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학적 사건

1. 貞吉, 貞凶

위의 두 문장은 주역에 허다하게 보이는 문장이다. 이천년이 넘도록 이 문장들은 ‘곧으면 길하다‘(貞吉), ‘곧아도 흉하다‘(貞凶)로 이해(해석)했다.

최근 중국의 고증역학의 대표적인 학자인 이경지(李鏡池 : 1902-1975) 선생은 서주 초에 형성된 주역의 이러한 문장들에 대한 이해가 춘추시대 이후 어그러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위의 문장의 해석은 ‘점이 길하다‘, ‘점은 흉하다‘로 이해(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 곧으면 길하다 vs. 점은 길하다

“곧으면 길하다”라는 이 짧은 문장은 주역을 모든 경전(시경, 서경, 역경, 예기, 춘추)의 宗으로 만들고 극단적으로 “서양의 2000년 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는 화이트 헤드의 말에 빗대어 “동양철학은 주역의 각주에 불과하다”고 할 정도의 지위를 차지하게 만든다. 아니 그것보다 동양의 자연과학, 법제, 질서, 문화, 예술 모두가 이 “곧으면 길하다”라는 오역된 문장 위에 구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면, “점은 길하다”라는 문장은 주역이 술사들의 본 점의 기록에 불과하지, 거기에는 어떠한 도덕적인 명제도 고도의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언명도 포함하지 않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3. 元 亨 利 貞

이 원형이정은 주역의 첫괘인 건괘의 괘사다. 통상의 번역은 건(乾)은 “크게 형통하고 곧으면 이롭다”이다. 혹은 “크고 형통하고 이로우며 곧다”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공자의 후인의 저작이라고 추정되는 건괘의 문언에는 원(元)은 착함이 자라는 것이요, 형(亨)은 아름다움이 모인 것이요, 이(利)는 의로움이 조화를 이룬 것이요, 정(貞)은 사물의 근간이다. 군자는 인을 체득하여 사람을 자라게 할 수 있고, 아름다움을 모아 예에 합치시킬 수 있고, 사물을 이롭게 하여 의로움과 조화를 이루게 할 수 있고, 곧음을 굳건히 하여 사물의 근간이 되게 할 수 있다. 군자는 이 4가지 덕을 행하는 고로 건은 원형이정이라고 하는 것 1元者, 善之長也. 亨者, 嘉之會也, 利者, 義之和也. 貞者, 事之幹也. 君子體仁足以長人, 嘉會足以合禮, 利物足以和義, 貞固足以幹事. 君子行此四德, 故曰, 乾, 元亨利貞 이라고 원형이정 즉 하늘의 4德이 사람의 4德인 인의예지와 조응하는 관계를 지닌다고 연역해낸다.

이경지 선생의 이론에 따르면 “건은 크게 형통하고, 이롭다는 점이다”(乾, 元亨 利貞)라는 뜻이다. 즉 건괘가 다른 점괘보다 더 형통하고 이롭다는 점괘라는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4. 경학적인 의미

“점은 길하다”는 단순한 해석은 공자 사후의 의리역, 한대 이후 발전되어온 상수학, 위진남북조 이후의 의리학, 하도 낙서 등의 신비화된 도상학, 팔괘와 음양가의 음양오행이론을 결합시키려는 부단한 노력, 괘변설과 천문학 등등의 것들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단적으로 드러내며, 한낱 점책에 불과한 주역이 경(經)으로서의 존재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것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 이후, 서구의 역사와 바티칸, 그리고 유럽에 산재한 교회와 성당 및 기독교적 문물을 바라보게 되는 시야와 하등 다를 것이 없다.

하지만 이경지 선생의 주역 전체에 산재되어 있는 정(貞)이 점(占)과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고증이야말로 신비화되지 않은 주역의 실체와 주역 안의 해석하기 어렵고, 도덕과 윤리적인 관점에서 견강부회된 이해와 해석을 점(占)이라는 단순한 단어 하나로 견강부회된 의미의 덧칠을 깍아내고 점사의 내용을 뚜렷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정현에서 왕필을 거쳐 주희에 이르기 까지 중국의 그 기라성같은 학자들이 자신들이 늘 참고하는 허신의 설문해자의 “정은 점에 묻는 것이다”(貞:卜問也)를 외면한 채, 아무런 의심없이 단(彖 : 이 또한 주역의 성립 이후 공자의 후인 등에 의해 저작됨)에 보이는 “정은 곧은 것이다”(貞, 正也)만을 맹신하고 추종한 것일까?

정(貞)을 점으로 해석한다는 자체가 기독교의 사제가 예수를 신의 아들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This Post Has 2 Comments

  1. 후박나무

    동양철학은 주역의 각주에 불과하다…
    이전엔 주역을 단순히 점치는 책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요즘은 방대하고 깊은 우주의 질서를 담고 있는 철학서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역을 공부해보진 않았지만, 얼핏 듣거나 보기에…ㅎ)

    1. 旅인

      점을 치기 위한 책이라기 보다 점술사들이 점을 친 내용을 기록한 책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중국의 고대 역사서인 좌전이나 국어를 보면 점을 친 내용이 나오는데 일부는 주역과 일치하기도 하고 완전히 다른 내용이기도 합니다.
      갑골문의 경우를 살펴보면 점을 친 내용을 기록하여 보관한 후 점이 효험이 있는지를 살펴보곤 했는데, 아마 주역도 점사를 기록해 두었다가 후일에 벌어진 일들과 비교 검증을 해보고 효험이 있는 점사들만 모아 편집한 책으로 보입니다.
      그 후 공자의 후인들이 단, 계사, 상, 문언 등 십익을 편찬하여 주역에 삽입함에 따라 동양 사상의 근간이 됩니다.
      주역은 개천설이라는 오래된 천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주비산경이라는 고대의 수학에 따라 형성되었고 이 주역의 질서에 따라 동양의학의 기본이 되는 황제내경이라는 의학과 고대의 법제와 규칙인 홍범구주 등이 역에 입각하고 있지만, 다소 견강부회한 면을 어쩔 수는 없습니다.
      주역을 공부하면, 서울이나 각 궁궐들이 어떠한 질서 속에 배치되고 건설되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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