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을 다 읽다

장자라는 책에는 호접몽 이야기가 있다. 나비가 꿈 속에 장주가 된 꿈을 꾸었고 슬퍼했던 것 같다. 혹은 반대였던 것 같기도 하다.

김경주의 시 ‘非情聖市’ 안에는 “귀신으로 태어나 자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이 세상을 살다가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사라져버리는 생들이 있다”고 쓰여 있다. 이 프랑켄슈타인 문법이 인간의 생애에 비하여 더 서글픈 서사구조를 가진다는 보장은 없다.

홍루몽의 서사구조는 중층적이다. 신화의 서사구조는 꿈의 서사구조와 수평선 상에 존재하며 현실의 서사는 꿈에 의하여 지배되는 착종된 구조로 되어 있다. 대국적으로는 꿈과 현실의 서사는 태고의 신화 속에 버려진 돌덩이(石頭) 위에 중과 도사가 오래 전 새겨놓은 이야기(石頭記)와 같다. 그러니까 모든 이야기는 예정조화인 셈이다.

또 지나던 공공도인이 이 석두기(石頭記)를 읽게 된다. 이야기를 읽고서 공(空)에서 색(色)을 보고, 색에서 정(情)이 생기고 정을 전해 다시 색에 들고 색에서 다시 공을 깨닫는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정승(情僧)’이라 고치고 ‘석두기’를 고쳐 ‘정승록’이라 한다. 그 뒤 이 이야기는 오옥봉(吳玉峰)의 손을 거쳐 ‘홍루몽(紅樓夢)’이라 하고, 동노(東魯)의 공매계(孔梅溪)는 ‘풍월보감(風月寶鑑)’이라 제목을 지었다. 다시 그 뒤에 조설근이라는 사람이 도홍헌에서 이 책을 십년동안 연구하면서 다섯번 고쳐 쓴 다음(曹雪芹于悼紅軒中披閱十載, 增刪五次) 목록을 엮고 장회(章回)를 나누어 ‘금릉십이채(金陵十二釵)’라 이름하고 책머리에 시 한 수를 적어 넣는다.

1. 홍루몽 줄거리

滿紙荒唐言   이야기는 모두 허튼소리 같지만
一把辛酸淚   실로 피눈물로 쓰여진 것이어늘
都云作者癡   모두들 지은이를 미쳤다고 하나
誰解其中味   이 속의 진미를 누가 알리요

1) 돌덩이 위에 쓴 이야기(石頭記)

신화시대에 공공과 전욱이 싸우다가 하늘의 한쪽이 무너져 내린다. 중국의 창세신인 여와(女媧)가 하늘을 떠받치기 위하여 대황산 무해애에서 3만6천5백1덩이의 석두(石頭)를 연단한다. 하늘을 떠받친 후, 남은 1덩이의 석두를 청경봉 아래 버린다. 이 석두가 통령보옥(通靈寶玉)으로 다년간의 수련 끝에 영혼을 갖게 되었고 스스로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게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늘을 떠받치는데 쓰이지 못한 채, 청경봉 아래에 버려졌다는 사실이 늘 서운했다.

이 곳을 지나던 중과 도사가 이 석두를 보자 영혼이 생긴 것을 알게 되고 앞으로 좋은 시절, 좋은 집에 태어나 여러가지 일을 겪게 될 것임을 넌즈시 알려주고 석두에 겪게 될 이야기를 새겨넣는다.

한참 후 공공도인이 지나가던 중 석두에 새겨진 이야기를 읽게 되고 자신의 이름을 정승이라고 바꾸고 이야기(情僧錄)를 전하게 된다.

2) 애정 이야기의 본보기(風月寶鑑)

여기서부터 신화의 시대를 벗어난다. 고소(姑蘇=蘇州)의 창문성(閶門城) 안 인청 골목(仁淸巷)의 호로묘(葫蘆廟) 옆에 사는 진사은(甄士隱 : 진짜 사실은 감추어져 있다는 眞事隱과 동일한 소리)이 꿈 속에서 중과 도사가 석두 통령보옥을 경환선자(警幻仙子 : 太虛幻境의 주관자로 남녀의 치정관계를 맡아봄)의 적하궁(赤霞宮)으로 데려가는 것을 본다. 경환선자는 통령보옥을 신영시자(神瑛侍子)로 임명한다. 이 신영시자는 강주선초에 물을 주곤 한다. 진사은이 중과 도사 등이 어리석은 물건(蠢物)이라고 하는 석두를 집어서 보니 통령보옥이라고 새겨져 있고 자세한 글을 읽어보려 하니 이미 환경에 들어섰노라고 하여 눈을 들어보니 누각문에 태허환경(太虛幻境 : 아무 것도 없는 꿈 속)이라고 쓰여 있고 양쪽에 대련이 있다.

