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말, 글과 글

언어라는 낱말에서 언(言)과 어(語)의 차이를 나는 알지 못한다. 말(言)과 말(語)이 치달리고 섞여서 서로 가슴에 사무치는 사람들의 소리가 말(言語)이라는 것은 알지만, 말씀 ‘언’과 말씀 ‘어’로 나눌 때, 이 말과 저 말의 차이를 분간할 수 없다.

군대의 계급장을 닮은 이 문양들은 울름(Ulm)문자이다. 텐샨산맥과 카프카즈산맥의 준령을 넘으면 힌두쿠쉬 산맥의 만년설에서 발원하여 파미르 고원을 지나고 카라쿰 사막의 북단을 달려 아랄해에 몸을 푸는 아무 다리아 강이 있다. 문자들은 강의 북쪽 유역을 따라 동물의 골편이나 도기의 파편, 때로는 돌 위에 새겨진 상태로 발견되곤 한다. 유목민과 대상들이 지나는 길목에 있기에 방향이나 이수(里數)를 표시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정작 커다란 돌이나 바위 등에 새겨진 것은 찾아볼 수 없고 대부분 동물의 뼈나 도기, 조약돌 등에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정의 표시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추정한다.

골편들의 조각으로 방사성 탄소연대를 측정해보면, 문자들이 새겨진 때는 AD200년에서 BC1500년까지 소급된다. 이 지역에 쿠샨왕조가 들어설 때까지 이천년 가까이 이 문자가 쓰여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아무 다리아 강 유역은 실크로드의 서역 교차점인 사마르칸트와 가깝다. 사마르칸트에서 서쪽으로 가는 대상들은 강의 중류를 가로질러 바그다드로 갔고 페르시아의 상인들은 강을 건너와 산맥을 넘고 넘어 카슈가르, 돈황을 지나 중국으로 갔다. 대상들이 지나는 길은 늘 군사들이 이동하는 길은 포개지는 법이다. 피가 모래바람에 엉켜붙은 냄새를 풍기며 창과 갑옷이 부딪혀 철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군사들이 동서남북으로 지쳐 지나면, 먼 곳의 민족과 부족들이 밀려왔다. 이곳에 서식하던 종족들은 밀려나거나, 흘러든 다른 종족 틈에서 피를 섞고 간신히 살아남거나 아니면 멸종하고 말았다. 종족이 사라지면 강 유역으로 다른 부족이 깃들었다. 그래서 이곳의 역사란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던 민족에 대한 내력이 아니라, 바람처럼 이 곳을 스쳐지났던 부족과 민족 그리고 사라진 왕국의 기록일 따름이다.

여기는 세상 모든 것이 모이는 곳이긴 하지만, 집결된 물자와 문명이 다시 세상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가는 곳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문자가 이 지역에서만 제한적으로 발견될 뿐 아니라, 이천년동안 프로토 타잎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다른 지역에서 발견되지 않는 것은 글자를 쓰던 종족이 강의 유역에서 뿌리를 내리고 악착같이 살다가 사멸되었다고 설명은 할 수 있다. 반면 이천년동안 문양을 유지한 까닭을 밝혀내기란 어렵다. 이에 대하여 언어학자들은 문자였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문양은 임의적이고 작자의 기분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형이 가능할 뿐 아니라 개인의 창의성 혹은 변덕에 입각하여 변천과 변모를 거듭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언어와 관련된 낱말이나 문자, 문법의 경우는 무늬와 궤를 달리한다.

세종께서 백성들을 어여삐 여긴 탓에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한글을 만드셨지만, 일단 조선백성이 한글을 받아들이면 임금이라도 철자를 함부로 바꿀 수 없다. 바꾼다면 그것은 더 이상 한글이 아니며, 그 사회에서 통용될 수가 없다. 임금마저도 한글의 질서에 복종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꽃’을 ‘달’이라고 바꿔 부르는 소소한 변경도 연쇄반응을 일으켜 언어시스템 전체를 붕괴시킨다. 자기의 위치를 잃어버린 ‘달’은 대신할 이름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개’가 되든지 해야 한다. 그러면 ‘개’는 ‘발’이 되던지 ‘똥’이 되든지 해야 한다. 이러한 연쇄반응 속에서 언어 시스템 전체가 흔들리고 바벨 상태로 접어들게 된다.

