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도의 그 날 새벽

당신은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내가 한번 그 인생을 스쳐가면 그 사람은 나를 잊지 못하게 됩니다.
왜지?
내가 그 사람을 언제까지나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빌라도는 놀라서 얼굴을 들었다. 그때 창 밖에서는 바라바를 살리고 예수를 죽이라는 군중의 고함소리가 합창처럼 들려왔다.

– 박완서씨의 책 속의 엔도 슈사쿠의 <사해 부근에서> 책에서 따온 구절 –

이웃블로그의 사진 속의 이 글을 읽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사람들이 자신을 잊지 못하는 이유가 자신이 “그 사람을 언제까지나 사랑하기 때문”이라니… 한 젊은이가 자신의 인생을 스쳐지나간 모든 사람을 영원히 사랑하다니… 또 창 밖의 군중들은 무슨 연고로 사랑하는 이 젊은이를 죽이라고 바락바락 외쳐대는지?

결국 복음서의 이 부분을 다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배교자라면, 믿음에 굴복할 것을 요구하고 자신이 굴복한 믿음에 대해서는 어떠한 의혹도 가져서는 안된다는 사도신경의 가혹한 신조(Creed)로부터 추출된 탓일지도 모른다. 나는 배교를 한 것이 아니라, 마음을 따른 탓에 파문당한 셈이다.

나는, 결코, 사도신경을 인정할 수가 없다.

본디오 빌라도라는 총독은 예수의 공생애의 맨 마지막날 새벽에 예수를 만난다.

복음서를 읽으면 예수께서 죽던 그 날, 예수를 변호했던 유일한 인물이었던 빌라도를, 사도신경의 7행은 예수의 가해자라고 믿으라고 한다. 누가복음(23:4)에는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요한복음(18:38)에는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고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군중들에게 변호한다. 대신 마태와 마가복음에는 빌라도는 “어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마 27:23, 막 15:14)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라는 군중에게 절규처럼 묻는다. 그리고 빌라도는 물을 가져다 손을 씻으며 유대인들을 향하여 외친다.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마 27:24)

그 자리에 있던 대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은 “(좋다. 우리는 예수만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면 되니)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마 27:25) 소리친다.

더 이상 예수를 변호하기에 역부족인 것을 안 빌라도는 예수를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박히게 넘겨준다. 이것이 빌라도가 맞이한 그날 새벽 일의 전말이다.

“passus sub Pontio Pilato”
“suffered under Pontius Pilate”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개신교)

천주교와 (성공회)의 한글 번역은 “본디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치하에서) 고난을 받으시고”라고 되어 있다. 개신교의 번역에 맞는 영문이라면 ‘suffered from Pontius Pilate”여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개신교에서는 본디오 빌라도를 직접적인 가해자로 지목하고 있다. 천주교와 성공회의 해석은 본디오 빌라도가 통치하던 시기, 혹은 본디오 빌라도의 통치체제 아래라는 시기나 통치시스템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렇다고 천주교와 성공회가 맞다는 것도 아니다. 사실에 입각한다면, “본디오 빌라도가 변호하였으나,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가 맞다.

그러니까 사도신경은 빌라도 입장에서 보자면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이며, 대중 앞에서 손을 씻으며 자신이 무죄하다고 외쳤던 그로서는 처절하기 그지없는 누명이다.

다시 위에 예수와 빌라도가 나눈 대화로 돌아가보자,

공관복음서(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의하면, 예수가 빌라도와 만나 그 날 새벽에 나눈 이야기는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는 질문에 대하여 “네 말이 옳도다” 한마디 외에는 어떤 질문에도 대답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니 위의 글과 같은 대화는 공관복음서의 기자들의 기사에는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요한복음에서라면 가능한 일이다.

다시 그 날로 돌아가보자,

유월절(니산월 14일)을 기점으로 예루살렘에 소요가 있으리라는 첩보를 받은 빌라도는 총독부가 있는 지중해의 해변의 가이샤라에서 예루살렘으로 총독부를 임시로 옮기고 병력을 이동, 소요 사태를 대비하고 있었다.

총독으로 부임한 이후 유대 전통을 무시하고 우격다짐으로 통치를 한 탓에 발발한 몇 건의 소요사태로 그는 이미 황제 티베리우스의 눈 밖에 나 있었고, 소요사태가 재발할 경우 총독 해임과 함께 본국으로 소환되어 문책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게다가 이번에 발생할 소요의 규모 또한 예전과 다를 것이라는 첩보로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소요사태가 확산될 경우 데카폴리스의 병력을 이동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시리아 총독에게 당부할 정도로 상황은 급박했다.

유월절 예비일인 그 날 새벽 3~4시, 새벽닭이 운지 얼마 안된 시점에 산헤드린 공회에서 예수를 끌고와 빌라도에게 고발한다. 고소 내용인즉,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고 자칭 왕 그리스도라하더이다”(눅 23:2)는 것이었다.

