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 온 2011년

말(言)로 건너는 세상을 감당하기 위하여 남긴 설익은 말들의 자취를 더듬다 보면 삶이 강팍한 것인지 내가 어리석은 것인지 알 수 없다. 차라리 입으로 말을 토해낼 수 없어 글(文)로 흐린 세상을 건너고 싶다.

살 속에서 자라난 돌보다 더 여문 이빨이 살과 화해를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잇몸도 성치않고 속도 편치 않은 탓인지, 양치질을 해도 구취가 가시지 않는다. 세상에 널어놓았던 육신이 햇빛과 비와 바람에 풍화되고 있는 것인지? 혹은 내 속의 사박스런 것들, 생을 돌파하다 속에 남긴 미움과 탐욕 그리고 거친 것들이 폐부를 찢고 애닲게 하여 그런 것인지? 하지만 온갖 무너지고 썩어가는 것 속에서도 붉은 혀는 여전히 활기차다. 요사스럽고 요망하다.

혀가 말 같지 않은 말을 제멋대로 토해내는 동안, 흐린 세상을 건너 귀에 와닿는 말들은 의미를 가늠할 수 없어 아득하다. 가는 귀를 먹은 모양이다.

서력 2011년은 우물쭈물 왔다. 지난해와 올해를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나의 일상은 천편일률이었고, 춥고 긴 겨울이 눈과 바람과 함께 도시의 골목에 정박하고 있을 무렵, 나는 지상에서 밀려났다.

지하 1층으로 내려갔고, 8개월을 보냈다.

새벽에 일어나 지하철을 탔고, 지하철과 연결된 지하통로를 따라 사무실로 출근했다. 지하의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짜투리 점심시간에 고개를 가슴에 접고 팔짱을 낀 채 모자른 잠을 벌충했다. 나와 지상의 계절과는 연고가 끊어졌다. 온기없는 인조광(人造光)을 받는 탓에 팔뚝의 정맥은 더욱 파리해져 차라리 잿빛같았다. 겨드랑이와 샅 사이로 음지식물이 자라는 것 같았다.

지하 1층은 천장이 높았다. 봄이 4월에 왔다면, 내게는 주춤대며 5월에 왔고 남들이 셔츠만 입고 근무할 때, 웃저고리를 입은 채 근무를 했다. 천장의 높이에 비례하여 형광등의 조도를 높혔지만 지하에 감도는 빛에서는 해가 저문 후 어둠과 일진일퇴를 거듭한 형광등 불빛 속의 은분색과 같은 침침했다. 늦은 오후가 되면 눈의 촛점이 잡히지 않았다. 하루가 저녁으로 말려가는 하늘을 보는 것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대지를 뒤덮고 있는 하늘과 해를 본 지 오래됐다는 것을 문득 알게 된다. 계단을 따라 빛이 있는 곳, 회사의 뒷골목으로 올라선다. 그때마다 3배속, 4배속으로 달려가는 계절의 질주를 보았다. 늦은 봄이었고, 여름이었고, 그만 가을이었다.

계절이 지나는 동안, 지하 사무실에서 as-is와 to-be의 차이와 그 사이를 가늠하거나, SCP, CRM, MDM 등 찢어지고 조각난 단어들을 꿰어맞추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유추했다. 간신히 단어의 조각을 맞추고 나면, 노력했다는 것 때문에 다 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더 이상 구체적인 내용을 알아서 무엇을 할 것인가? 알려고 하여도 어려워 알 수 없었고, 알아도 다른 사람이 아는 내용과 달랐다. 프로세스, 시스템, 조직, 사람의 의미를 따졌다.

사람이라는 단어에 생각이 걸렸고, 질척댔다.

서류나 장표에서 ‘사람’은 사물이나 데이타로 취급되었다. 나에겐 ‘사람’은 개별적이고 실존했다. 사람을 사물이나 데이타로 다루는 회사의 담론 속에서 ‘나’는 하나의 자원이며, 물리적 기능(그것을 역량이라고 한다)을 요구받고, 성과를 평가받는다.

