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구스타프 도레 作 천국편, 제3곡, 단테와 베아트리체, 피카르다 도나티, 콘스탄차

나에게 천국이란 그런 곳이다. 빈곤한 나의 상상력은 결코 화엄적이거나 선다씽적일 수 없고, 오히려 알레프적인 지옥에 가까울 뿐이다. 천국을 상상 만해도 나는 늘 지옥을 맞이한다.

어머니 : 너 교회 가지 않으면 죽어서 천국 못간다
나 : 천국 가 봤자 기독교인들 뿐인데, 거길 가느니 차라리 지옥엘 가겠습니다.

천국의 끝나지 않는 열락(엑스타시), 천국을 배회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결정체처럼 맺혀있는 영원한 미소, 시기나 질투 그리고 탐욕이 없을 뿐 아니라 가슴에는 타인에 대한 이타심으로 가득차 있지만, 온정을 베풀 불쌍하거나 비참한 사람들이 하나도 없다는 가혹한 모순, 배도 고프지 않아서 먹고 싶은 음식도 없을 뿐 아니라, 애닲아하거나 그리워할 사람도 없으며, 끝나지 않는 性적 황홀에 빠져 있어서 누구를 사랑할 염두가 도무지 나지 않는 상황의 지속.

너무 행복해서 아무 재미도 없고, 아무런 변화도, 고통도, 슬픔도 없는 가혹한 조건이 영원히 계속된다는 공상에 접어들게 되면, 지복이란… 바로 무간지옥이라는 느낌이, 내 가슴을 저며들고 너무 쓰라려서 더 이상 천국에 대한 생각을 거부하게 만들고 만다.

천국을 희망하는 그 종교적이고도 음란한 상상력으로 부터 엘레아 학파의 불생(不生)·불멸(不滅)하고 유일(唯一 : 시간과 공간 속에 꽉차 있어서 타자가 들어설 수 없기 때문에 유일)하며 무형(無形 : 안과 밖이 없고 부동하기 때문에 형체가 없음)한 존재자(存在者 : 이 존재자는 오직 하나이기 때문에 너와 나가 없음)를 떠올리게 된다.

천국이란 이러한 기괴한 존재자에로의 복귀를 의미하며, 존재자의 속에는 바람 한 점 불지 않을 뿐 아니라, 나와 너는 사라지고, 나는 단일하고 유일한 존재에 포섭된다. 내가 없으면서도 나인 이 세계는 토끼가 영원히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하는 제논적 파라독스로 점철되어 있다. 아니 그 보다는 지금은 시간의 비가역성에 따라 어제가 되어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지금으로 멈춰 서있고 여기는 저기와의 위상적 차별이 없다. 즉 이 존재자는 거대하고 영원히 죽어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천국의 장엄함과 침묵과 부동 앞에서 차라리 어둡고 음란한 지옥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는 유혹을 나는 어쩌지 못한다.

주) 신곡을 읽으면 연옥에 대한 표현은 구체적이지만, 천국에 다다르면 단테의 상상력은 거의 한계에 다다른다. 그 상상력의 한계를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통해서 해소하려고 한다는 것을 간신히 알 수 있다. 구스타프 도레의 그림을 보면 나는 천국과 연옥의 차이를 거의 구분할 수 없다. 저 위의 그림에서 천국에 다다른 사람들의 얼굴에서 기쁨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 그것이 바로 천국의 실상인지도 모른다.

This Post Has 4 Comments

  1. 마가진

    ㅋㅋ 예전에 교회나오라고 자꾸 권하는 사람에게 처음엔 좋은 말로 사양하다 계속되는 전도에 결국 마지막에 제가 써먹는 방법입니다. ^^;

    “하나님을 믿어야 구원받고 천국간다고? 그럼 천국엔 모두 너같은 사람뿐이겠네? 아우.. 별로 가고 싶지 않은데..” ^^;
    (물론 기독교인 분들껜 실례가 되는 말이겠지만.. 오죽했으면… ^^;;)

    그리고 과연 저역시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너가 말하는 천국에서 모두가 만족하리라고 생각하느냐…?”

    ** 새 포스팅이 오르지 않아 궁금했는데 새로운 곳에서 여인님의 글을 다시 만날 수 있어 무척 반갑습니다. ^^

    1. 旅인

      도메인명은 같습니다. 아마 마가진님에게는 yeeryu.tistory.com으로 등록이 되어 있는 모양이네요.
      기독교의 천국이라는 개념은 고대 유태인의 관념에는 없었습니다. 유대 전통에 의하면 죽은 사람들이 저승(She’ol)의 구덩이에서 잠을 잔다는 관념이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욥기(14:10~13)에 보면 “그렇지만 인간은 죽어서 힘없이 눕숩니다. 사람이 숨을 거두면 그가 어디 있습니까? 바다에서 물이 빠져나가고 강이 말라 메마르듯 사람도 누우면 일어서지 못하고 하늘이 다할 때까지 일어나지도, 잠에서 깨어나지도 못합니다. 아, 당신께서 저를 저승에다 감추시고 당신의 진노가 그칠 때까지 숨겨 두신다면! 저를 위한 때를 정하시어 저를 다시 기억해 주신다면”이라고 자신에게 닥쳐온 고통과 환란에서 죽음이라는 잠으로 감춰달라는 요청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리안족의 종교인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페르시아에 의해 바빌론의 노예상태에서 풀려나면서 조로아스터의 내세관과 사탄의 개념을 받아들이게 되어 천국과 지옥의 개념이 생깁니다.

  2. frenger.me

    그러고보니, 천국에서는 아무런 재미도 없겠군요.
    단 음식도 계속 먹으면 단맛이 느껴지지 않을진데, 하물며..

    천국에서는 행복한 상태가 이어진다고 하면
    나중에는 본인이 행복한 줄 몰라서 되려 불행을 바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간이 지나면 창살없는 감옥이 되어버리는 게 아닐까 모르겠네요. ㅠ_ㅜ

    1. 旅인

      그 감옥이 영원하다면 하는 질문에 이르면 더욱 답답해질수도 있겠지요? 만약 영생을 얻는다면 또 어떨까요? 그것은 복이 될수도 있겠지만 엄청난 저주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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