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6일

積善之家, 必有餘慶 ; 積不善之家, 必有餘殃. 臣弒其君, 子弒其父, 非一朝一夕之故, 其所由來者漸矣, 由辯之不早辯也.

– 주역 곤괘 문언 중 –

서울시장 선거 때문에 그만 잊혀졌지만, 1970년대가 끝나가는 10월 26일에는 그런 일이 있었다. 박정희는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을 참석한 후 궁정동의 안가로 간다. 물론 가수 심수봉과 모델 신재순은 그 날 오후 적선동 옆 내자호텔에서 중앙정보부의 채홍사를 만나 안가로 끌려간다.
그 날 저녁 7시 41분 박정희는 제자이며, 후배이자 가신인 김재규의 총을 가슴으로 받고, 죽는다. 김재규는 죽은 박씨의 머리에 총구를 대고 탕! 확인 사살을 한다.
박씨가 이미 죽어있을 9시, TV에서는 ” 오늘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는 삽교천 어쩌고 저쩌고…”라는 방송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나는 다음의 사실에 주목한다.

당시 은밀히 회자되던 말들로 궁정동 안가에 조달되던 연예인 등 여자들은 내자호텔에서 청와대의 채홍사(의전과장 박선호)를 기다렸다고 한다. 내자호텔이 있는 곳은 조선조에는 내자시(內資寺)가 있던 자리다. 내자시는 조선 초기에는 왕실의 부고 만을 담당했으나, 나중에는 왕실에서 사용되는 쌀, 국수, 술, 간장, 기름, 꿀, 채소, 과일, 꽃 까지 담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5.16 군사정권 이후 꽃 만 조달하는 곳으로 전락한다.

내자동의 바로 옆에 적선동이 있다. 적선동은 이조 초기부터 적선방으로 불리어지던 동네이다. 이 적선동은 조선조의 법궁인 경복궁의 남서쪽 모서리에 자리하고 있다. 이 방향은 땅의 방향 즉 곤(坤)방이다.

주역 곤괘의 문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오며, 그 첫 두글자를 따서 동네이름을 적선방이라 한다.

“착한 일을 쌓는 집에는 반드시 경사스런 일들이 넘칠 것이지만, 착하지 아니한 일을 쌓는 집에는 반드시 재앙이 넘치리라. 부하가 보스를 총으로 쏴 쥑이고, 자식이 아비를 쥑이는 일은 하루 아침 하루 저녁의 연고 때문은 아니다. 그런 일은 점차 커져서 되는 것이라서, 유래를 밝히려고 해도 그 처음은 말할 꺼리조차 되지 못한다.”고 한다.

10월 26일이 되면, 제자이자 후배이며, 그의 한쪽 팔이었던 사람에게 총에 맞아 죽은, 젊을 때는 친일파요, 여순사건 시에는 변절자이며, 군사반란 이후에는 독재자 그리고 유신의 여세를 몰아 차라리 왕이 되려고 했던 어떤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그의 시신에서 풍기는 악취로 얼마나 오래동안 우리나라는 파행에 파행을 거듭해왔던가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20111030

This Post Has 8 Comments

  1. 플로라

    예언서와 같은 글입니다.

    그 처음은 말할 꺼리조차 되지 못한다….

    종이에 베였을 때 처음엔 베인줄도 모르다가 점점 고통스러워지며 피를 보는 것처럼,
    저 글이 그런 울림을 주는군요.

    1. 旅인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라는 詩인지 글인지 알 수 없는 글을 읽었을 때 예언이라는 것이 멋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글은 주역의 건괘와 곤괘에만 붙어있는 文言에서 나언 글입니다. 공자가 주역을 읽고 달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최근의 연구성과로는 공자와 관련이 없을 것이라는 의견입니다만,주역 전체를 보아 가장 문학적이고 포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하가 임금을 죽일 수 있다’라는 자경의 문구를 궐 밖에 걸어두고 근신하며 오백년을 지켜나간 왕조와 권력의지 때문에 고아들을 남겨둔 채 황천으로 가야만 했던 고달픈 인생을 봐야 했던 이 시대를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런지??

  2. 위소보루

    저는 박정희의 죽음을 볼때마다 삼국연의에 묘사된 동탁이 떠오릅니다. 죽은 후 사람들이 시체를 장안 시내 한가운데 놓고 배에 심지를 꽂아놓고 불을 붙였더니 7일을 쉬지않고 타더라던 그 부분이 되내어 집니다.

    옛말이 저리 존재하였다는 것은 필히 그런 악인들에 의해 역사가 반복되어 왔기 때문은 아닐런지요.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우매함과 끊임없이 극복하는 잡초같은 끈끈함을 동시에 느끼게 됩니다.

    1. 旅인

      역사란 선한 사람과 선한 의지로 이끌어지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동탁이 죽어 버려졌을때,당대의 문장가인 채옹 혼자만이 조상을 했는데 그를 안 사도 왕윤이 채옹의 목을 쳤고, 채옹이 보유하고 있던 만권서가 형주자사 유표에게 흘러가고 그의 외손자인 왕필이 그 책들을 읽고 위진현학을 개창함으로써 상수, 훈고 중심의 한대 경학에 의리지학의 전통이 생기고 신유학인 성리학이 생길 수 있었으니, 동탁의 출현이 딱히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점이란 명리학처럼 운명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에 대한 판단을 하려는 행위이기 때문에 점사와 사유가 섞여 저러한 문장이 나온 것 같습니다.

  3. IamHoya

    대통령이든 깡패든 지욕심대로만 살아온 자의 최후는..
    저리 비참하고, 외로운 것이로군요.

    똑같은 사물을 두고도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고는 하나,
    박정희를 보는 후대사람들의 인식은 사람마다 달라도 너무 다르네요.

    저런 자가 남긴 딸래미가 아버지를 등에 업고, 대통령을 하겠다고 설쳐대고 있으니 원..;;

    1. 旅인

      박씨 또한 아버지에 대한 호오와 질곡이 있는 듯 합니다. 5.16이라는 군사정변이 없었다면 우리 민족에게 다행이었을 뿐 아니라, 박씨의 집 안 또한 멸문에 가까운 화를 당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나는 것 아니겠습니까?

  4. 흰돌

    아아.. 박정희 대통령이 이정도였군요..

    1. 旅인

      창씨개명 당시 高木正雄(다카키 마사오)였던 박정희는 장교가 되면서 다카키와 같은 조선인의 흔적이 있는 이름을 岡本實(오카모토미노루)로 다시 고쳐 內地人(일본인)이 되고자 합니다. 이야말로 일본놈들이 바라던 內鮮一致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는 시바스리갈 12년산을 마시고 취하면 기미가요와 일본노래를 부르며 오카모토 미노루였던 그 시절, 황국의 신민이었던 그때를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여순사건 이후 빨갱이로 지목되자 변절로써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쿠테타라는 더러운 사건으로 민주에 테러를 가했던 자, 그리고 청렴했다고 하지만 역대 정권 누구에 비해서도 더 부정과 비리를 더 저지른 자, 그리고 독도밀약을 맺은 자, 나쁜 놈이며, 전두환과 같은 군부가 다시 등장할 배경을 제공한 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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