이런 조촐한 대우에 대하여 진보적인 탓이 아니라, 그냥 단순한 실존으로서, 사물이나 데이타로 처분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여름으로 접어들고, 더 이상 시스템이나 프로세스 그리고 공급연쇄관리, 고객관계관리 등 한글로 풀어놓아도 추상 곱하기 피상적인 이해조차 어려운 영문약어를 이해하기를 포기했다. 그런 단어들은 종교적인 전례에 쓰이는 라틴어처럼 시스템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권위를 갖는 도구이지만, 실상은 야근과 밤샘으로 점철되는 페이퍼워크이며, 시스템과 프로세스가 기능을 고도로 발휘한다면 또 많은 사람들이 사무실에서 허무하게 짤리게 되거나, 신입사원 충원은 중단될 것이다.

단어 뜻 알아내기를 중단하자 할 일이 사라졌다.

햇볕도 없고 인원수가 적은 사무실의 냉방온도는 서늘하다 못해 추웠다. 여름임에도 웃저고리를 입고 무료한 하루를 보냈다. 때론 감기에 들 것 같아 지상으로 올라가 넓이를 알 수 없는 여름의 폭염 위에, 추위와 어둠에 지친 피부를 널어놓고 땀샘들을 열기도 했다.

담배를 끊지 않았다면 하루에 몇번은 지상으로 올라왔겠지만, 이제는 태양 밑에서 와이셔츠 소매를 걷고 담배를 피우며 담소를 나누는 직원들의 모습과 열기에 짙어져 가는 그늘이 생소했다.

춥고 무료한 여름을 돌파하기 위하여 지나간 나날들을 생각했다. 지금이 무료한 만큼, 삶과 육신을 뒤흔들 만큼의 어느 한 싯점 또한 없었다는 것, 그래서 더 이상 추억할 것도 회상할 것도 없다는 것에 나는 경악했다.

주어진 것은 낮의 지하생활과 손바닥만한 저녁이었다. 손바닥만한 저녁에 TV를 켰고 세상이 멸망해가는 소식을 들으면서도 멸망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를 했고, 연속극을 보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잤다.

그런 시간들 속에서 살아있다는 한 조각의 증거를 얻거나, 몸 속에 가라앉았다 밖으로 스며나오는 것 같은 추위와 피로를 견디기 위하여, 보내지도 못할 편지를너에게 쓰고자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한장은 커녕 한줄의 편지도 쓸 수 없었다.

네 모습을 더 이상 기억할 수 없고, 때때로 내 코 끝을 감돌던 샴푸냄새와 네가 쓰던 로션의 레몬향, 그 밑으로 피어오르던 물빛 체취 또한 사라져버린지 오래다. 그래도 너를 만나기 위하여 계단을 올라가던 오래된 여름의 설레임은 아직도 육신의 내륙 속에 암각되어 있다. 설레임의 잔잔한 문양은 잔인하거나 무의미한 세월에 풍화되고 마멸되어, 조만간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될 것이다.

희미한 설레임을 따라 어린 시절, 나를 매료시켰던 치기어린 감정들이 간헐적으로, 때론 땀내를 풍기며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때론 우리가 마주했던 풍경이 떠오르며 갈증을 느꼈다.

그때는 네 가슴 속에 깃든 감정이나 기쁨, 명랑한 너의 일상 속에서 때때로 맞이하던 우울, 슬픔, 모두를 느꼈다. 하지만, 어떻게, 내가, 네 감정을 고스란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가을이었고 우리는 창덕궁으로 갔다. 느닷없이 비가 내렸고. 대궐의 주랑(柱廊) 아래서 한동안 비를 그었다. 목과 어깨를 적신 탓에 추웠다. 비가 그쳤고 궁에서 나온 우리는 따스한 차라도 마시기 위하여 가까운 카페로 들어갔다. 창 가에 앉아 따스한 차를 시켰다. 차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창 밖을 내다보는데 적막감이 끼쳤다. 고개를 돌려 너를 보았다.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카페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명랑했기에, 눈물의 연고를 알 수 없었다.

유자차와 코코아가 나왔다. 몸 속의 한기를 몰아내기 위해 손바닥으로 잔을 감싸쥐고, 눈물을 들이마시듯 후루룩 마신 후,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눈물이 사라진 네 눈빛은 맑아졌지만, 너무 아득했다. 우리 둘 사이의 자그마한 탁자와 낮고 조용한 숨결에 따라 천천히 움직이던 네 가슴을 건너 입을 가리고 있던 큰 머그잔 위로 피어오르던 하얀 김, 카페의 어두운 바닥에 깔리던 낮은 음부의 음악, 그런 것들이 각각의 시각 속으로 비집고 들어왔고, 너와 나 사이의 공간을 무한히 갈라놓아, 다시는 만나지 못하고야 말 것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이고 말았다.

