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의미

때때로 富나 아름다운 사람들에 대한 열망이나, 맑은 날의 아름다운 풍경이나 거대한 석조건물, 궁궐들을 바라보며 경탄하기보다, 낮은 지붕과 좁은 골목 밑, 손바닥만한 햇볕 외에는 하루종일 그림자로 뒤덮힌 가난한 생활들에 대하여 소리없이 열광해 왔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어렸을 적 누나나 형, 동생 모두가 적산가옥의 처마 밑에 깃든 그늘 속에서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할 때에서 부터, 변두리 개천 가의 하꼬방을 지나 등하교를 하던 중고등학교 시절을 지나, 아직까지도, 나는 가난의 의미와 실체를 모른다.

부유함과 가난함 그리고 사람이 이루어 놓은 것들을 가늠하기 이전에 거기에 이르기까지 지나온 어떤 生이라는 것들의 은밀한 내력(內歷)이 궁금했고 가슴 아팠다.

그런 내력과 가슴 아픔은 결코 재어볼 수도 없고, 말(言)로 풀어내기엔 하고 싶은 말보다 한숨이 많을 것이었다. 그래서 머리 키높이의 스레트와 루핑 지붕 위로 저녁 노을이 내려앉고, 서너뼘 너비의 골목을 뒤덮던 김치찌개 냄새와 깡통을 차며 놀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마구 뒤섞이면, 죽지 않고 끝끝내 살아가야 만 하는 ‘삶의 불가해함’ 1고작 내가 분석해낸 삶의 불가해함이란 ‘삶 = 어떤 인간 x 어떤 생활’이라는 불특정의 제곱에 해당되는 것으로 어떤의 제곱은 결국 보편과 개별을 넘어 실존의 불가해함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가슴이 들떴다. 아마 그때는 불가해함을 풀어내기만 하면 세상의 온갖 진실과 진리의 두께를 꿰뚫을 수 있다고 믿었겠지만, 세상에 대한 의혹을 풀지 못하고 늘 불가해함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래서 인간의 위대함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인간이 비굴하다는 것과 천박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그 처절함을 신뢰했다. ‘처세와 돈이면 다’라는 단순명료함과 지혜와 올바름으로 이끄는 잠언이 나를 단 한번도 매료시킨 적이 없으며, 어리석고 우발적인 존재이며 그럭저럭 가난하게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체념할 수 밖에 없었다.

아마 그것이 경부선 상행선을 타고 오다 저녁이 되고 마침내 어둠의 지평을 맞이하게 된 어느 지점, 막막한 어둠 저 편 너머에 등불이 켜진 외로운 창문 하나를 발견했을 때, 아무런 연고없이 불빛을 따라 내 가슴으로 전해지던 그 아픔의 정체였을지도 모른다.

This Post Has 10 Comments

  1. 위소보루

    어릴 적 저녁 뉴스 하던 시간에 아파트 단지 사이를 누비며 찹쌀떡을 외치던 아저씨가 떠오르네요.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유년의 기억이 왜 그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열광이라고까진 표현하지 못하겠지만 어렴풋이 동정인지 동질인지 구분 안되는 그런 감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잘 지내시나요? 중국으로 와서 집에 인터넷이 안되서 오랜만에 한가해진 틈을 타서 여인님의 글을 읽습니다. ㅎㅎ 벌써 3월이네요

    1. 旅인

      지금 쯤 중국에 갈 채비를 하는 것이 아닐까 했더니 벌써 가셨군요.
      대련의 날씨는 엄청날 것 같은데 지내시기는 어떤 지 모르겠습니다.

  2. 흰돌고래

    푸근하고 포근하면서도 슬픈 느낌을 주는 글이에요T.T

    하고 싶은 말보다 한숨이 더 많은 가슴 아픔
    김치찌개 냄새와 깡통을 차며 놀던 아이들의 목소리가 마구 뒤섞이면
    끝내 살아가야만 하는 삶의 불가해함

    1. 旅인

      조금 피곤했고 따스한 방에서 포근한 이불을 덮고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푹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3. 마가진

    무채색의 옛풍경들이 자연스레 떠오르네요.^^;

    저도 가끔 밤차로 지방으로 내려갈 때 어딘지 모를 시골마을에 조용한 불 하나가 빛나면
    저 안에는 누가 살며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하고 궁금해하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

    1. 旅인

      저도 어렸을 적 열차의 차장에 기대고 시골마을의 불빛을 보면 이상하게 가슴이 아팠는데 그것은 마가진님처럼 누가 살며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하는 궁금함이 저를 압도했고 결국 그 궁금함들이 철커덩거리는 열차의 속도와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라는 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아직도 가슴의 아랫쪽을 스쳐지나던 그 아픔을 그냥 아득함이라고 이해합니다.

  4. 후박나무

    “오히려 인간이 비굴하다는 것과 천박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그 처절함을 신뢰했다.”

    여운이 남는 구절이에요~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은, 하지만 그래도 살아가야 하는….ㅠ

    1. 旅인

      이 구절은 저를 위로하기 위한 구절입니다. 신영복선생님을 좋아하면서도 간혹 “선생님의 말씀은 공감하지만, 선생님 말씀처럼 살지는 못할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싶은 때가 있지요.

  5. 데이지봉봉

    여인님의 글을 읽으면서 ㅡ 글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ㅡ영혼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가난에 대한 여인님의 동경(?)이 제가 영적인 어떤 시간들을 늘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것은 아닌가,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어쨌든 여기 말고 저 너머…

    1. 旅인

      영적인 것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서도 철로 저편에 보이는 어느 집의 등불을 볼 때 제 가슴이 아린다는 것, 그 가슴 아림의 정체를 알기만 한다면 그 아릿함의 근원을 찾아간다면 세상의 모든 것을 알 것 같다는 그 어린 시절의 느낌은 분명 영적인 것에 대한 동경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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