이러한 언어의 구조 탓에 한번 받아들여진 낱말이나 문자는 바꿀 수 없다. 배(과일), 배(복부), 배(선박) 처럼 다른 의미를 지녔음에도 구분이 쉬운 다른 낱말로 바꾸지 못하고 같은 소리가 나는 다른 단어 위에 난잡하게 얹어 쓸 수 밖에 없는 것은 과일이던, 복부이던, 선박이던 사회가 배를 배라고 받아들였던 탓이다. 누군가 먹는 ‘배’를 사과와 비슷한 ‘사배’라고 바꿀지라도, 그 사회가 배를 사배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탓에 결국 의사소통이 안되어 ‘배’로 되돌아올 수 밖에 없다.

사회와 언어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언어와 관련된 음운, 낱말, 문자 등 어떠한 변화에 대해서도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길항한다. 언어라는 율법을 범할 경우 다른사람들과 말을 나눌 수 없을 뿐 아니라 사고 또한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없다. 이런 탓에 사람들은 언어와 관련된 약속과 질서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심층 의식에 깔린 변화에 대한 강한 저항과 억지력이야말로 울름문자의 문양이 이천년 가까이 유지된 이유이자, 문양이 아닌 문자로 이해할 수 밖에 없는 단서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특이한 점은 고대문자들이 다수의 문자가 기록된 문서 형태로 출토되는 반면, 이 문자는 한 글자, 간헐적으로 두 글자 정도 새겨진 상태로 발견된다. 이 점이 의사소통이나 기록을 위한 수단인 문자로 인식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탓에 지역의 학자들조차 관심을 갖지 않았다. 출토된 지역 또한 실크로드에 위치하여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이나 대상들이 숫자를 셈하거나 이정을 표시하는 수단 정도로 이해하고 그냥 방치했고 이들 문자는 점차 사라졌던 것이다.

갑골문이 발굴되고 한참이 지난 1960년대에 들어서야 동물의 골편에 새겨진 이 문양들을 보고 혹시 제의나 주문 혹은 점사를 위한 문자의 한 형태일지도 모른다고 지역의 학계에서 수집을 시작했고, 년대측정에 들어갔다. 하지만 발견된 숫자가 너무 적고 발굴되어도, 한 두 글자 즉 한 두 음절에 불과한 관계 상, 언어를 전달하기 위한 문자라고 단정짓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이 지역의 학자인 이슬롬 무하메도프(Ислам Атаевич мухаммедов : 1906~1983)는 1970년대말부터 산재된 문양들을 모으고 문양을 체계적으로 분류하였다. 430여개의 문양들의 모양을 분석한 후, 이들은 모두 27개의 문양으로 수렴한다고 보고한다. 산재된 문양들이 가진 질서나 규칙들을 볼 때, 단순한 문양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으며 문자가 맞는 것 같다고 한다. 소리나 의미를 모르지만, 문자들이 세개의 음소 혹은 의미로 나뉘어져 있다고 했다.

하지만 무하메도프의 노고는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울름문자의 운명처럼 잊혀지고 만다.

1960년대 이후 소련은 아무 다리아 강과 북쪽의 시르 다리아 강 사이의 삼각지 유역에 면화생산을 늘리고 밀 생산의 증강을 위하여 대규모 관개를 시작한다. 건조한 스텝지역으로 강물이 흘러들면서 하류로 내려갈수록 강은 바닥을 드러냈고, 아랄해로 유입되기 전에 허연 소금을 남기고 강은 말라버렸다. 관개를 시작한 지 40년이 지나고 21세기로 접어들자 세계 4번째의 내륙호인 아랄해의 수량은 예전의 10%로 줄었고, 마른호수는 사막이 됐다. 호수 바닥에 말라붙은 염분은 바람에 날려 300km 반경의 인근 지역 위로 소금비가 내리곤 했다.