假作眞時眞亦假   헛 것(夢)이 참된 것을 만드는 때(시간)는 참된 것 역시 헛 것이요
無爲有處有還無   없음(太虛)이 있는 것이 되는 곳(공간)에서는 있음 또한 없음이라.

이 대련을 보는 순간, 그만 뇌성벽력이 나며 진사은은 꿈에서 깨어난다.

이 태허환경을 좀더 들어가보면 중문에 얼해정천(孼海情天 : 수심과 애정의 바다와 하늘)에 쓰여 있고 대련에는

厚地高天堪歎古今情不盡   하늘 땅에 사무치는 고금의 정 다할 날이 없고
癡男怨女可憐風月債難酬   치정에 빠진 남녀의 안타까운 회포 풀 길이 없다

즉 꿈과 풍월(애정이야기)이 뒤섞여 있는 곳이다.

참고로 이 태허환경의 주소는 Lihentien Guanchouhai Fangchunshan Qianxiangdong(離恨天 灌愁海 放春山 遣香同)이다. 한마디로 이별의 원망으로 가득한 하늘과 근심이 흘러드는 바다를 건너 봄이 풀린 뫼 안의 향기가 풀린 동네인데, 얼빠진나루(迷津)를 건너야 한다.

3) 남경의 열두미녀들 그리고 한 사내(金陵十二釵)

결국 태허환경의 신영시자(석두)는 통령보옥을 입에 물고 남경의 영국부(榮國府)라는 가(賈)씨의 대갓집에 가보옥(賈寶玉)이란 이름으로 태어난다. 네 누이와 임대옥, 설보채, 사상운, 왕희봉, 습인 등의 열두미녀와 함께 대관원이라는 영국부의 비원에서 보내며 시를 짓기도 하고 서로의 정을 나눈다. 이러한 시간을 보내는 중 여자들은 시집을 가거나 죽고 가씨 집안을 비롯 왕씨, 사씨, 설씨 등의 금릉 네 대가는 갖은 치정사건과 고리대, 폭력, 살인, 이권 개입등의 사건으로 서서히 영락하기 시작한다.

이런 가운데 통령보옥을 잃어버리고 반백치가 된 보옥은 태허환경의 강추선초의 화신인 임대옥과 목석의 인연은 맺지 못하고 그만 설보채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 사이 임대옥은 죽고, 잃어버렸던 통령보옥을 찾게 되고 정신을 차리게 되지만, 그만 보옥은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된다. 아버지의 강권에 마지 못해 과거를 보고 합격했지만, 중과 도사를 따라 홀연히 속세를 떠난다.

4) 치정스님의 이야기(情僧錄)

위와 같은 석두에 쓰여진 이야기가 한 차례 끝난 후, 공공도인 즉 정승이 다시 청경봉 밑을 지나다가 석두를 마주하게 된다. 돌에 적힌 글을 다시 자세히 읽어보니 기왕의 게문 뒤에 새로 여러가지 사연이 기록되어 있다.

그는 석두가 세상에 내려가 단련을 받은 끝에 밝은 빛을 내고 수도를 하여 원만하게 각성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왕이면 자기 손으로 다시 한번 옮겨서 누구든 한가한 사람에게 부탁하여 널리 전하게 한다면 사람들은 이 기이하면서도 기이하지 않고 속되면서도 속되지 않고 진짜이면서도 진짜가 아니고 가짜이면서도 가짜가 아닌 이야기를 알게 되리라며,

說到辛酸處   피눈물로 씌여진 이 이야기는
荒唐愈可悲   황당할수록 더욱 슬프다
由來同一夢   애당초 다 같은 꿈이었던 것을
休笑世人癡   세인들의 어리석음 비웃으며 어쩌랴!

고 다시 계송을 단다.

2. 홍루몽이라는 소설

1) 지은이

홍루몽이란 소설 속에서 중과 도사가 돌 위에 쓴 것을 공공도인이 베껴쓰고 이를 전하여 오옥봉, 공매계 등을 거쳐 조설근(대략 1715~1763)이 십년이란 기간동안 다섯차례 고쳐쓰고 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의 사실 유무는 차치하고 조설근은 홍루몽의 가보옥처럼 금릉(남경)의 대갓집에 태어났지만 옹정제의 즉위 후 조부의 해직과 가산의 몰수로 가문이 영락하면서 어렸을 적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간신히 생계를 유지했고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요절한 다음 해, 석두기 80회 전편과 후편 약간 만 완성된 상태의 원고를 남긴 후 48세의 일기로 한 많은 세상을 떠난다.

