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가지 이야기들

1. 左慈

삼국지를 읽다보면 좌자라는 인물이 나온다. 조조의 동향인인데 도사다. 아미산에서 둔갑천서를 얻었다고 하는데, 우길이나 장도릉 등의 도사보다 내공수준이 더 높은 것처럼 보인다. 좌자라는 이름은 왼쪽이 사랑스럽다, 혹은 키운다 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오른쪽이 부실하다는 뜻처럼 보인다. 그런데 내가 그렇다. 나도 왼쪽이 성하고 오른쪽이 부실하다. 손과 다리가 그러더니 코구멍도 오른쪽이 자주 막히고 눈도 오른쪽이 안좋더니 잇빨도 오른쪽부터 무너지고 이제는 오른쪽 귀가 왼쪽보다 수신감도가 떨어진다.

2. BOSE 101 MM 스피커

국내의 ‘오디오계의 거물’ 1황준이라는 설계사인데, 이 사람이 취미삼아 만든 손바닥보다 조금 더 큰 스피커의 중고가 백만원을 넘게 거래되고 있으며, 시중에 매물을 찾아보기가 어렵고 나오기만 하면 소리소문없이 거래가 되고 사라진다. 이 이 스피커가 현재 중고로 150만원대에 거래되고 있는 ‘로저스 3/5’ 보다 더 좋을 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런데 이 Bose 101mm은 공연장이나 야외에 쓰이는 PA 스피커이다. 그래서 비를 맞기도 하고 햇빛과 먼지 속에서 몇년을 보내기도 한다. 그래서 플라스틱으로 만든 통에 4.5인치 짜리 풀레인지 유닛이 딸랑 하나 들어있다. 먼지로 얼룩진 이 놈은 중고가로 10~15만원이면 산다.

Bose 101 music monitor

이 놈을 사고 며칠을 들어본 결과, 그 거물이 한 말이 헛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스피커는 상식의 한계를 넘어 정말로 말도 안되는 소리를 내준다.

장점 : 첫째, 4.5인치의 유닛으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풍부한 저음을 낸다. 둘째, 최고의 소리라기 보다 듣기에 몹시 편안하고 명료한 소리를 낸다. 셋째, 하나의 유닛으로도 2웨이, 3웨이 스피커 이상의 해상력을 가지고 있다. 넷째, 작아서 큰 스피커처럼 놔둘 자리의 걱정을 안해도 된다. 다섯째, 비싼 스피커들처럼 부서질까 어디가 잘못될까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 여섯째, 풍찬노숙을 하는 운명인 만큼 몹시 튼튼하다. 집어던져도 까딱없다.

단점 : 첫째, 싸구려틱하고 볼품이 없다. 아무리해도 각이 살지 않는다. 둘째, 페어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서 좌우대칭이 아니다. 셋째 8오옴이 아닌 4오옴이라서 보통 8오옴 앰프에 무리가 갈 수 있다.

하지만 스피커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강력추천이다. 어떤 사람은 로하스(로저스, 하베스, 스펜더)처럼 비싼 스피커가 물려 있는 좋은 앰프에 이 싸구려를 물린다면 오히려 더 좋은 소리를 낼지도 모른다고 한다.

3. 레트로 취향

요즘 레트로 취향인지, 얼마전에는 만년필도 아닌 펜에 빠져 펜촉을 산다, 펜대를 산다 하더니, 이제는 진공관 앰프에 빠졌다.

여태까지는 국악이란 서구의 클래식보다 재미없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트랜지스터 앰프는 가야금이나 거문고의 줄과 통의 울림을 잡아내질 못했다. 하지만 이놈의 진공관 앰프는 그 울림을 잡아낸다. 그래서 국악방송을 틀어 국악을 한두시간 씩 듣기도 한다. 둥기둥기 가야금 소리가 가슴에서 울린다.

한자로 음(音)은 소리이고 향(響)은 울림이다. 소리는 오선지에 그려낼 수 있지만, 울림은 오선지로 불감당이다. 트랜지스터(혹은 디지털)는 소리에 충실하지만, 진공관(혹은 아날로그)은 울림이 좋다. 나는 울림에 미친다.

4. 불통하는 프로젝트

작년 10월에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후, 바쁘기도 했지만 엄청난 스트레스를 겪었다. 어찌하다보니 프로젝트 수뇌부의 회의에 멤버가 되어 매일 참석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프로젝트 경험이 일천한 탓에 이해하지 못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리고 이야기도 듣고 나면 곧바로 까먹곤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었고 나는 숙제를 까먹고 다음날 아침 빈가방으로 등교하는 아이처럼 불안했다.

평범한 인간의 상식이 범접할 수 없는 이 난해한 프로젝트에 대하여 나는 초조했고 절망했다.

최근에야 이 프로젝트를 지배하는 한 인간의 언어가 지닌 불통의 구조를 알게 되었다.

지난 주 프로젝트 리더로 부터 한통의 메시지를 받았다. 그 메시지는 몹시 단순한 것이었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몇사람인가와 메시지를 돌려보고 숙의에 숙의를 거친 끝에 리더가 보낸 메시지의 의미를 간신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인간이 지닌 언어란 상호존중과 소통과 대화, 서로 간의 이해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고집과 짜증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래서 말이 아닌 벽으로 존재했다는 것을 간신히 알았다.

“그러니까 #4dn&…*ㅇ%에서 ^7ufr@%에 대해서 (6&)말하지..않았습니까? 제 말씀은… 치이이익… 이해^ 하시죠?”

“뭐라고요?”