이와 같은 환경문제와 더불어 1990년대초 러시아에서 독립한 인근 국가들에서 이슬람 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아무 다리아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구스(힌두쿠쉬) 온 땅을 적시는 고대의 기혼(Gihon) 강으로 추정된다는 19세기 아랍학자들의 주장을 떠올리는 한편, 이 지역의 선주 문명의 흔적이라며 무하메도프 문자에 다시 주목한다.

타쉬켄트 대학의 교수 알렉산드르 칸(Александр Васильевич Кан : 1957~)은 이 문자를 울름문자라고 부르며, 인류의 원시모어인 바벨문자일 수도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친다.

그는 소리도 재현해낼 수 있을 것 같다며, 사람의 가장 원초적인 소리에서 각 음소를 뽑아내 조합을 하면 될 것이라고 하며, 명백히 표음문자의 원칙을 따를 것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그는 가설과 가설을 엮어 진짜를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학자로서 학술적인 가치가 있는 논문을 만들 자질은 부족할 지 몰라도, 우리의 황우석 교수처럼 사회가 바라는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작가적인 자질은 풍부했다.

문자는 극동에서 보여주는 예와 같이 ‘한자’와 같은 [표의문자]에서 ‘여서(女書)문자’나 우리나라에서 한문을 소리나는 대로 읽어 ‘이(伊), 가(可), 은 는(隱)’ 등 토씨를 다는 ‘순독구결(順讀口訣)’과 같은 [표어문자]로 진화하고 다시 일본의 가나와 같은 [음절문자]로 진화한다. 시간적으로는 일본의 가나에 비하여 월등히 앞서지만, 소리의 단위가 자음과 모음의 음소단위로 내려가기 때문에 더 진화했다고 볼 수 있는 [음소문자]는 셈어계의 조어인 원 시나이문자(proto-sinaitic script : BC18세기)에서 시작하여 우가리트문자, 원시가나안문자, 페니키아문자를 거쳐 아람문자, 히브리문자, 아랍문자로 발전한다. 이들은 모두는 [아브자드(abjad)], 즉 음소에 모음이 없는 자음문자이다. 그리스에서는 자음문자인 페니키아 문자를 도입하여 모음을 삽입함으로써 자음과 모음이 구비된 음소문자, [알파벳(alphabet)]을 만든다. 이외에도 인도, 티벳, 타이, 에디오피아 등에서 쓰는 자음에 딸림모음이 붙어있어서 음절문자의 속성을 가지면서 다른 모음을 덧붙일수 있는 음소문자의 속성을 함께 갖는 [아부기다(Abugida)]가 있다. 이러한 문자는 한글처럼 자음과 모음 둘 이상 모여야 하나의 음절을 만들며, 초 중 종성 등 조음위치가 있는 [자질문자]까지 진화되어 왔다.

알렉산드르 칸은 이러한 문자의 진화와 계통과는 별개로 울름문자는 음소문자로 세계 유일의 모음문자로 추정된다고 한다. 칸은 모음 만으로 내는 소리는 울음과 같을 것이라며 잠정적으로 무하메도프 문자라고 불리던 것을 아예 울름(Ulm)문자라고 이름 짓는다.

우리의 울음과 비슷한 울름이라고 한 것은 칸이 고려인의 3세인 탓이다. 그는 진주 강씨라고 한다.

울음에서 인류의 모어인 바벨어가 생성되었을 것으로 보고, 고대에 기혼강이었던 아무 다리아 강변에 살았던 선주민들이 글자로 고대의 흔적을 남겼다고 한다.

통시적인 입장에서 보면, 언어가 변화에 보수적인 특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시간은 음운의 변화를 초래하고, 글자에 변형을 가져옴은 물론, 의미에 굴절이 가게 한다. 이런 점에서 물경 1700년 이상 자형의 변화가 없이 프로토 타잎을 유지한다는 것에는 문자를 넘어선 다른 요인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점에서 이 지역에 있었던 비의종교의 신명문자(神名文字)가 아닐까 한다. 신은 유일하며 영원해야 하므로 그의 이름 또한 영원하며 변화될 수가 없다는 준엄한 믿음에 기인한 것이 아닌지…

유태교의 신비주의자들인 카발리스트들은 통칭 여호와라고 부르는 신명문자, 테트라그라마톤(YHWH = יהוה)으로 쉠 하메보라쉬(Shem ha-Mephorash = שם המפורש) 즉 신의 상세한 이름 72가지를 조합해 낸다. 각각의 신의 이름은 고유하고 독특한 에너지 파장으로 치유의 영능을 발휘할 뿐 아니라, 사악한 것을 물리치고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믿는다.

