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風立ちぬ)를 보았다. 미야자키 하야오(宮崎 駿)의 마지막 작품인지도 모른다.

가미카제 특공대로 유명한 제로센(零戰 : A6M 三菱零式艦上戰鬪機의 준말) 전투기의 설계자인 호리코시 지로(堀越二郞 : 1903~1982)를 그린 애니메이션라서, 반전주의자이자 공산주의자인 하야오에게 맞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보고 나니 그의 은퇴작품으로는 아주 적합한 것 같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버지 ‘미야자키 가쓰지는 미야자키 항공사의 관리자로 일했다. 그 회사는 A6M 제로 전투기에 장착하는 방향타를 만들었다. 이 때부터 미야자키는 자주 비행기를 그리기 시작했고, 그 후 일생동안 비행의 매력에 빠져 지냈다.<위키백과>고 한다. 하지만 하야오는 아버지를 몹시 경박한 사람, 불량품을 뇌물을 주고 납품하는 치사한 인간으로 경멸했다.

좌우지간 하야오의 만화는 미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제로센이라는 함재기에서 비롯하여 나우시카의 멋진 뫼베, 창공의 섬인 라퓨타로 날아가는 비행체들과 붉은 돼지 포르코의 멋진 수상 비행기, 그리고 마녀 키키의 빗자루, 혹은 토토로가 타고 날아오르는 팽이까지 다양한 은유로 우리에게 창공이 얼마나 아름답고 나는 것이 얼마나 자유로운 것인가를 보여주었다.

이제 나이든 하야오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이 그려왔던 ‘날 것들’에 대한 담담하면서도 처절한 반성을 호리코시 지로라는 인물을 통하여 그려낸다. 인명을 살상하는 전쟁의 도구로 쓰일 것임을 알면서도 지로는 왜 비행기 개발에 인생을 바쳤는가 하고 미야자키 하야오는 묻는다.

그에 대한 답은, “비행기는 아름다워도 저주 받은 꿈이다”라는 애니 속의 독백처럼, 귀축미영을 몰아내고 만주, 중국, 남지나, 태평양 곳곳에 욱일승천기를 휘날리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단지 “바람이 분다. 살아야 한다.”라는 발레리의 싯귀처럼, 가슴 속에 바람이 불고 살기 위해서는 꿈인 비행기를 날리고 싶다는 순수하고 단순한 열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라고, 하야오는 호리코시 지로를 변명한다.

이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평하는 우리의 글들을 보면, 제국주의를 미화하는 만화다. 특히 관동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 미쓰비시 중공업의 강제징용자들을 생각하면 기분이 더러웠다. 호리코시 지로가 자신이 개발한 제로전투기가 중국본토의 중국인들을 살상한 것에 대하여 사과를 하면서도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던 조선인에 대해서는 사죄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심심파적으로 이 애니메이션에 대해 핀잔을 하기 이전에, 이 애니가 일본에 개봉되는 올 7월 20일 이전인 7월 10일 하야오는 평화헌법의 개정을 시도하려는 아베 신조를 향하여 “생각이 모자라는 인간이 헌법 같은 데 손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일갈한다. 그는 또 헌법 개정론자들이 결국 “전쟁 전의 일본은 나쁘지 않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라며 “일본은 나빴다”고 못을 박는다. 그는 “위안부 문제도 각 민족의 자긍심 문제이기 때문에 분명히 사죄하고 제대로 배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선입견없이 시각을 바로 하고 이 애니메이션을 볼 필요가 있다.

아주 오래 전 일본의 극우우익 작가 야마오카 소하치가 쓴 ‘대망’의 열풍이 한반도를 휩쓸 때, 친구의 집에서 고미가와 준뻬이(五味川純平)의 ‘인간의 조건’ 세 권을 밤새도록 읽고 친구의 집을 나선 적이 있다.

그 소설을 읽고 난 마음은 처참했다. 일본군의 포로가 된 중국인 학자가 종이로 된 봉투를 보자 주인공 가지에게 펜을 애걸하여 깨알같은 글씨로 쓴 처참한 장문의 글 때문이기도 했지만, 일본인을 ‘존재하지 않았어야 할 말종들’이라고 질타한 고미가와 준뻬이가 경멸 섞인 눈으로 만주의 조선인들을 바라본 탓이기도 했다.

