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에…

1. 퍼시픽 림

처음으로 3D 아이맥스로 본 영화다. 처음으로 경험한 3D 기술이 경이롭다.

바다에서 외계 거대생물체가 출현하고 인류가 만든 로봇이 이들을 박멸한다는 영화 내용은 진부하다 못해 아무런 내용이 없다. 미래의 세계와 바다 속은 입체로 본다는 것은 가상세계가 그려내는 현실의 모사력이 놀랍다는 것을 떠나 시뮬라시옹이 만들어 내는 시뮬라크르의 마지막 종착점은 어디일 것인가를 기대케 한다.

2. 설국열차

이 영화를 좌빨이 만든 영화라고 해야 할지 꼴통 보수가 만든 체제 유지 차원의 이야기라고 해야할 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이 설국열차는 쓰레기같은 인간들이 무임승차한 맨 뒷칸과 정당하게 승차한 사람들의 앞 칸이 있고 설국열차라는 마지막 생존자들의 세계를 이끌어나갈 맨 앞의 엔진실이 있다. 살아남은 세계는 노아의 방주와는 달리 맨 뒤로 부터 맨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둘러갈 수 없다. 한 칸씩 한 칸씩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 열차는 열어버린 세상이 녹을 때까지 하염없이 달릴 뿐이고, 대지의 얼음과 눈이 녹고 이윽고 열차가 멈춰서기 까지 쓰레기들은 어둡고 더러운 맨 뒷칸에서 갖은 모멸을 받으며 살아남아야 한다.

이 쓰레기같은 인간들이 17년간 머물렀던 마지막 칸에서 벗어나 앞 칸으로 앞 칸으로 나아간다.

  – 쓰레기들의 반란 주모자 커티스 (크리스 에반스 분)

  • 혁명 혹은 반란의 시작은 어떠한 사상에 입각하지 않는다.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절대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쓰레기들의 몸부림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몸부림을 한 쪽 방향으로 이끄는 리더가 만들어지며, 모든 에너지를 한 방향으로 집중하기 위해서, 혁명의 완결을 위해서 이념이 필요한 것이다. 설국열차의 마지막 칸의 쓰레기들과 커티스의 반란은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다.

  – 설국열차의 수상 메이슨 (틸다 스윈튼 분)

  • 대한민국에 공산정권이 들어선다면, 그 정권 아래서 떵떵거리고 사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그러하듯이 친일파, 민주주의를 아작 내려고 하는 수구 보수세력들이야말로 순식간에 빨간완장을 바꿔 차고 요직을 차지하고 잘 살 것이라는 불길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일제시대 때에 빌빌대었던 사람들은 자유당 시절에도, 공화당 시절에도, 언제든지 빌빌거리게 마련이며, 잘 나가던 놈들은 해방이 되도, 전쟁이 나도, 군사정권이 들어서도, 민주주의가 와도, IMF, 금융위기가 와도 잘 나간다. 설국열차의 수상 메이슨은 어떤 권력이라도 빌붙어 살아갈 수 있는 야비함을 잘 보여준다.

  – 설국열차의 창조주 월포드(에드 해리슨 분) :

  • 한 세계의 창조주는 자신이 창조한 세계를 위하여 개별적인 존재들에 대한 사랑이나 연민은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노자는 천지는 어질지 않다(天地不仁)고 한다. 풀 한포기에 대한 연민과 동정이야말로 우주 전체라는 대국을 그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열차의 창조주 월포드는 설국열차의 질서(쓰레기들의 숫자 및 객실의 승객들의 수)를 이루어야만 설국열차에 탑승한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진리를 알고 그에 따르고 있다. 하지만 왜 꼭 마지막 칸의 쓰레기들만 질서와 균형을 이루는 데 희생되어야 하는 지? 그는 부르주아 창조주이기 때문이다.

  – 설국열차의 문 따개 남궁민수(송강호 분) :

  • 설국열차에서 제일로 질이 나쁜 놈이다. 자신의 몽상과 신념이라면 온 세상이 파괴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개혁과 혁신 이전에 인류가 살아갈 수 있는 조건에 대해서 먼저 생각을 해야 하지만 이 친구는 특정 마약에 빠져 있어서 객관적인 상황 판단 능력을 결하고 있다. 설국열차의 외부의 문을 열기 위하여 폭탄을 터트리는 바람에 노아의 방주인 설국열차는 궤도를 이탈하여 좌초하고 만다.

하지만 남궁민수를 이해할 것 같다. 패자부활전은 없고 한번 잘못되면 그것으로 끝장인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부모를 잘 만나던지 공부를 잘해야 한다. 아니면 세상이 망하던지 내가 죽어야 한다. 남궁민수의 선택은 세상이 망하느냐 내가 죽느냐에 가로놓여 있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그런 한국을 그렸다. 내가 앞으로 나아가면 다른 불쌍한 놈이 아래로 기어내려가 쓰레기로 전락해야 한다. 이런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계급 간을 갈라놓는 판이 깨지고 일련의 라인은 교란되어야 한다. 즉 김밥 옆구리가 터져야 앞 칸의 부르주아나 뒷 칸의 쓰레기들 모두가 대지 위로 기어나와 더불어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열망이 우리들처럼 타오르는 나라가 또 따로 있을까? 즉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계층 간 이동이 거의 차단된 답답한 우리나라를 그리고 있다. 이런 답답한 상황이 타개되지 않는다면 결국 대한민국호는 궤도를 이탈하고 말 것이라는 위태로운 경고를 그는 발하고 있는 것이다.

천사의 부름

그동안 주역관련 서적을 드립다 읽다가 딸내미가 읽다만 귀욤 뮈소라는 불란서 작가의 ‘천사의 부름’이라는 소설을 읽게 되었다. 공항 로비에서 부딪힌 낯선 남녀의 바뀐 스마트 폰 때문에 대서양을 사이로 벌어지게 된 일들을 추리소설 형식으로 풀어가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하지만 불란서 소설마저 이렇게 감각적이고 흥미위주로 바뀌어 간다는 사실은 안타깝다.

This Post Has 4 Comments

  1. 플로라

    영화를 아직 안 보았는데, 김밥옆구리를 통해 영화를 다 본 기분이 드는군요.

    1. 旅인

      아들놈이 말하길, 설국열차에 나온 객차는 스물 몇 밖에 안되는 데 전체로는 객차수가 천개를 넘고 승차인원 만 십만명이라고 합니다.

      객차 한량을 접수하는 데 한시간이 걸리고 하루 여덟시간을 싸운다면 엔진실에 당도하는데 약 넉달이 걸린다는 계산입니다.

      영화에 대한 비평이 워낙 엇갈려서 추천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보시는 것이 제일 나을 듯 합니다

  2. 후박나무

    그런 한국이 담긴 설국열차…
    아~ 영화를 보진 않았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한 번 돌아보게 만들어줄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인님 포스트 보고 영화를 보면 영화 내용이 더 잘 이해될 거 같아요.^ ^

    기욤 뮈소…
    요즘은 소설이 참 않읽혀서…ㅎ
    이름만 들어본 작가네요..~.~

    1. 旅인

      귀욤 뮈소의 글은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감각적인 소설이 아닌가 싶습니다. 환상적이진 않지만…

      일단 잡으면 그냥 쭉 읽고 잊어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습니다. 하지만 사서 읽기에는 다소 아까운 그런 책입니다.

      설국열차는 영화를 볼 때는 모르겠더니 이렇게 글로 써보니 정리가 됩니다. 일단 아무 생각없이 즐겁게 보고 난 후 아하 그렇구나 하고 생각을 떠올려보는 것도 괜차노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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