이천년 전 아무 다리아 강변에 살던 무당들도 자신들의 신명문자로 27개의 신의 상세한 이름을 기억하고 조심스럽게 신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를 드리기 위하여 글자를 만들어내고, 뼈나 돌맹이에 새겨 품에 품고 병과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후한의 허신이 쓴 설문해자에는 “단순하게 말하는 것을 ‘言’이라 하고, 논란하는 것을 ‘語’이라고 한다”고 말과 말을 풀이한다. 설문해자주를 쓴 청나라 때 단옥재는 허신의 설에 덧붙여 “단서를 내놓는 것을 일러 ‘言’이라 하고, 답하고 논란하는 것을 일러 ‘語’라고 한다”고 했고 ‘言’은 자기의 일을 말하는 것이고, 남을 위해 말하는 것을 ‘語’라 한다.’는 다른 출전을 거론한다.

言의 갑골문 등 고문를 보면 䇂+口의 모양을 취하고 있다. 어느 싸구려 자전에는 䇂이 심장의 모습이라며 言은 마음을 입으로 내는 것이라고 멋대로 풀이한다. 하지만 고문 건(䇂)은 허물이다. 높은 곳(|)에 홀로 서(立)있는 모습이다. 타인에 대한 죄가 아니라 자신에 머무는 잘못, 허물이다. 허물이 있을 경우 외롭고 수치스러우며 서럽다. 허물이 입 위에서 입을 짖누른다. 그래서 입은 아아하며 소리를 낸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서 나는 言과 語의 차이는 의사소통의 心 → 言 → 語 → 悟 → 心 으로 이해하고 싶다. 마음(心)이 울면(言), 말(語)이 되는데, 그를 알아 들으면(悟), 마음(心)이 울린다.

전체적으로 종합하면,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言, 머리에서 나오는 것은 語로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울음 言, 말씀 語라고 풀고 싶다.

문자란 글(文)과 글(字)이 얽혀 단어가 되고 타인에게 의미가 되어 다가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글과 글이 비벼져야 낱말이 되고 문장이 된다. 글이 홀로 서 있을 때, 그것은 울음일 뿐, 말이 되지 못한다.

울음의 기록인 울름문자는 말이 되지 못한 울음인 탓에 문자가 될 수 없고 문(文)이거나 자(字)일 뿐이다. 그래서 Ulm문 혹은 Ulm자로 불러야 마땅하다.

아무 다리아 강 가에서 살았던 고대의 사람들이 바람결에 흐르는 소리를 잡아 문자 속에 의미를 정박시키고 먼 곳과 뒷 날에 올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고, 울음을 가둬 둔 연고를 나는 알 수 없다. 그들이 울음으로 부르던 신이 어떤 신이었는지 또한 나는 알 수가 없다.

알기 위해서는 다만 그 울음이나 신의 이름을 다시 살려내야만 할 일이다.

This Post Has 22 Comments

  1. blueprint

    마음이 울면, 말이 되는데, 그를 알아 들으면, 마음이 울린다.
    너무나 마음이 울리는 해석을 해 주셨어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여인님~
    실비아 플라스가 남긴말, ‘Let me live, love and say it well in good sentences’ 로 제가 새해 다짐을 하였는데…
    살면서 사랑하고 좋은 말 (혹은 좋은 글) 로 가득할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여인님의 말과 말, 글과 글 포스팅을 읽으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네요.

