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클리셰(cliche)의 공식이 전형적으로 사용된 영화 중 하나가 ’26년’이다. 이 영화의 조판은 전두환이 국가내란죄의 수괴로 1997.04월 사형도 아닌, 무기징역을 확정받았음에도, 동년 12월 특별사면되면서 부터 짜여진 것이다. 즉 평가절하된 불의가 사면받는 그 순간부터 말이다.

그러니까 뒈져야 한다는 당위, 즉 사필귀정은 이 땅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하여 울분하는 한편, 뒈진다는 뻔한 결론을 요구하는 관객을 향해서, 영화는 다시 한번 분통을 격발하기 위하여 진부한 주말연속극의 스토리를 남발한다. 이십육년동안 찾아 헤매던 애인과 대면할 그 절체절명의 순간, 사복새끼가 갑자기 나타나 신호등을 바꿔야 한다고 댕댕거림으로써 뒈지게 할 상황을 개판오분전으로 만든다거나, 마지막 한 발을 날리려는 그 순간, 0.5초도 틀리지 않고 또 사복들이 저격용 고가 사다리 차를 승용차로 들이받는 등 말이다. 그래서 애인과의 키스는 또 다시 유보되는 것이다. 경호실장 짜식이 ‘나한테 명령하지마!”하면서도 전의 마빡에 총알을 쑤셔박지 못하고 오히려 죽는 그 장면에서 1026에서 1212까지의 사악한 망령들이 뛰놀던 시기의 진실에 대하여 증언하지 않고 죽어버린 최규하씨가 언뜻 떠오른 것은 무슨 연유인가? 그것은 1979년에서 부터 지금까지 당연히 청산해야 할, 뻔한 사건의 처리는 물론, 당시의 실체적 진실의 해부조차 못하는 대한민국의 무능이라는 클리셰의 공식이 헛바퀴를 돌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나라가 해결해야 할 당위의 문제를 영화라는 상상 속의 사적 폭력에게 의존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기대하는 대한민국과 현존하는 대한민국 사이의 간극을 현실의 대의로는 도무지 넘을 수 없다는 절망의 은유가 아닐까? 그리고 그 은유를 영화는 아직도 살아있는 권력처럼 싸이드 카를 달고 광화문 사거리를 질주하는 전두환으로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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