 희망을 안겨 준 것처럼, 나는 이 징후와 별들이 드리운 밤 앞에서 처음으로 세계의 다정스러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었다. 그처럼 세계가 나와 다름없고 형제 같음을 느끼며 나는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성취되고 내가 외롭지 않다는 것을 느끼기 위하여 나에게 남은 소원은, 다만 내가 사형집행을 받는 날 많은 구경꾼들이 증오의 함성을 울리며 나를 맞아주었으면 하는 것 뿐이다.”라고 외침으로서 영웅이 됩니다.
      주변인이 된다는 것은 타인에 의해서 라기 보다 어떠한 상황이나 계기에 의해서든 남들과 달리 세상과 자신이 불화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며, 그 불화에 당면한 자신은 세상에 대하여 치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시베리아 유형지에서 시인 만델슈탐이 아내에게 물었던 언어를 빌어 다시 묻고 싶습니다.
      “어째서 (인생이) 행복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거야?”

    2. 아톱

      음 잘 모르겠어요. 제 입장을 말씀드린다면 전 그저 혼란 속에 있어요. 그 언젠가부터 저는 자의든 타의든 주변인이 되었고, 그것이 저에게 끝없는 내적갈등을 낳았어요. 맞아요. 끝없는 불화. 사실 지금도 느끼고 있어요. 세상과 나 사이에 앞서서 지금 내 모습과 원래의 내 모습에 대한 것부터도 말이죠. 그것은 끊임없이 나를 따라오는 그림자 같아요.
      어떠한 삶의 근원적인 고통들이 저를 이렇게 만들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삼십 년을 즐거움, 사랑, 행복, 기쁨과 같은 감정들을 못느끼고 살아서 거기에 대한 어떤 큰 기대도 실망도 없어요. 그저 저는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에요 이렇게 사람냄새 안 나고 생동감 없고 풀 죽어있는 멈춰버린 공장의 기계같은 모습은 내가 아니란 생각이 들거든요. 이런 상태가 지속되니 세상과도 계속 섞이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말씀 굉장히 고맙습니다. 글을 자꾸 곱씹어 보고 있어요. 여전히 정리되지 않아 혼란스럽네요. 간만에 책 좀 읽어야겠습니다.

  2. 토종감자

    우연히 들어왔다 저도 모르게 빠져들어 집중하고 읽었네요.
    가벼운 이야기들과 ㅋㅋㅋ로 도배된 포스팅들이 넘쳐나는 요즘,
    오랜만에 읽을만한(?) 블로그를 찾아서 반갑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1. 旅인

      사실 제가 쓰는 포스트는 길고 지루하여 몇몇 이웃분들만 들러주시는 곳인데, 집중하고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님의 블로그에 들러보고 예전에 몇번인가 부러운 마음으로 기웃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댓글을 달지도 못하고 얌체처럼 읽고 만 돌아왔던 것 같습니다.
      칭찬을 해주시니 용기를 갖고 또 포스트를 써야 할 것 같습니다.^^

  3. 후박나무

    소설속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입니당 :~)
    그 중 포장마차의 풍경이 정감있으면서도 아린거 같아요.ㅎ

    1. 旅인

      그런데 저는 포장마차에서 어묵 한그릇 사먹어본 적이 없습니다. 낮의 손님없는 포장마차도 안타깝고 그렇습니다.
      집 사람은 교통이 좋아서 이 곳이 좋다고 하는데, 자연이 없는 이곳이 저는 싫습니다. 강 건너 남쪽은 그나마 자연이 좀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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