    1. 旅인

      딴 짓거리나 하면서 보내다보니 님의 댓글을 늦게 보았습니다.
      여긴 날씨가 추워 꼼짝도 하기 싫은데, 그곳은 좀 나은지 모르겠습니다. 새해가 여름과 함께 시작하는 것보다 추위와 함께 오는 것이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추위가 풀리기 전에 한해를 준비하고 날이 풀리면서 일을 하는 순환의 계절 속에서 조용히 칩거하여 생각하는 날들로 부터 한 해를 풀어간다는 것이 옳겠지요.

      춥지만 한 해의 맑은 기운을 받으시고 건강하고 행복한 새해를 열어가시기 바랍니다.

  2. frenger.me

    울름문자, 처음들어보는데 신기하네요.
    저도 실크로드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언젠가는 꼭 가보려고 하는데..
    이런 문화적인 내용도 공부해서 가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의 괘랑 비슷한 모양이라는 생각도 들구요.

    1. 旅인

      사실은 제가 만든 인공문자입니다.^^ 죄송합니다.

      물론 괘를 연구하기 위하여 만든 것입니다.

      전에 어디에선가 이 아무 다리아 강 유역에 아리랑족이 살고 북쪽의 시리 다리아 강 유역에 쓰리랑족이 살았다며 우리의 선조들이 바이칼 호에서 남쪽으로 이주한 것이 아니라 여기의 아리랑 족이 아무르강(흑룡강)으로 옮겨 와서 아무다리아(다리아는 바다와 강의 뜻)의 이름을 따서 아무르라고 이름붙인 후 살았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3. 쏘울

    여전히 글쓰기를 하고 계시는군요.
    거의 백만년(?)만에 찾아왔습니다.

    제 블로그는 몇년째 개점휴업이라….잠시 둘러보다가 생각이나서 와봤습니다.
    잘 지내시지요?

    아마도 기억 못하실지도 ^_^

    1. 旅인

      안녕하십니까? 오랫만입니다. 요즘도 중국에 머물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요즘은 개점휴업 상태입니다. 슬슬 포스트도 올리고 해야할텐데 이웃분들도 다 떠나시고 해서 외로운 느낌만 듭니다.

      사업은 잘되시지요?

  4. 쏘울

    또 한주를 시작하는 월요일이네요.
    건강한 새봄을 맞이하셔야죠?

    요즘은 일때문에 한국에 들어와 있는데, 언제든 다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일이 주는 스트레스탓인지 블로그 포스팅의 열정(?)도 심드렁하고, 종종 컴으로 영화를 보거나 평생의 취미인 클래식 음악을 모으고 듣는 일에만 열중하면서…
    먹고사는 일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_^

    1. 旅인

      요즘도 심천에 계신가요?
      먹고 사는 일이야말로 인생의 큰 공사임을 요즘에야 뼈저리게 느끼고 있습니다. 게다가 클래식음악도 들으시고 하시니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저는 클래식 모으고 하는 일을 진즉에 포기했습니다. 그냥 93.1MHz나 듣고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국악방송에서 나오는 국악을 기분좋게 듣고 있습니다. 현이 긁히는 소리, 거칠면서도 섬세한 소리, 흥겹다는 점 등 모두 자연스러워 클래식이 지닌 정제된 맛이 없다는 점이 좋습니다.
      지난 주에 안테나를 바꾸고 나니 한결 듣기가 좋아진 것 같기도 합니다.
      올해도 사업에 큰 성취가 있으시길 빕니다.

  5. 쏘울

    네, 제 본적지(?)는 여전히 심천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클래식이 80% 나머지는 Newage, 7080가요, 국악 그리고 중국 전통음악(중국측에서 보자면 국악쯤 되는) 등을 듣는데, 점차 저도 국악이나 중국 전통 현악기와 타악기 연주곡들이 감칠맛나게 들리기 시작합니다.
    늘 들고다니는 iPod에는 중국전통 음악류가 꽤 들어 있습니다.

    음악이란게 듣다 보면 귀가 점차 까다로와(?)지기에 요즘엔 APE, FLAC, WAV 등의 무손실 음원으로 듣는데, MP3의 음질과 비교했을때 확연한 차이가 느껴져서 그동안 가지고 있던 MP3는 모두 버렸습니다.
    다행이도 iPhone나 iPod용 앱중에 무손실 음원을 지원하는 플레이어가 있어서 즐거움이 큽니다.