요한복음의 기사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않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총독의 관정에 들지 않고, 문 밖에서 총독 빌라도의 판결을 기다렸다고 한다.

따라서 요한복음에 나온 총독 빌라도와 예수의 대화는 두 사람 혹은 그 자리에 있었던 로마군병이나 시위 등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내용이다. 따라서 요한복음의 기록은 제삼자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루머처럼) 알려졌거나 혹은 루머와 Q-자료를 참조한 기자의 창작이거나, 아니면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성경의 일자일획 이라도 성령이 임하여 기록되지 아니한 것이 없다는 이른바 축자영감(逐字靈感 : Verbal Inspiration)에 의한 기록일 지도 모른다. 어쩌자고 성령께서 공관복음의 기록과 다른 것을 요한복음에 기록토록 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예수를 본 빌라도는 자신이 딜렘마에 빠진 것을 직감한다. 대제사장과 서기관, 그리고 군중의 손을 들어줄 경우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예수에게 호산나를 외치던 예수의 추종자들이 소요를 일으킬 것이고, 예수를 풀어줄 경우 총독 관저를 둘러싸고 있는 대제사장과 군중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었다. 이들이 소요를 일으킬 경우 예루살렘의 어두운 골목 그림자 아래 웅크리고 있을 열심당원들이 가세하여 폭동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말 것이다.

빌라도는 예수를 가까이로 불러 “(정말)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분명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고 “이 젊은이가 자신이 왕이라고 한 적이 없다고 하니, 나도 어쩔 수가 없지 않느냐? 나는 증거를 찾지 못하였으니 너희들이 알아서 처리하라.”며 예수를 넘겨줄 요량이었으나, 예수는 날 잡아잡수라고 “네 말이 옳도다”라고 대답했다고 공관복음서에는 기록되어있다.(마 27:11, 막 15:2, 눅 23:3)

하지만 요한복음에는 대제사장과 군중들로 부터 벗어나, 관정 안으로 들어간 빌라도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하고 빌라도의 질문을 회피한다. 그러자 빌라도는 역정을 내듯이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며 되묻는다. 그러자 예수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고 한다. 빌라도는 즉답을 회피하는 예수에게 짜증섞인 목소리로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그러자 예수께서는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고 큰 소리로 말한 후 빌라도의 눈을 바라보며, 나즈막한 소리로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고 말한다.(요 18:33~37)

이 말을 들은 빌라도는 놀라서 “(도대체 네가 말하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는다.(요 18:38)

나로서도 궁금한 (진리가 무엇이냐는) 빌라도의 질문에 예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기록은 (진리에 대하여 말씀하고 증거한다는 성경임에도) 누락되어 있다. 생애의 마지막을 맞이하신 예수께서는 진리에 대한 무서운 진실을 밝혔을지도 모른다. 가령 <영원한 사랑의 포로가 되면, 영영 자신(예수)을 잊지 못하리라>는 등의 가혹한 진실 말이다. 자신의 왕국은 욕망과 재물과 권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신의 진노와 같고, 영원하여 잊을 수도, 도망할 수도 없는 사랑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그리하여 사랑의 가혹함보다 채찍질로 살점이 떨어지고 못이 발과 손등의 살과 뼈를 뜷고 찢는 통고가 오히려 자비처럼 느껴지는 잔혹한 진리를 말했는지도 모른다.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르겠으나 빌라도는 예수를 남겨둔 채 관정 밖으로 나가, 유대인들에게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고 소리친다.(요 18:38) 누가복음에는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눅 23:4)라고 기록되어 있다.

누가복음의 이 구절에 대하여 군중들이 “저가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케 하나이다”(눅 23:5)라고 하자 빌라도는 예수가 “갈릴리 사람이냐?”(23:6) 묻고는 예수 판결의 책임을 돌리기 위하여 갈릴리의 통치자인 헤롯 안티바에게 보낸다. 예수의 이적에 대하여 호기심이 많던 헤롯은 이적을 행해보라고 하는 등 희롱을 하고 심문을 했으나, 예수는 침묵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답을 얻지 못하자 예수에게 유대인의 왕에 걸맞는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다시 돌려보낸다.

헤롯이 예수를 죽이지 않고 돌려보낸 것을 빌미로, 빌라도는 대제사장과 관원, 백성들을 불러 모으고(23:13), “너희의 고소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헤롯이 또한 그렇게 하여 저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도다. 보라, 저의 행한 것은 죽일 일이 없느리라.”(23:14~15)고 한 후 “(그냥) 때려서 놓겠노라.”(23:16)며 살려주자고 유대인들을 어룬다.

반면 다른 세복음서에서는 명절(유월절)이 되면 총독이 식민지 백성의 소원을 들어 죄수 하나를 사면해 주는 관례를 이용하여 풀어줄테니 유대인의 왕을 놓아주기를 원하느냐고 묻는다.