손을 뻗어 네 손을 꽉 잡았다. 그 힘에 네 몸이 기울었고, 네 눈동자가 내 눈 앞에 멈췄다.

그때 처음, 네 눈동자의 내륙 안 쪽에 시선이 가 닿았다.

어둡지만 빛으로 가득하고 고요했다. 그리고 평화와 사랑으로 감쌓여 있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을 감당하기에는… 안타깝게도… 나는 유한했다. 거칠고 어리석었기 때문에 무한과 영원 그리고 멸각과 같은 것을 바로 여기에서 이 순간, 벼락같이 맞이해야 하는 것을 몰랐다. 알아도 고요의 깊이와 평화의 너비, 유한이 무한과 합치하는 순간, 하나의 존재가 무화되는 두려움을 감당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너와 내가 느꼈던 그 날의 슬픔은…

고요나 평화 그리고 사랑에서 흘러나온 것이 아니다. 너무 광대하고 영원과 같아서 결코 안을 수 없으며, 그 속에 깃든다면 흔적도 없이 자신이 사라지고 말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에, 어린 아이처럼 막연히 울 수 밖에 없었던 그런 슬픔이었다.

나 또한 눈물이 흘렀던 모양이지?

네가 오른손을 들어 나의 왼뺨을 감싸쥐고 내 눈물을 훔치며 애틋한 미소를 짓지 않았다면, 네 손이 그렇게 차갑지 않았다면, 슬픔이 무너지고 오열했을 꺼다. 차가운 손길과 너의 웃음은 고요의 심연을 바라보던 나의 시선을 문득 현실 이 편으로 돌려놓았다.

미소 속의 시선은 “너도 고요를, 그리고 슬픔을 만난거니?” 묻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였지만, 현실 속으로 돌아오기 보다 울었어야 했다. 가슴의 뚝이 무너지고 눈물을 따라 하염없이 흘러가서 어딘가에 당도했어야 한다. 수치스럽다 하더라도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조금의 깨달음을 위하여 혹은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고요에 깃들기 위하여 슬픔의 뚝을 무너뜨렸어야 한다.

광대한 강변에 당도했지만 우리는 강을 건너지 못했다. 기쁨을 맞이하거나 성숙하기 위한 기회를 얻지 못하고 어린 가슴을 부둥켜 안은 채 넓은 강 혹은 고요하고 침묵하는 바다를 보고 슬퍼했을 뿐이다.

그 이후 우리는 때때로 손을 잡고 무언의 세계로 내려가기도 했다. 너의 동네 어귀의 찻집에서 서로 아무 말없이 앉아있다가 시간이 많이 지난 것을 알고 헤어지는 나날들이 계속되었고, 그 시간들 속에서 네 모습은 때론 향기이거나 아름다운 음률이 되어 사라지기도 했고, 강 위에 떨어지는 오후의 수런스런 빛의 비늘 속에 허물어지며 나의 가슴에 안겨온 것들을 기억한다. 그런 순간 순간들 때문에 그 각각의 시공간 속에 네가 현존했던 것인지, 꿈으로 다가온 것인지 가늠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서로의 사랑에 대해서 심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문제라고 단정지을 만큼 나는 너의 마음을 읽지 못했다.

“사랑이 무엇일까?”라고 묻는 철없는 나에게, 네가 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이었을까?

스무 즈음의 나이, 그것은 존재하기 위한 나이였지, 살아가기 위한 나이는 아니었다. 책을 읽었다. 살아가는 행위처럼 읽었고 음악을 들었다. 자신의 존재를 풍요롭게 하기 위하여 장식적이고 쓸데없는 것들, 그리고 본연의 체취가 아닌 냄새들로 채웠고, 그래서 풍요롭고 아름답기는 하지만 진부하기 그지없는 젊은이로 조금씩 썩어가기 시작했다.

사랑처럼 규정할 수 없는 것은 믿을 수 없었고, 명증함에 이르지 못한다면 사랑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세상에 논리적이고 자명한 사랑이라는 것이 있을까?

이 말 또한 하나의 변명일 뿐이다.

자명한 사랑을 추구했던 것이 아니다. 사랑하지만, 너한테 해줄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그 초라함 때문에, 사랑하지 못하고, 말도 안되게 논리적이고 자명한 사랑을 추구한다며 네 마음을 아프게 했다.