    어제는 과거에 한직장에서 같이 일했던 오래전 동료가 또 다른 당시의 후배 동료 부고를 알려줘서 같이 문상을 다녀왔는데, 조그마한 회사의 오너였던 그가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가 갑자기 뇌출혈이 발생하여 유명을 달리했더군요.
    건강했던 사람이 몇시간만에 유명을 달리하다니, 사람 산다는 것이 무얼까 싶더군요.

    같이 갔던 친구랑 밖에 나와서 술을 마시다가 문득 좋은 비즈니스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관련 도메인을 하나 새로만들고, 우선 준비가 되기 전까지 개인블로그의 도메인으로 사용하려고 연결작업을 해놨는데 아직 연결이 안되네요.
    하루 이틀 지나면 제 블로그로 넘어가질 듯합니다. http://graynote.net

    1. 旅인

      얼마전에 저도 PC-Fi를 접하고 DAC 등을 한번 검토해 보았는데, FLAC 등 CD에 비하여 음질이 월등한 소스를 접할 수 있는 것을 알았는데, 문제는 제대로 된 DAC가 거의 백만원대의 고가에 가깝고, CD 이상의 음원에 접근하기도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PC-Fi대신 i-Fi를 구축했습니다. 즉 CD를 ALAC이라는 무손실CD음원으로 맥(PC)에 저장하고 아이튠스를 가동하여 이 음원을 에어포트 익스프레스로 무선송출하여 스피커를 울리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즉 음원(맥/PC) – 아이튠스 – <무선> – 에어포트 익스프레스 – 앰프 – 스피커 식으로 울리는 것입니다. 이 경우 서재에서 아이튠스를 켜서 구동시키고 침실에 앰프와 스피커만 있다면 침대에서 음악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CD급 이상의 음원은 수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참고 : http://y2kelvin.blog.me/50102304447 , http://y2kelvin.blog.me/50102321896

  6. 쏘울

    i-Fi 방법은 공간적인 제약없이 리모트 컨트롤이 되는 구조여서 편안한 감상환경을 제공하겠군요.
    다만 무선을 거치는 구조라서 손실이 크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만, 청음을 못해봐서 어떨지는 모르겠네요 ㅎ

    제가 잘 가는 사이트에 특이한 구성의 약간은 탐나는 DAC를 개발하는 분이 있는데, 가격은 타 제품에 비해 월등히 비쌉니다만, 늘 관심두고 있습니다.

    http://goo.gl/fUTX5 이곳에 개발자의 후기 글이 있고, http://www.bannaudio.com 이곳이 그 업체인데 사이트엔 아직 공식적으로 올라와 있지는 않았는데, 일차 제품을 지인들에게 공급한것이 보입니다.

    1. 旅인

      읽어보아도 기술적인 면에 부딪히면 이해력의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에어포트의 경우 제가 경험한 바를 말씀드리면,

      1. 말씀하신 것처럼 무선의 데이타 전송력의 문제인지 CD 음질수준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PC-FI가 목적하는 CD음질 이상의 High-Fidelity 구현은 안되며, 단지 유선이라는 제약을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의 잇점 외에는 없습니다.
      2. 에어포트는 아이튠즈 외의 다른 음악재생 Tool을 쓸 수 없다는 제약이 있습니다.
      3. 소리의 경향은 고음이 지나치게 강조되어 CDP에 비하여 쏜다는 느낌입니다. 따라서 중고음이 강조되어 화사하다기 보다 피로한 편입니다.
      4. 네트워크의 용량 등의 문제인지 간헐적(1회/10분 정도)으로 소리가 끊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최근에 무선공유기를 갈았는데, 내부 address등이 바뀌어 아직 개통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CDP를 돌리고 있습니다.

      제가 시도해본 이유는 가격도 싸고 한번 테스트해 볼 수 있겠다는 것과 무선공유기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등으로 사서 시도해 본 것입니다.