This Post Has 12 Comments

  1. 마가진

    저도 요즘 건강에 관련된 기사들이 나오면 이상하게 관심이 부쩍 갑니다.
    정말 나이가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ㅡㅜ;

    스피커, 펜촉, 진공관앰프, 울림… 여인님의 삶은 더욱 멋있어 지고 있는 듯 합니다.

    이해안되는 언어들엔 미리미리 고개돌려버리는 저는 이제 불통을 즐기고 있는 듯 합니다. ^^;;

    1. 旅인

      다른 분들껜 건강은 잘 챙기시라면서도 본인의 게으름 때문에 건강을 늘 망치고 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잇빨도 한번만 더 신경써서 닦고 평소 운동을 못해도 될 수 있으면 걷고 하면 좀더 나을 텐데 그러질 못합니다.

      저는 레트로의 열풍의 변두리에서 조용히 레트로입니다. 이런 복고적인 것들은 오래된 것, 묵은 것이기 때문에 편안한가 봅니다.

      저도 힘만 있으면 고개를 돌려버릴텐데, 저 보다 높으니…TT

  2. 후박나무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회의…. 정말 힘들 것 같아요…ㅠ
    그래도 넘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힘내세욧. 홧팅!!

    1. 旅인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앞 날이 위태롭습니다.

  3. IamHoya

    저는 스피커에 관심이 많아서 꽤 자주 바꾸는 편인데.. 요즘들어 좀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서 요즘은 많이 자제하고 있습니다..;;

    불통하는 프로젝트.. 왠지 이해가 가는군요.. 제일 답답할 때가 상대방은 열라 진지하게 열심히 설명하는데.. 무슨 말이지 이해가 안갈때더군요.. 제 이해력이 부족한건지.. 상대방이 횡설수설하고 있는건지.. 머리가 멜롱이 되는..;;

    1. 旅인

      스피커의 소리라는 것이 참으로 어렵더군요. KLH 32의 소리가 제 귀에 몹시 좋아서 사놓고 듣다가 황준이라는 사람의 Bose 101에 대한 극찬 때문에 사다가 처음 들으니 좋은 것을 모르겠던데… 한 서너시간 듣고 다시 KLH32를 들으니 Bose 101의 소리가 참 좋다는 것을 알겠더군요.

      정말 커뮤니케이션이란 힘듭니다.

  4. 흰돌고래

    오어, 저는 반대로 왼쪽이 그래요. 콧구멍은 항상 왼쪽이 막히고, 시력도 왼쪽이 나쁘고요. 아 그런 생각 안해봤는데…

    울림.. ^^

    옴마야.. 소통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글이에요.ㅜㅜ

    1. 旅인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아서 일 것입니다. 저는 양쪽 간에 발란스 차이가 상당할 뿐 아니라, 병원 신세도 지고 하는 통에 늘 느끼고 있었습니다.

      사실 소통은 호야님의 글에 써놓은 이 댓글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통이란 크고 굵직한 것에서 합의나 동의를 이루어 놓고 남은 것들, 큰 것에서 비켜간 것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이야기하자는 것인데…
      원칙적인 점에서 합의나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소통이 불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강압, 네다바이, 설득의 순으로 문제가 해결되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소통은 미국산 소고기 수입, FTA 합의 이전에 이루어져야 하지, 똥다싸지르고 나서 하는 소통이란 “국민들이 대가리가 나빠서 정부를, 나 MB를 이해 못한다.”는 수준 밖에 안됩니다.

      그런데 국민들이 정부나 MB를 이해해야 한다는 조항은 헌법에 나오지 않습니다.”

  5. 위소보루

    전 오른쪽이 더 부실한 것 같은데 왼손잡이라 그런걸까요 오른손잡이는 왼쪽부터, 왼손잡이는 오른쪽부터 퇴화하는건 아닌가 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ㅋㅋ

    우스개소리로 남자가 건드리지 말아야할 장난감 3개 (어마머마한 가격으로 인해) 중 하나가 오디오였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음의 하나하나를 즐기실 수 있는게 부러우면서도 제 막귀에 새삼 감사합니다 ㅋ

    1. 旅인

      중국에서 티스토리를 막아놓았을텐데… 지금 서울에 계신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오른쪽 왼쪽이 약한 것은 둘째치고 오른손을 세번 깊스(보통 강한 쪽이 부러진다는데 약한 쪽이 부러짐)를 했고 눈도 수술, 무릎이 아파도 오른쪽이 아프고 그렇숩니다.

      오디오는 분수껏 즐기고 있고 최근 진공관으로 바꾼 후 쓰던 앰프도 팔고 스피커도 팔고 해서 오히려 통장에 잔고가 불었습니다.^^

    2. 위소보루

      아뇨 중국입니다 ㅎㅎ 여기는 중국인데 티스토리가 잘 되는군요 무슨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ㅋ

      저도 예전에 양 팔이 한번씩 부러졌더랬습니다.

      여기 있으니 저녁에 할 일이 없어서 절약을 하는 셈이 되고 있습니다. ㅋㅋ

    3. 旅인

      예전에 텍스트큐브 닷컴이 블로거로 이전한다고 티스토리로 대거 몰려올 때, 중국에 계신 분들이 티스토리를 중국에서 막아놓았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중국 공안당국에서 인터넷 감시를 하니까 설치형 블로그를 한국의 티스토리를 쓰는 중국인 수가 늘어났고 중국 정부에서 티스토리와 접속을 막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거기 계시니 자동으로 돈이 굳나보네요. 좋은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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