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한루에서

광한루

1444년 전라관찰사 정인지가 광통루를 거닐다가 아름다운 경치에 취하여 이곳을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 속의 광한청허부(廣寒淸虛府)라 칭한 후 ‘광한루’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중국 5대 後周 때 왕인유(王仁裕 : 880~956)가 지은 ‘開元天寶遺事’ 1당 현종은 집권 초기에는 ‘개원(開元)의 치(治)’라 불리는 당나라의 전성기를 이룬 인물인지만, 천보(天寶) 연호를 사용하던 집권 후기에는 당나라의 쇠퇴를 가져온 인물이다. 즉 개원천보유사란 현종이 남긴 사적이라는 뜻이다 에 보면 ‘明皇遊月宮, 見榜曰 廣寒淸虛之府’ 2명황(현종의 시호)께서 달나라 궁에서 노니시다가, 붙어있는 방을 보시고서 말씀하시기를 넓고 차고 맑고 빈 곳이구나.라는 글이 나온다.

20130924 여행

2 thoughts on “광한루에서”

  1. 역사적 배경을 어느 정도 숙지하고 여행을 가면,
    좀 더 깊이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1. 저도 광한루가 예전에 무엇을 하던 곳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남원부에 있던 누각이었겠지요?

      開元天寶遺事’의 明皇遊月宮, 見榜曰 廣寒淸虛之府 라는 내용은 「당 현종(현종 당시 쓰던 년호가 개원과 천보였고 당 명황으로 불렸던 모양입니다)이 달나라 궁궐로 놀러갔는데, 방을 본 즉 ‘넓고 차고 맑고 텅빈 곳’이라고 쓰여 있었다.」라는 뜻인가 봅니다.

      소동파의 적벽부에 달이 동산 위로 따올라(月出於東山之上) 북두성과 견우성 사이를 배회하니(徘徊於斗牛之間) 라는 장면을 보면 광한루(달)가 오작교(견우와 직녀) 옆에 있는 장면과 흡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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