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한국의 미 특강’

엇그제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하여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여주지청장)이 청문회에 출석하여 진술한 것들과 관련하여 ‘항명’, ‘하극상’ 등의 낱말들이 신문과 뉴스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항명’은 상명하복의 준말로 항상 전시를 염두에 두고 있는 군과 같은 곳에서 기와 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상급 지휘자의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것을 뜻하며, ‘하극상’은 주로 무신정권이나 사무라이 혹은 조폭 세계에서 꼬붕이 오야붕을 범하는 것을 뜻하며 역적질과 같은 반란이나 5.16 쿠테타와 같은 최고 통수권자에게 총칼을 들이대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사람이나 폭력이 아닌 법이 지배하는 국가원리, 즉 헌법원리에 따르는 법치주의 국가에서 ‘항명’과 ‘하극상’이라는 단어가 버젓이 일간지를 장식하고 있다는 것은, 병영화된 식민지 시대를 지나 박정희, 전두환 두 군사정권의 엄혹한 시절의 군사문화의 껍질을 아직도 벗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지나, 오히려 회귀해야겠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항명이며, 주권자인 국민에 대한 하극상인 것이다.

그래서 검사 윤석열은 청문회에서 댓글 수사를 가로막는 거대세력을 향하여 소리높혀 외친다.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엄중한 사건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즐겁게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을 읽고 있었다.

책 219쪽을 열자, 김홍도의 해탐노화도(蟹貪蘆花圖)가 눈에 들어왔다. 게(蟹) 두마리가 갈대꽃(蘆花)을 결사적으로 부둥켜 안고(貪) 있는 그림이다. 갈대 로(蘆)자는 과거에 붙은 선비에게 임금이 주는 고기 려(臚)자와 소리가 같아서 과거에 붙는다는 뜻이고, 두마리는 소과, 대과를 다 붙으라는 격려이며, 게는 껍질이 딱딱하기 때문에 한자로 갑(甲) 즉 장원급제를 하라는 뜻이라고 오주석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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蟹貪蘆花圖

이 그림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화제다. 화제는 해룡왕처야횡행(海龍王處也橫行) 즉

‘바다 속 용왕님 계신 곳에서도, 나는 야 옆으로 걷는다'(책 220쪽)

이 말이야말로 윤석열 검사의 기개를 단적으로 표현한 것 같다.

횡행이란 모로 가다, 거리낌없이 멋대로 행동한다는 것을 뜻한다. 정조를 모시던 김홍도는 과거에 급제하라고 그림을 그려주면서도 왕의 신하가 되더라도 자신의 천연의 본성이나 마땅히 해야할 것을 하지 못하고, 왕의 눈치나 보고 높은 자리에 있는 어르신의 눈치를 보지 말라고 이렇게 화제를 단다.

윤석열 검사야말로 단원이 바라마지 않던 관리, 단창필마로 횡행한 진정한 의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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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의 그림, ‘해탐노화도’ 하나만으로도 이 시대의 의인의 표상을 짚어낼 수 있도록 설명해주는 오주석 선생의 특강은 쉽고, 재미있고, 신난다. 우리 그림의 속내를 펼쳐 “이런 것을 보신 적이 있오?”라고 그는 묻는다. 거기에는 가방끈 길이와 관련된 내용은 일체 없다. 단지 그가 우리 그림에 들여왔던 애정과 시간, 그리고 그 시간동안 그가 얼마나 즐거워했는가를 느낄 수 있다.

그가 제시하는 우리 그림을 보는 원칙은 간단하다.

‘옛 사람의 눈으로 보고, 옛사람의 마음으로 느낀다’ 인데,

가장 보기 좋은 거리인 그림의 대각선 길이의 1~1.5배 거리에서 천천히, (우리나라의 옛그림이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글을 써내려가듯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쓰다듬듯이 보아줄 것과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 보아야 한다며 함께 살펴보자고 한다.

그와 함께 우리 그림을 살펴보는 여행은 정말 쉬우면서도, 즐겁고, 엄청난 것들을 알게 해준다.

This Post Has 2 Comments

  1. 후박나무

    ‘옛 사람의 눈으로 보고, 옛 사람의 마음으로 느낀다.”
    멋진 원칙인거 같아요^^

    이 구절을 읽으니
    저도 다음에 우리 그림을 만나면 적용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1. 旅인

      오주석씨의 이 말은 슐라이어마허의 ‘추체험’이라는 해석학적 언명에 바탕한 것 같습니다. 해석자(관객)가 저자의 창작과정을 재구성하는 과정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저자가 살았던 세계에 대한 이해(간접경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청대의 고증학에서는 우리가 보고 해석해야 할 작품(텍스트)이 본증(논어와 같은 해석해야 할 텍스트), 본증의 해석을 치밀하게 하기 위해서 참고해야 할 자료들이 방증(공자가어, 사기의 공자세가, 맹자, 중용, 대학, 예기, 춘추, 공자에 대한 비판이 많이 나오는 장자 등)이 될 것입니다.
      이런 추체험을 위해서는 결국 제가 보아야 할 당시의 다른 작품과 역사적 배경, 사람들의 의식구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 하며, 이런 이해의 문제야 말로 우리나라의 선비가 사서삼경이나 후벼파고 육법전서를 달달 외어 판검사를 해먹겠다는 식으로 안된다는 자각이 나옵니다. 엄청난 독서와 자료분석 능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고증학이 본격적으로 자라잡은 청나라 대에 이르러서 시문을 하는 선비나 학생의 개념이 ‘독서인’으로 변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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