네가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처절할 정도로 명료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 가슴 속의 사랑을 믿지 못했고, 너의 사랑을 비웃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 해 겨울방학동안 시내를 동서로 관통하는 버스를 타고 일주일에 두번 학교로 갔다.

방학동안 모자란 공부와 연구활동을 위해서 단과대 건물에 있던 간이독서실을 사용하고 싶다고 담당교수에게 네다바이를 친 후, 학과 사무실에서 독서실 열쇠를 받았다. 친구와 나는 세종문화회관 뒷편이나 종로의 후미진 골목에 있는 허름한 서점의 다락으로 올라가 이른바 불온서적이라는 것들을 샀다. 우리는 겨울방학동안 일주일에 두권의 불온서적을 읽고 두번 독서실에 만나 토론하기로 했다. 그 서적들을 읽으면서 어렸을 적의 난독증이 다시 도지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읽어도 읽어도 의미를 알 수 없던 그 책들은 내용보다 문법이 불온했고, 불온서적 속에는 기독교 해석기술 같은 터무니 없는 것도 삽입되어 있었다. 방학 내내 불온서적을 읽었지만, 국가에 대하여, 정부에 대하여, 아니면 유신에 대하여 무엇이 불온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날도 학교로 가고 있었고, 버스는 시내의 중앙통을 한참이나 가로질러 학교로 가는 직진 구간에 들어서기 위하여 좌회전을 한 후 정류장에 섰다. 읽던 책을 잠시 내려놓고 성애가 오후 햇살에 녹아내리던 차창의 바깥 풍경을 보았다.

정류장 옆, 공터의 응달에는 눈이 녹지 않았고, 참새떼들이 종종대며, 머리로 땅바닥을 쪼아대고 있었다. 몇마리가 담벼락이나 전선 위로 날아올라 나란히 앉았다.

“너희들도 사랑을 아니?”

그 날 결국 학교에 들어서지 못했다. 학교 앞 로터리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남산 아래에 내려 한참을 걸어 너에게로 갔다.

참새들은 질문을 무시하고 낮은 겨울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가 지붕 사이로 사라졌다. 텅빈 하늘의 공허함 사이로 은빛 겨울 햇살이 번지고 있었다. 퇴락한 도시 뒷골목의 풍경 앞에서 나는 사랑은 아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이라는 것, 가슴에 복종하는 것임을 기어이 알았나 보다.

걷는 내내, 너를 만난 첫 순간부터 사랑했으며, 앞으로도 사랑할 것이고, 지금은 사랑한다고 말하겠다고… 나의 삶이 무의미하든 아니든 그것은 하등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나에게 있어 의미는 바로 너일 뿐이라고… 반드시 말하겠다고, 어금니를 꽉 깨물고 산 허리를 끼고 불어오는 찬바람을 거스르며 네 집 앞에 당도했다.

공중전화에 추운 몸을 기대고 전화를 받아주기를 고대하며 드르륵 드르륵 다이얼을 돌렸다.

제발…
제발…

“누나 나갔는데요. 누구라고 할까요?”

고3이 되는 네 동생 놈은 내가 누구인지 분명 알고 있으면서 마치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빌어먹을 놈!

“애인이라고 하면 알거야.”

누나 애인없는데요 어쩌고 저쩌고 소리를 들으며, 수화기를 공중전화 위에 내팽개쳤고, 앞으로 다시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내 목구멍에 치밀어 올라올 날은 없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전화했다며? 그런데 너 미쳤니? 동생에게 애인이라고 했다며…?”
“애인이라고 하면 안된다고 법에라도 나와 있어?”

늦은 저녁 양치질을 한 후 분홍빛 잠옷을 입고 하품이 서린 웃음과 함께 날아온 너의 전화를 향하여 나는 그렇게 소리쳤다.

그 후 너는 보는 사람마다 “얘가 우리 집에 전화해서 동생에게 애인이라고 떠들어댄 것 알아?”하며 떠들어댔고, 네 친구들은 애인이라는 쌍팔년도식 단어에 실소를 날렸다. 웬지 바보가 된 것 같아 나는 쩔쩔매곤 했다. 그래도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확실했고, 자부심을 느꼈다. 만날 때마다 너는 매번 새로운 모습과 다른 향기로 나에게 다가왔다.