나머지 부분은 고악(高顎 : 1738~1815 추정)이 40회를 지어 석두기 80회와 함께 120회 전편 홍루몽으로 이름을 단다.

조설근이 남긴 후편의 내용에는 ‘가보옥은 몰락하여 거지가 되고, 가교저는 기녀가 되며, 왕희봉은 인심을 잃고 몸종이 되어 쓸쓸하게 죽어간다'(천지인 刊 그림으로 읽는 중국고전 335쪽)고 되어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고악의 40회의 내용은 내가 읽은 텍스트나 정갑본이나 가씨의 ‘영국부’가 완전히 몰락하는 것이 아니라, 몰락 직전 황제의 은사로 가문이 다시 회생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홍루몽의 저자는 두 사람, 조설근과 고악인 셈이다.

2) 판본의 문제

내가 가지고 있는 홍루몽은 3가지다.

하나는 홍콩 三民書局의 완판 홍루몽으로 120회본 정갑본(程甲本)을 저본으로 한 홍루몽이다. 분량은 상하 두책 1400쪽에 달한다.

정갑본(程偉元이 쓴 첫 판본)은 1791년(乾隆 辛亥 冬至 後 5日)에 출간한다. 그 다음 해 정갑본을 개정한 정을본이 나왔다고 한다.

이 정갑본 출간에 즈음하여 고악이 쓴 서문에 보면, 홍루몽이 인구에 회자되기 이십여년이 지났다고 되어 있는 바, 원작과 시간 간격이 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또 정위원이 쓴 120회본의 서(序)를 보면, “석두기(石頭記)가 원명이며, 작자는 서로 전하되 하나가 아니다. 오로지 책 안에 조설근이 잘못된 글귀를 지우고 바르게 하기(刪改)를 수차했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조설근이 작자인지는 분명치 않다.

또 하나는 홍콩 中華書局의 그림과 글이 함께 들어 있는 간사본(簡寫本 : 다이제스트판)이다.

마지막으로는 간자체로 된 연환화(만화) 홍루몽이다.

중국어나 한문을 읽지도 못하면서 욕심으로 산 책들이라 읽지도 못하고 그냥 갖고 만 있다.

이번에 읽은 12권 짜리 홍루몽은 청계에서 번역한 것이다. 그 판본은 척료생이 서문을 단 석두기 80회에 고악의 40회를 더한 판본이다. 척서본은 후대의 가감을 거친 정갑본보다 원작을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다고 본 책의 서문에 강조하고 있다.

3) 번역의 문제

번역자는 안의운, 김광렬 두 사람인데, 두 사람 다 북경중앙민족대학 중문과를 졸업하고 북경외문출판사에 근무하면서 중국문학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계속해 온 사람들로 자세한 내용은 없으나 조선족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번역이 여간 잘된 것이 아니다. 딱딱하고 생경한 표현이 없다. 필요할 경우 의역을 함으로써 직역이 지닌 이질감을 덜어낸 탓으로 보인다. 때때로 요즘에는 거의 쓰지 않는 낱말이나 격언같은 것을 만날 수 있다. 이는 본래 북한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먼저 번역했던 것을 우리나라 사정에 맞게 교정을 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남은 흔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중국문화의 총체라고 할 홍루몽에 나오는 모르는 개념이나 낱말 등에 대한 주석이 깔끔하여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3. 홍학(Redology)이란

홍루몽에 대한 연구를 홍학이라고 한다. 세익스피어 이후 하나의 작품에 수많은 사람이 매달려 연구를 하는 예는 흔하지 않다고 한다. 홍루몽은 정을본(정위원의 두번째 판본)이 출간된 이후 백여종의 간본에 30종의 속작이 나와 판본에 대한 연구도 연구지만, 홍루몽 자체가 중국문화를 읽을 수 있는 거대한 코드로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유불선이 혼효된 문화 그리고 융성기의 청대의 문물과 천문, 역법, 시계 등 서양외래문물 등이 유입되어 뒤섞이는 당시의 상황 또한 연구과제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모택동은 “홍루몽은 적어도 다섯번은 읽어야 그 진수를 알게 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홍루몽을 읽지 않으면 중국 봉건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이는 중국의 근대사회에서 상류층의 생활이 어떠했으며, 그로 인해 인민들이 얼마나 피폐했는가를 홍루몽이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의미이겠으나, 홍루몽이 써질 무렵의 중국은 청나라 강희 옹정 건륭 3대 황제의 치세가 융성하여 팍스 차이나를 구가하던 시절로 우리나라로는 정조 때였고 조선의 사신들이 북경에 도착하면 유리창 거리에서 서적과 각종 문물을 수집하기에 바빴고 조선으로 돌아와 청나라에서 배우자는 북학을 주장하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홍루몽에 나오는 단어나 시, 그리고 서사구조 만을 연구하여도 유교, 불교, 도교 뿐 아니라, 시 그리고 서상기 등의 연극, 그리고 축적되어 면면히 흘러내려온 중국문학의 대체를 감잡을 수 있을 정도의 문화의 보고로 이런 사정 상 홍학이라는 것이 나왔다.

