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잔의 정적

Maison et ferme du Jas de Bouffan (House and Farm at Jas de Bouffan) 1889-90

세잔(Paul Cezanne)의 풍경화를 보면 프로방스 지방의 늦은 봄 혹은 여름의 짙은 햇볕을 볼 수 있다. 봄에 부는 국지풍 미스트랄은 프로방스 지역의 습기를 말린다. 맑은 하늘이 싸이프러스 가지 위에 머물 때, 그림자는 사물이 햇빛을 가린 탓에 생기는 것으로 단언하기는 어렵다. 프로방스의 그늘은 늦은 봄과 여름의 무료함이 한낮의 열기에 데쳐지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무거운 하중 탓에 그늘은 공중에서 마당과 뜰로 뚝뚝 떨어져 내린다. 이런 시기의 그늘은 질량을 가진 것인 만큼, 존재 특유의 색을 간직하는데 그 색은 대체로 정적(靜寂)이다. 물론 숲이나 나무 사이에서 새들이 지저귀고 매미들이 자지러질 수도 있고 동네 아이들이 재잘대고 소리치며 골목을 몰려다닐 수 있다. 하지만 정적과 소음들은 서로 삼투될 성질의 것은 아니다. 매미가 울어도 ‘붉은 지붕의 집’에는 정적이 감돌고 햇볕 아래 모든 것은 무르익는다. 생트 빅투아르 산 아래로 ‘르 토노레로로 가는 길’에 산새들의 지저귐을 듣는다면 정적이 깨지기 보다 압도적인 무게로 나그네의 주변을 둘러싸곤 한다. 물론 그늘이 가진 정적도 계절이 바뀌어 늦여름이 다가오면서 주변의 소음과 뒤섞이게 된다. 그때부터 그림자는 길어지며 숲과 나무의 그늘은 점차 사라지게 된다. 그러면 풍경은 좀더 뚜렷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세잔의 풍경 뿐 아니라 정물과 인물화 속에 빛이 살해해버린 소리, 그래서 빛 속에서 아득해져 버린 풍경과 사물들의 정적을 바라볼 수 있다.

5 thoughts on “세잔의 정적

  1. 주변의 소음에도 외롭고 고독하게 느껴지는 정적.
    어렴풋이 그 풍경이 무엇인지 알것같습니당.

    1. 그런데 그 풍경은 꼭 아지랑이가 핀 후 부터 가을이 오기 전까지 입니다. 뜨거운 햇빛이 소음을 말리는 시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새해에 좋은 소망 하나 만드셨는지요?

    2. 아~ 소망이라면…사실 없는거나 마찬가지인데,
      굳이 만들자면 ‘시간의 흔적을 만들기'(?)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학교 다닐 때 교수님께서 해주신 이야기인데,
      매일 무언가를 조금씩 하다보면,
      세월이 흘러 그것이 시간의 흔적으로 남는다고 하시더라구요.

      그 말이 깊게 와닿아서, 가슴속에 품어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보곤 한답니다.^^

  2. 햇빛에 부서지는 색의 변화를 표현한 인상주의 그림들을 참 좋아합니다.
    세잔의 그림을 보고 여인님의 글을 읽으니,
    여름 한낮 눈부신 햇살과 더위로 잠깐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그런 순간 같이 느껴지네요.

    1. 이번에 인상주의에 대하여 새로운 관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젤을 들고 바깥으로 나가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 전의 그림들에 쨍하는 한 낮의 침묵이 없었던 것은 아틀리에에서 그렸던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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