다음 해 봄이었다. 목련이 피었다 지기 시작한 즈음이었지. 꽃샘 추위 때문에 시내를 배회하기를 그만 두고 명동 뒷골목의 자주 가던 지하 카페로 내려갔다. 카페에는 한번도 울리지 않고 먹통같이 구석에 놓여 있던 탄노이 스털링 스피커가 있었다. 그날은 천장의 값싼 스피커가 아닌 스털링에서 마리오 란자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의 목소리에는 LP판이 뒤틀어져 판의 높은 마루와 낮은 골 사이에서 바늘이 밀리는 것과 같은 미묘한 구겨짐이 있어서 과거로 회귀하는 아련함이 있었다.

“아주 오래된 노래 같아.”
“맞아 꽤 오래된 노래일꺼야.”

마리오 란자의 LP판이 끝나고 바늘이 판의 골을 넘는 탁탁소리가 들리자, 스피커 앞의 소파에 앉아 있던 중년의 사내가 일어섰고, 카운터로 가서 뭐라고 한 후 카페를 나갔다. 더 이상 스털링에서 음악이 나오지 않았다.

음악이 끝나자 카페 안이 먹먹했다. 나는 카운터로 가서 혹시 라보엠 중 ‘내 이름은 미미'(Si Mi Chiamano Mimi)가 있느냐고 물었고, 스털링으로 들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카운터의 여자는 방금 나간 주인이 싫어하겠지만, 한번 쯤은 틀어도 무방하지 않겠냐고 했다.

사람들은 저를 보고 미미라고 하지만,
그 까닭을 알 수 없습니다
언제나 혼자 살며 식사도 혼자 한답니다
미사에는 자주 가지 못하지만 기도하기를 좋아하지요
조그맣고 하얀 방에서 말이죠
지붕 위로는 하늘 밖에 보이지 않지만
봄이 오면 햇빛이 맨 먼저 저를 비춥니다
4월이 제게 먼저 입맞춤 한답니다
화분 속의 장미가 눈을 뜨면,
꽃잎 하나하나의 향기를 맡습니다
얼마나 우아한 꽃향기인가요!
하지만 제가 만든 꽃에는 향기가 없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이것이 다 입니다
저는 이런 바쁜 시간에 당신을 방해나 하고 있는 이웃이지요

노래가 끝나자 너는 한숨을 내쉬며, 눈 가를 훔쳤는데 네 코 끝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리고 놀랍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오페라가 이런 것이었어? 여자의 노래는 처음에는 몹시 수줍은 것 같았는데, 노래의 마지막에는 가슴이 아파서 숨도 못쉬겠던걸! 그런데 저 오페라의 내용은 뭐야?”

“나도 몰라. 얼마 전에 우연히 알게 되었어. 몇년 전에 아버지가 사두었던 판이 있는데, 앞에 있는 모짜르트 등 독일 가극은 정말 내 취향이 아니라서 그냥 내팽개쳐 두었거든… 지난 주인가 한번 다 들어보자 하다가 발견한 오페라야. 벌써 열번도 넘게 들은 것 같아.”

이후 마리아 칼라스의 LP판을 사서, ‘내 이름은 미미’의 가사 내용과 함께 너에게 주었다. 너희 집에 놀러가면 낡은 전축에 레코드를 올리고 우리는 진공관이 달아오르기를 기다렸다.

노래기 시작되면 너는 아이처럼 두손을 모아 쥐고 듣다가 ‘봄이 오면 햇빛이 맨 먼저…’하는 대목에 이르자 “하오~”하며 숨을 몰아쉬며 어깨로 네가 무너졌다. 샴푸향과 비오는 날 찻집 유리창에 번지는 것 같은 아이보리 비누 냄새가 왈칵 끼쳐왔다.

노래를 들으며 감정에 복받쳐 있던 나는, 너의 향기 때문에 심장이 더욱 걷잡을 수 없게 요동쳤다. 사랑한다는 뻐근한 고통이 나의 생애의 시시각각 나를 애태우고 괴롭혀 주기를 바랐고, 떨리는 손으로 너의 어깨를 안으니 너의 심장의 떨림이 내 가슴 속까지 번져왔다.

세상이 끝나고 오로지 꿈 만 남아있는 것 같았다. 꿈에 취한 듯 네 귀에 속삭였다.

“너도 나를 사랑하고 있는거니?”