4. 다시 홍루몽으로

홍루몽의 마지막 부분에 금릉의 미녀들이 태허환경으로 돌아가고 가보옥마저 속세를 떠난 후

天外書傳天外事   하늘 밖의 책은 하늘 밖의 일을 전하고
兩番人作一番人   두 세상(현실과 태허환경) 사람은 한 세상(태허환경) 사람이 되었다.

고 쓰여 있다.

그렇다면 호접몽은 나비가 장자를 꿈꾸었던 것이 맞는다. 물론 나비는 악몽을 꾼 것이다.

또 하늘 밖의 책을 하늘 밖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라 이 세상에서 읽을 수 없듯 “사실 나는 귀신이다. 산목숨으로서 이렇게 외로울 수는 없는 법이다”고 쓴 고대 시인 침연이 없는 만큼 김경주의 이 프랑켄슈타인 언어는 진여복지(眞如福地)의 세상에는 통하지 않는다.

태허환경에 반하는 진여복지에는 다음과 같은 대련이 씌여 있다.

假去眞來眞勝假   가짜가 가고 진짜가 오매 진짜가 가짜를 누르고
無原有時有非無   없음은 본시 있는 것임에 있음은 없음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진여복지보다는 태허환경 쪽이 마음에 든다.

This Post Has 4 Comments

  1. blueprint

    홍루몽은 제가 미국에 살 적 ‘율리시스’ 에 느꼈던 읽고 싶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던 그런 작품이었는데 여인님의 글을 보니 한번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1. 旅인

      ‘율리시스’는 명성 때문에 전혀 읽어 볼 생각이 없는 첵이지만, ‘源氏物語’와 ‘홍루몽’은 늘 읽고 싶었습니다. 10권짜리와 12권짜리 두 책을 놓고 홍루몽을 택한 것은 대학시절 2단 세로 인쇄로 되어 낱권이 지금의 3권 정도되는 낱권짜리 홍루몽을 읽은 후, 늘 한번 더 읽어보아야지 하는 생각 때문에 읽었습니다. 중국 문화 전체를 한 권의 소설에 담아냈다는 것, 그리고 현실과 신화와 꿈으로 버무려 냈다는 것은 놀랍습니다. 누군가는 소주의 ‘졸정원’이 홍루몽의 무대라고 하는데, 소설의 대관원과 졸정원의 모습은 유사한 데가 있습니다.

  2. ree얼리티

    어렵지만 무엇에 홀린듯 읽어내려 갔습니다.
    그러면서 “석두’라는 단어에서 막내아이의 태몽이 생각났어요.
    “받을 것을 준비하라”는 말씀과 함께 하늘에서 구슬같은 우박이 떨어졌는데
    아무 준비도 없었던 저는 두리번 거리다 말굽유같은 돌로된 그릇을 들고 있었는데
    우박처럼 떨어지는 구슬들이 그릇에 튕기면서 안타까웠던 …
    제대로된 그릇을 준비하지 못했음에, 나로 인해 담기지 못하고 떨어지는 그 모습에…
    온통 푸른빛의 회색의 하늘에서 내게 담긴 몇 안되는 구슬을 바라보던…

    현실과 신화와 꿈은 볼 수 없는 것들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마력이 있네요.~~

    1. 旅인

      세익스피어는 읽어야하고, 노트르담 성당이나 로마교황청은 가봐야 하는 곳처럼 말해지면서도, 홍루몽에 대해서 모르고 공자의 문묘등은 고루하다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홍루몽이란 문학작품은 중국문화와 그들의 사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주리라고 믿습니다.

      아마 아드님에 대한 태몽은 작은 그릇에 담을 것이 아니며 또 내 품에서만 영롱하게 반짝일 수는 없다는 뜻일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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