이러한 조선인에 대한 경멸적인 시선은 영화로 유명한 ‘콰이강의 다리’의 포로수용소의 역사에서도 드러난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수용소의 소장을 비롯 관리자들에 대한 가혹행위 등의 전범재판이 벌어졌는데, 포로소장 등 일본인들은 포로들의 선처요구로 전원 무사히 귀국했지만, 하급 조선인들에 대해서는 악랄하고 야비한 학대를 견딜수가 없었다는 포로들의 가차없는 진술로 그만 사형 및 무기징역에 처해진다.

강제로 징용과 학도병으로 끌려간 조선인에 대하여 일급전범에 준하는 사형에 처하고 실질적인 책임자인 사이또 대령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처벌도 없었다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분개하지만, 콰이강의 조선인들은 아우슈비츠로 유명한 아이히만을 떠올리게 한다.

아이히만은 “나는 단지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 신 앞에서는 유죄이지만, 이 법 앞에선 무죄다.”라고 예루살렘의 법정에서 변명한다. 검사는 이에 대하여 그의 죄를 “의심하지 않은 죄, 생각하지 않은 죄, 그리고 행동하지 않은 죄, 이것이 피고의 진짜 죄”라고 단죄한다. 이 재판을 지켜보았던 유태인 기자 한나 아렌트는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죄! 다만 희생자를 타자화한 것은 잘못이다. 이웃은 우리이지, 타인이 아니다.”라고 한다. 조선인들이 상관의 명령에 따랐다는 것만으로 무죄가 될 수는 없으며, 이 콰이강의 전범 재판이야말로 어쩔 수 없으면서도 비굴하고 굴곡진 식민지 조선인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식민지 생활은 한 민족을 날카로운 생존 환경에 몰아넣음으로써 굴종적이고 야비하게 하지만, 북만주에서 복무했던 고미가와 준뻬이가 본 조선인들은 일본인들보다 더 잔혹하고 야비하였으며, 일본인에게 빌붙어 살려고 하는 자존심이나 염치 등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하야오는 조선인에 대하여 사과를 하기 위하여 이 애니메이션을 만들지 않았다. 지로의 제로센은 한반도에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았고, 준뻬이는 2차대전 당시의 일본의 군국주의가 대륙에서 자행한 야만에 대해서 분노했을 뿐이다.

이들에게 조선이란 부차적이고 지엽적일 뿐이다.

일본에게 사과를 요구하기 이전에, 스스로 해방 이후의 아리송한 과거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친일 등 반민족 행위자를 가려내고,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고 양민을 학살한 것에 대하여 진정으로 사과를 하여야 한다.

자신 스스로 앞가림조차 못하고, 반성조차 할 줄도 모르면서 사과를 받아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맹자는 상서의 태갑편을 들어, “하늘이 주는 재앙은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지은 재앙에서 벗어날 수 없다 1太甲 曰, 天作孼 猶可違, 自作孼 不可活 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우리는 하늘이 주는 재앙은 물러났지만, 스스로 지은 재앙에서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고 점점 수령에 빠져드는 것 같다.

아무튼 미야자키 하야오는 군국주의 속에서 고뇌하며, 창공을 나는 것을 꿈꾸었던 소년, 호리코시 지로를 통하여 자신의 생애와 은퇴를 암시한다.

“창조적인 시간은 10년밖에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한 카프로니 백작의 대사에 앞서, 하야오는 이미 “나는 10년이 벌써 지났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한다. 결국 이 애니메이션이 한국에 개봉되기 며칠 전인 9월 1일 은퇴를 선언한다.

몇번의 은퇴 선언을 했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이번 은퇴는 진짜같다. 그리고 더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달라고 하기에는 그의 나이 72세다.

이 애니메이션은 더 이상 판타지가 아닌 바람이 불고 결국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아무리 지로가 일본제국대학을 수석졸업을 한 천재라고 해도 사람의 이야기는 불우하다. 찬란하다고 하는 인생조차 늘 한 구석은 불우한 법이기 때문이다.

불우하지 않다면, 사람이 무슨 까닭에 비행기를 만들고 창공을 그리워하며 꿈을 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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