너는 몸을 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동안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꽉 다문 채 고개를 몇번인가 끄덕이다가 그만 네 눈에서 눈물이 주룩 흘렀다. 그 눈물에 다급해진 나는 너를 안았다. 너는 내 품에서 울었다. 울음을 멈추기 위하여 입술을 네 입술 위로 가져갔다. 부드러웠다. 눈을 감은 채 나는 일곱개의 바다를 건너 아득한 세계로 가고 있었다. 별들이 무너져 내렸다.

얼마동안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지만, 눈을 떴을 때, 수줍은 지 아직도 눈을 감고 있다가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나에게 미소를 지었다.

“지금부터 우리, 진짜 애인인거지?”

그렇게 그 해 봄은 시작됐고, 때때로 나홀로 여행을 갔다. 너를 그리워하기 위해서, 혹은 편지를 보내기 위하여, 배낭을 매고 떠났다. 그런 여행이 얼마나 달콤했는지 아마도 모를 것이다.

수업을 빼먹고 남도로 내려가, 어느 작은 읍에 있는 여인숙에서 창호지를 바른 미닫이 문을 열어놓고 눕는다. 5월의 저녁이 다가오고 땅거미가 까맣게 내릴 때까지… 아무 생각도 없이… 대기가 익어가는 냄새를 맡는다. 거기에는 들을 넘어온 여물죽 쑤는 냄새와 저녁밥이 뜸드는 냄새 그리고 여인숙 마당의 라일락 냄새, 골목을 지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뻐꾸기 우는 소리가 섞인다.

촉수가 낮은 알전구의 스위치를 켜고, 우편엽서를 꺼내서 파란 모나미 볼펜으로 너의 이름을 쓴다. 두 글자인 네 이름은 쓰고 나면 늘 허전했다. 너 없는 무의미한 날의 기록인 엽서가 학과 편지함에 당도하면 엽서 위에 적힌 쓸데없는 사연을 너보다 친구들이 먼저 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엽서에 깨알같은 글씨로 써 내려간다. 그리고 마지막에 ‘전남 강진에서 애인 보냄’이라고 쓴다.

무의미한 엽서를 네가 몇번이나 읽을 것이고, 애인이라는 단어를 보고 까르르 웃던 학과 친구들의 웃음소리를 생각하며 얼굴에 홍조를 떠올릴 너를 생각하며, 시외버스터미널 옆 우체통에 엽서를 넣었다.

엽서가 너에게 가 닿기 이전에 나는 너를 만나고 있을 것이고, 그 며칠 간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 해 4월에서 10월까지 나의 하루에 또 하루는 너로 점철되었다. 풍요로움에 탐닉하기 위하여 학교를 가기 보다 동네를 배회하는데 시간을 썼고, 늦은 저녁 서울을 가로질러 불켜진 너의 방 아래에서 너를 불러내거나, 아니면 늦은 밤, 사랑한다고 다급하게 걸려온 네 전화를 받고 할 수 없이 나도 사랑한다고 실토해야만 했다.

얼마나 함께 도시의 거리를 돌아다녔으면, 홀로 길을 걷다가 우연히 너를 마주치기도 했고, 찻집에 앉아 있는 나의 등 뒤에서 네가 홀연히 나타나 “오늘도 수업 안들어간거야?”라며 내 옆자리에 털썩 앉기도 했다. 우연히 만난 그 날은 통금이 다되도록 함께 보냈다.

여름도 갔고 무수한 시간과 거리와 풍경들, 그리고 영시의 다이얼에 울려퍼지던 팝송들과 라보엠이나 나비부인 그리고 투란도트 등의 오페라의 단편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읽었거나 함께 읽으려고 했던 책들, 네가 보내주었던 의미를 가늠할 수 없었던 시 구절들. 나는 합정동을 물들이던 가을날의 노을을 바라보며, 그 나날들의 시간이 영원이 되기를 염원했다. 우리가 함께 읽었던 기탄잘리의 제 일절처럼 그 시간들 속에서 너는 나를 무한케 했고 그것은 너의 기쁨이었던 것만 같다.

네 눈동자의 안 쪽 내륙의 그 깊은 고요 속으로 나는 매일, 조금씩, 다가갔다. 내 속의 거친 말(言)들은 이미 미소가 되었고 나는 더 이상 무엇을 바라거나 조급해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을이 왔던 모양이다.

날아든 징집영장에 적힌 입소날짜를 보았다. 11월 3일. 몇번이나 그 날자를 곱씹어보았고, 너와 이제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으면서도, 너에게서 떠날 때가 되었다는 것과 가슴 아프지 않게 그리워할 수 있을 것을 알았다.