      하지만 PC나 CD내에서 발생하는 아날로그적 소음이 케이블을 통하여 앰프에 유입되는 것을 무선이라는 공간으로 필터링한다는 발상은 획기적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7. 쏘울

    혹, 무손실 음원 파일(클래식, 뉴에이지..기타) 필요하시면 제 블로그 게스트북에 비밀댓글로 멜주소 남겨주세요.
    약 3테라 정도 있습니다.

  8. 쏘울

    지난 밤에 메일 드렸는데 보셨는지요?

  9. ree얼리티

    서로 가슴에 사무치는 소리가 말이 되는 울름문자…
    마음이란 단어가, 이해란 단어가, 함께한다는 단어가, 왜 그렇게 마음에 와 닿았었는지
    근원은 모르면서도 좋았습니다.

    어려운 글이지만 읽으면서 알기 위해서는 살려내야만 할 일이라고 하신 의미를
    많이 생각하고 갑니다.

    1. 旅인

      저는 문자와 기록매체, 소리 등에 왠지 모르게 매료되는 것 같습니다. 여행 중에 전혀 읽지도 못하는 책을 사기도 하고 그럽니다.

      이렇게 써놓으니 꽤나 신기한 문자같지요?

  10. ree얼리티

    보여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려고 하니까 보이는 것처럼
    남아있는 것들과 스쳐지난 가는 것들에 마음이 가시는 것은
    ‘어떤 사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쓰신 글들을 읽으면서 저에게 ‘소중한 자극’이 됨은 우연은 아닐거예요.
    저뿐만 아니라 거쳐가는 분들마다 마음 담은 흔적을 느끼면서
    이렇게 동참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고맙습니다.^^
    문자를 만드는 일 – 생명을 부여하는 일처럼 사람들의 마음에 남을 것 같네요.~~

    1. 旅인

      리얼리티님께 자극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 소통이겠지요. 저 또한 감동을 받고 그럽니다.
      문자를 만드는 일은 유희지만, 사실은 주역을 공부하는 것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2. 리얼리티

      높은 곳에 홀로 서 있는 모습은
      타인에 대한 죄가 아니라 자신에 머무는 잘못, 허물이다.
      허물이 있을 경우 외롭고 수치스러우며 서럽다.
      그래서 입은 아아하며 소리를 낸다.

      울움은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라는 이 글이 다시
      생각나서 다시 읽고 마음에 담아 갑니다.
      그러면서 마음으로만 우는 저의 글자가
      말이 되고 깨달음이 될 수 있도록 의미가 되어주는
      이 공간에 “고맙습니다”라고 쓰면서 교황님을 생각
      합니다. 높아서 외로운 그래서 더 고귀하신 분을…

    3. 旅인

      참으로 말이란 것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말이 바로 인간인 탓이겠지요?

      교황이나 달라이 라마나 위대한 스승님들이 많은 것은 좋습니다. 교황님은 스스로를 내려놓아서 외로움이 덜 할 것만 같았습니다.

  11. 리얼리티

    마지막 날 교황님의 명동성당 미사 중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 뒷모습은
    앞모습이 영광이라면 뒷모습은 누구인지 알 수도 없는 고단함이 짙게 묻어나는 모습이었어요.
    머리에 쓰신 모자가 없었다면 알아볼 수 없는 작게만 느껴지는 뒷모습에
    사람이 얼마나 보여지는 것에 연연해 하며 사나 다시금 느껴지는 순간이었어요.
    사람에게 뒷모습은 본 모습이며 진정한 휴식을 할 수 있는 자기 표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헤여져 돌아갈 때 먼저가는 이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잊지 않겠다는 다짐일거예요.
    아무것도 표시되어있지 않은 뒷모습에서 그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이 그리움아닐까요.

    1. 旅인

      얼굴도 옆 얼굴, 뒷 모습에서 한 인간의 진솔한 면을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일 것 같습니다. 측면으로 눈이 난 동물과는 달리 바라볼 수 없는 측면과 무방비할 수 밖에 없는 등 때문에 사람들이 사회를 이루면서도, 사회에 진실을 반영할 수 밖에 없다는 아이러니가 있네요.
      상대의 뒷모습을 본다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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