이에 대하여 사복음서 모두 예수가 아니라, 바라바를 놓아달라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공관복음서에는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예수을 어떻게 처리하랴?”고 묻자 “십자가에 못박으시오”라고 했고 이에 대하여 빌라도는 무슨 악한 일을 했기에 이토록 가혹한 사형을 요구하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막무가내로 “십자가, 십자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친다.

빌라도는 그 광경을 보고, 그냥 놔두면 민란으로 번질 것이 두려워 예수에게 채찍질을 하고 십자가에 못박도록 그를 내준다.

하지만 요한복음에는 영화 등에서 우리가 본 장면들이 연출된다. 바라바를 놓아달라는 군중의 요구를 듣고, 빌라도는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을 한다. 군병들이 가시로 만든 면류관을 씌우고 자색옷을 입히고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라며 손바닥으로 다시 때린다.(19:1~3)

빌라도는 군중들 앞으로 나아가서 말한다.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함이로라.”(19:4)하고 채찍질과 구타로 흘린 피로 칠갑을 한 예수를 이끌고 나와 군중에게 보인다.

“보라, 이 사람이로다.”(19:5)

대제사장과 하속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를 지르자, 빌라도는
“(그렇다면)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19:6)

유대인들은 이에 대하여,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은, 저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나이다.”(19:7)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들은 빌라도는 두려워 관정 안으로 들어가 예수에게 다시 묻는다.
“너는 어디로서냐?”(Whence art thou? = Where are you come from?)

이 질문에 예수가 대답하지 않자,(19:8~9)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19:10)

이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넘겨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고 한다.(19:11)

빌라도가 이렇게 예수를 놓아주려고 하자, 유대인들이 들고 일어나 말한다.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19:12)

예수를 살려주는 일은 반역자를 옹호하는 것이라는 이 말을 들은 빌라도는 관정 밖의 리토스트로토스(박석(인도) : 히브리말로는 가바다)에 재판정을 차리고 예수를 끌고 나온다.(19:13)

개신교의 요한복음에는 ‘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제 육시라'(19:14)고 되어 있다. 반면, 가톨릭성경에는 ‘그 날은 파스카 축제(유월절) 준비일이었고 때는 낮 열두시쯤이었다’고 쓰여 있다. 이에 대하여 유대인들의 시간계산으로 치자면 12시가 맞으나, 요한복음의 시간은 로마시간을 따르는 만큼 오전 6시가 맞다는 의견이 있다. 다른 복음서들의 시간으로는 빌라도가 예수를 넘겨준 시간은 새벽 6시쯤 된다.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말하길, “보라! 너희 왕이로다.”(19:14)
유대인들이 소리를 지르며, “없이 하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다시 말하길, “(그럼)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박으랴?”
대제사장이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라고 대답한다.(19:15)

이에 따라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히게 저희에게 넘겨준다.(19:16)

이것이 본디오 빌라도가 맞이한 그 날 새벽 3시에서 아침 6시까지의 전말이다.

그 후 예수는 총독의 관저로 부터 800미터 정도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골고다 언덕으로 십자가를 끌고 가서 제 삼시(아침 9시)에 십자가에 매달리신다. 제 육시(낮 12시)가 되자 예루살렘 전역이 어둠에 감싸이더니 제 구시(오후 세시)에 운명하신다.

그리고 더 이상 본디오 빌라도에 대한 이야기는 성서에서 찾아볼 수 없다.

결국 그는 예수가 죽은 후 삼년 뒤에 있은 사마리아 지방의 폭동으로 총독직에서 면직되었고, 황제 칼리큘라로 부터 사형집행 통보를 받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빌라도 보고서(원명은「예수의 체포와 심문 및 처형에 관하여 카이사르에게 보낸 빌라도의 보고서」)라는 것이 현재 이스탄불의 성소피아 사원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빌라도 당시의 법정 공문서라고 하는데, 여러가지 정황으로 볼 때, 복음서의 권위를 높히기 위하여 허위로 만들어진 문서라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당시의 정황을 파악하기에 도움이 되며, 복음서를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해 주고 있다. <참고 : 빌라도 보고서 >

This Post Has 2 Comments

  1. 후박나무

    댓글을 달고 싶지만, 제 교양의 한계로….
    음… 여인님의 글은 저에겐 초큼(때론 많이) 어렵네요…ㅎ
    죄송해요 블로그에 찾아와서 이런 댓글이나 남기고…ㅠㅠ

    1. 旅인

      우선 이 긴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게다가 사복음서의 구절들이 혼효하는 관계로 글이 어수선할 것이라는 생각은 진작에 갖고 있었습니다.
      이 글은 빌라도에 대한 변론이고, 변론을 위하여 수사를 하다 만든 글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신약의 사복음서의 각장의 절반도 안되는 분량, 다 해보았자 2페이지 분량 밖에 안되는 이야기이며, 시간 상으로는 3~4시간의 일입니다. 하지만 이 글을 쓰기 위하여 엑셀로 사복음서를 비교 정리했는데, 참으로 흥미롭더군요. 이렇게 시각 차이가 있을까 할 정도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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