그 아름답고 고요했던 시간들로부터, 나는 조용히 내려와 머리를 깎고 병영의 먼지 속으로 흘러들었다.

그리고 난 후, 얼마나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것일까?

그리워한 것이라기 보다, 젊은 시절의 풍요로움을 한조각도 간직하지 못한 채, 생활의 나락으로 떨어진 나는, 볕도 들지 않는 지하에서 과거를 호흡하며 하루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는 현실로 부터 안타깝게도 그 시절의 동화가 꿈이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9월 중순이 되었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갔다. 넓은 창 가에 앉게 되었지만 교육과 행사, 그리고 나날의 과제들로 야근과 야근을 거듭하다보니 12월 또한 가고 말았다. 하루에 한번쯤은 창 밖의 하늘을 보거나 노을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하늘을 보는 일을 매일 잊고야 만다.

밤이 오면, 까만 유리창에 유령처럼 떠오른 얼굴을 본다. 감정도 행복도 고뇌도 피로에 지워지고 불감하고 지친 얼굴이다. 누군가 그 누군가… 저 밤의 아래에 있을 그 누군가가… 저 사나이의 이름을 불러준다면… 가을 바람과 같은 소리이거나, 아니면 늦은 밤, 잠에 겨운 하품과 같은 달큰한 소리이거나,

한번 만이라도,

단 한번 만이라도 나의 초라한 이름을 불러준다면…

20111228

This Post Has 6 Comments

  1. 마가진

    여인님 자신의 이야기인듯 하기도 하고 쓰신 소설같기도 하고.. ^^;;

    무슨 이유에서든 어떤 시기에서든 사람들은 ‘투쟁’이라도 하듯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 같은데
    왠일인지 제 기억은 휑하니 텅! 비어있는 듯 하여
    저만 그런건지, 아님 간혹 저 같은 사람도 있는건지, 궁금해하곤 합니다.

    …. ㅎㅎ 궁금해 하는 것 자체가 허황된 일인 듯 합니다.

    1. 旅인

      저는 어느 때부터인가 추억이라는 것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전세와 해외근무 등으로 전전하다가 돌아와 처가집에 맡겨두었던 책을 가져와 풀었을 때, 거기에 생각지도 못했던 복학 후에서 사회생활 초반의 일기장을 발견했습니다. 적어도 15년 정도의 간격이 있는 일기였습니다. 거기에는 대학초년 시절의 기억을 더듬는 구절들이 있었습니다.(왜냐하면 이 일기장 이전에 제가 기록했던 일기장 모두를 태웠던 일이 있었고, 그것 때문에 간혹 그런 과거를 더듬는 기록들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제가 기억하는 것과 전혀 다른 의외의 사실들이 곳곳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기억하거나 추억하는 것은 근거도 없이 자기 미화와 미화를 거듭한 끝에 추억이라는 것으로 여기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아마 그러한 기억이나 추억의 방식이 젊은 시절 아프고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을 넘어서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독특한 뇌의 기제작용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추억이란 자신 만의 고유한 소설이라고 하고 싶고, 제가 여기에 쓴 글 또한 80%의 추억에 20%의 허구가 덧칠되어진 그런 글입니다.

      그러니 소설로 받아들여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문제는 회사에 들어오면서 저 또한 아무런 기억할 것이 없다는 것에 이 삶이란 것에 처절한 배신을 느낍니다. 하루 하루가 한계지어지고, 더 이상 자신을 사랑하거나 아낄 시간은 없고 한푼의 돈을 벌기 위하여 타의에 복종해야 한다는 사실이 더 이상 자신의 삶을 스스로 포기하고 말았던 죄가 아닌가 싶습니다.

  2. 잘 읽었습니다. 따뜻하고 쓸쓸한 밤이 되어버렸네요.. ^^

    1. 旅인

      따스하기만 바랐는데요. 늦은 시간인데 작업을 하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봉봉님의 댓글에서 커피냄새가 느껴집니다.

  3. 흰돌

    한 편의 소설을 읽은 것 같아요:-)
    지나간 시간들이 따뜻하고 포근하고 애틋하고요..

    1. 旅인

      마기진님의 댓글에 단 것처럼 半虛半實의 소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글입니다.
      올해 한해를 마감하자고 쓴 글이 너무 멀리가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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