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서

종합병원은 오묘한 시스템이다. 환자에 대한 배려보다는 의사의 무책임과 간호원의 말대꾸와 병원의 내규로 이루어진다. 진단과 의사결정 권한은 의사에게 있지 않고, X-RAY, MRI. CT 그리고 고가의 장비와 기기가 토해내는 데이타에 있다. 물론 CT나 MRI를 찍어야 하느냐는 환자의 질문에 대해, 의사는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의사는 환자의 통증에 대한 자신의 무지를 감추기 위하여, 응급실로 아무 것도 모르는 환자를 트랜스퍼할 수 있으며, 내장을 긁어낼 듯한 통증으로 엎어진 응급실은 전혀 emergency하지 않다. 응급실로 트랜스퍼된 지 열시간이 넘도록, 침상은 물론 환자가 앉아 있을 의자조차 제공되지 않는다. 통증을 호소하며 진통제가 전혀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하자, 왜 그리 다그치냐며 기다려보라 한다. 아픈 것은 환자 너의 사정일 뿐, 간호원인 내 사정은 결코 아니다.

응급실에서 조처한 것이라곤 카드결제를 도와주었으며, 불문곡직 수액을 꽂았다. 링거야말로 환자라는 증거였다. 간호원은 환자와 보호자에게 짜증을 부리라고 교육을 받은 것 같다. 그리고 업무는 환자와 가족의 요청이나 질문에 대한 말대꾸와 딴청을 부리는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 같다. 의사는 이런 통증과 증상이 있다며 왜 그러느냐는 환자의 질문에 대해 답하기 보다, “그렇다면 이 검사를 해 보죠”라고 말한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진료비 청구서에 검사비 수십만원이 추가된다. 검사란 의사가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한 것에 대한 응징인 동시에, 병원의 수익에 기여하는 것이다. 환자는 그렇게 곪아가는 것이다. 검사결과가 나온다는 시간을 훌찍 지나 검사결과가 나왔다. 원인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의사들끼리 모여 회의를 거쳐야만 병증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수술의 당사자가 아닌 내과에서는 대장 천공이 의심되는 만큼 외과의 수술이 필요하다고 하고, 집도를 해야하는 외과에서는 천공이 생겼다고 볼 수 없는 만큼 기다려보자는 입장이다. 이것은 아무런 결론도 아니다. 자신들의 편의에 입각한 판단이고, 책임전가나 회피에 불과하다.

물론 응급실의 간호사나 의사들은 자신들을 감정 노동자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담보하고 있는 환자들이야말로 자신의 치떨리는 감정과 아픔, 피로를 꾹누르고 버틸 수 밖에 없다. 침상이 나고 병상이 생기기를 기다리며 검사결과와 자신의 병증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노심초사하지만, 의사는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묵비권을 행사한다. 검사결과가 나와도 자신의 실력으로 모르겠거나, 기분나쁜 환자라면 더 비싼 검사를 의뢰할 수 있는 권리가 의사에게 있다.

응급실의 간호원과 의사는 자신들이 바쁘고 힘든 것을 이해해달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환자들에게 요구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부리고 있는 병원에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의사와 간호사가 편해야 환자들에 대한 처우도 달라지지, 환자의 이해의 한계를 시험해서는 안된다.

종합병원이라는 곳은 결국 환자와 의사, 간호사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다. 관심이 있는 것은 환자의 호주머니와 의사와 간호원, 직원의 수를 얼마만큼 감축하면서, 저명한 의사를 유치하여 병원의 명성을 올리고 환자들이 저절로 몰려들게 하느냐에 있다. 보편복지로서의 의료에 대한 생각은 전혀없는 것이다. 그래서 응급실에 잔뜩 몰려들어 진료비를 부담하는 환자들에 대한 정당한 조치는 이루어지지 않고 “기다려라”로 일관되고, 병상구조는 일반실은 없고, 하루 70만원한다는 특실 만 남아있는 구조다. 그러니까 특실이란 이 병원에 입원을 하기 위한 통과의례 혹은 입장료인 셈이다. 이러한 항변에 대하여 아니꼬우면 다른 병원으로 가면 된다는 친절한 답변도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아파 죽겠다. 좀 조치를 해달라. 왜 검사결과가 나오지 않느냐. 왜 너희들은 환자를 이렇게 방치하느냐고 하면, “저기 소생실에는 지금 죽어가는 사람도 있어요”라며 자신들의 불친절이, 무능과 감당못할 만큼의 응급환자를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는 것임에도, 책임을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전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지금 숨 넘어가지 않는다면 지엄하신 간호원이나 의사 선생들 힘들게 하지 말고 아파도 침상도 아닌 의자에 찌그러져 앉아 혼자 아프라는 말을 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는 대한민국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아무 병원 응급실이니까.

집에 돌아와 그런 생각을 한다. 빌어먹을 왜 아파 가지고…

This Post Has 4 Comments

  1. 후박나무

    몸은 좀 괜찮으신지요?

    의사분들, 간호사분들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하시는건 알겠지만,
    병원은 되도록이면 가고 싶지 않더라구요.
    병원이라는 시스템도 그 안의 차갑고 불친절한 공기도 좀 그런거 같아서요…ㅠ

    1. 旅인

      제가 아팠던 것이 아니라, 집사람이 벌써 한달이 넘도록 이 병 저 병으로 제 속을 썩이고 있습니다. 집사람은 아프다고 난리지, 담당의사를 찾아갔더니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고 응급실에 트랜스퍼나 시키고 아내는 아프다는데 일반외래를 가도 처치가 되었을 것을 이 검사 저 검사 뺑뺑이를 돌리고 하니 제가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응급실 의사의 소견은 대장에 천공이 의심스럽다였지만, 다음날 다른 병원에 갔더니 천공은 보이지 않는다 였습니다. 수술을 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전에만 해도 이 놈의 병원이 이정도로 형편없지는 않았는데, 최근들어 병원의 명성은 높아 환자는 몰리고 경영합리화다 뭐다 하면서 인력은 줄면서 기본이 무너진 병원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2. 후박나무

      아~ 여인님 부인께서 아프신거였군요…
      마음 고생이 많으셨겠어요.ㅠ
      어여 건강 회복하셨음 좋겠네요…

    3. 旅인

      이제는 통증도 없고 죽이나 먹고 이러저런 검사를 받고 있습니다. 검사결과가 괜찮기만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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