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집 여자

이제는 글 하나 쓰는 것도 힘이 든다. 하는 일이 없는 탓이다. 그러니까 나는 無事하다. 이런 날들에는 창 가에 앉아 詩를 읽는다. 시를 읽는 동안 강변도로 위로 올라선 차들이 석양의 시간을 향해 가속하며 알피엠을 올리거나, 아직은 푸르른 오후의 하늘이 불현듯 막막해지곤 한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시를 읽게 된다.

   버드나무 같다고 했다 어탕국수집 그 여자, 아무데나 푹 꽂아놓아도 사는 버드나무 같다고…… 노을강변에 솥을 걸고 어탕국수를 끓이는 여자를, 김이 올라와서 눈이 매워서 고개를 반쯤 뒤로 빼고 시래기를 휘젓는 여자를, 그릇그릇 매운탕을 퍼담는 여자를, 애 하나를 들쳐업은 여자를

   아무데나 픽 꽂아 놓아도 사는
   버드나무 같다고
   검은 승용차를 몰고 온 사내들은
   버드나무를 잘 알고 물고기를 잘 아는 단골처럼
   여기저기를 살피고 그 여자의 뒤태를 훔치고
   입안에 든 민물고기 뼈 몇점을
   상 모서리에 뱉어내곤 했다

   버드나무, 같다고 했다

유홍준의 시집 ‘저녁의 슬하’ 중 “버드나무집 女子”—

이 시를 읽자, 그 여자의 모습이 궁금했다. 그리고 어탕국수 사이로 언듯언듯 드러날 민물고기의 허물어진 비늘과 잇빨과 혀끝으로 발라낸 가시를 상 모서리에 뱉어내며 여인의 뒤태를 바라보는 살찐 시선의 통속 너머, 솥에서 올라오는 김 사이로 끓어오르는 노을을 마주 한 여인의 풍경이 그리워졌다.

그리워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6 thoughts on “버드나무집 여자”

  1. 시 좋지요.
    제겐 그래도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쓰고 읽는 것이 버거운 것 보니 독서량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ㅠㅠ

    1. 저도 시라면 쓰고 읽는 것이 버겁습니다. 요즘 시집을 펼쳐놓고 읽다보면 눈길이 가는 시는 20편 중 한편 정도될까 말까 입니다. 시집 한권에서 두 세편 정도를 찾아내곤 합니다. 그냥 좋구나 하는 마음으로 공책에 베껴놓습니다. 다음에 다시 읽어보기 위해서…

  2. 하는일이 없다. 無事하다….
    저도 비슷하게 굴러가는 일상이라 그런지 요즘 블로그에 글 올리기가 쉽지 않네요.
    그래서 사진 한 장만 달랑 올릴 때도 많구요.ㅠ

    저는 요즘 정여울님의 책을 읽고 있어요.
    조곤조곤 속삭이는 듯한 이분의 따뜻한 시선과 위로가 좋더라구요^^

    1. 정여율씨는 전혀 모르는 작가입니다만, 짧은 글을 읽어보니 저한테는 한 이십년 전 쯤에나 공감할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보편성이라던가 공감력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라, 이미 삶에서 하나씩 지워가는 나이다 보니, 아직 간직하기에는 가슴이 감당하기 어려워 지워버릴 수 밖에 없는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탓에… 에휴!!

      일상 만 무사한 것이 아니라 가슴 속도 무사한 모양입니다.

  3. 버드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요즘입니다.
    어느곳에서나 열심히 잘 살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한국에서의 생활은 많이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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