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싼 진리와 어쩔 수 없는 기대

때로 너무 명료하지만 그 밝음 때문에 진실이나 진리가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다.

죽어가는 시간 속에서 삶을 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이 명료한 문장은 어쩐지 문장의 문법 구조 어디엔가 시간과 삶의 결구가 어긋나 있을 것이 틀림없을 것이라는 의혹을 자아내게 한다.

반면…

어째서 행복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라는 이 문장을 읽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20110811에 씀

그 후의 생각과 배경…

1. 처음에 인용 글의 명료함을

끝나지 않는 무한한 시간 속에서 그날 그날의 삶이란 과연 의미가 있을까?(life/∞=)

라는 질문과 비교한다면,

오히려 유한성 때문에 삶은 의미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2. 두번째 글은

소련의 시인 오시프 에밀례비치 만델슈탐(1891~1938)은 스탈린을 조롱하는 시를 썼다는 이유로 추방형을 당하고 유형생활을 하게 됩니다. 만델슈탐의 언어와 기억(즉 그의 詩)을 지키기 위하여 유형지에 따라 나선 아내 나제쥬다는 너무 힘들어서 만델슈탐에게 함께 자살하자고 말하곤 합니다.

만델슈탐은 어느 날 아내 나제쥬다에게 말합니다.

“어째서 행복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단지 에덴의 바깥을 서성이고 있을 뿐이며, 행복은 단지 바람직한 꿈일 뿐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환기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만델슈탐이 말한 행복의 반댓말은 불행이 아니라 고통이라는 사실이 제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20110815 아침에…

13 thoughts on “값싼 진리와 어쩔 수 없는 기대

  1. 흠.. 죽지 않았다면 아직 살아있는 것이기에 최소한 살아있다는 의미는 있을 수 있겠고
    행복한 것은 좋은것이기에 지향하는 것이라고
    심한 단순함을 지향하는 저는 생각합니다. ^^;;

    1. 저 글들을 문학적 수사나 체험에서 채집해온 것이다보니 우리들이 생각하는 의미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2. 음….
    그냥…
    살아 있으니, 여기 있으니 삶을 이어가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삶이나 죽음 시간이라는 개념이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라면…..
    죽어가는 시간이라는 말도 어쩌면….우리가 만들어낸 관념이 아닐지……

    1. 그런 것이 아마도 형이상학의 한계이겠지요. 토틀로지이거나 아니면 죽음이나 신과 같은 것이 기표 만 있고 기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이야기한다는 것이 무용하거나 혼란을 초래할 뿐 이지요.
      하지만 죽음을 이야기하기 위한 죽음은 무의미하지만 삶을 탐구하기 위한 죽음은 철학적이거나 문학적이거나 어느 한계 내에서 필요한 도구일수도 있겠지요.

  3. 두번째 글귀의 배경을 찬찬히 읽어보니 만델슈탐의 자신의 신념에 대한 확고함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론 내 머리가 굳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첫번째 글귀에 대해선 죽음이란 삶을 살아가는 최소한의 동기 부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 만델슈탐의 글을 보면서 제가 얼마나 안이하게 살아왔던가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 글은 어느 학자가 시와 예술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하는 이 상업적 세계에 대하여 그럼 삶이란 어떤 의미가 있느냐고 묻는 수사학적 질문입니다.

      그런데 실존을 넘어서 그만 형이상학적으로 변질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생명이란 늘 치명적이기 때문에 더욱 조심하면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4. 저도 밑에 문장을 읽으니 마음이 움직이는것 같아요 결론적으로는 삶에 대한 긍정이기 때문인지 밑에 달아주신 이야기속에 나온 말이라니 좀 코끝이 시큰합니다

    1. 우리는 늘 자신이 직면한 현실을 외면하려고 하는데, 만델슈탐은 직시해야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놀라왔습니다.

  5. 한번쯤 생각해 봤음, 직한 그러나 아직, 적절한
    설명을 하지 못하는 질문들, 이라는 물음,
    이 드는 문장들.

    1.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논리로 풀어내려다 보니… 하지만 틀렸던지 맞았던지 뚜렷하게 복종하게 만드는 말도 있겠지요. 그것이 철학과 문학의 차이가 아닐른지…?

  6. 제가 부정적이거나 조금이라도 괴로운 마음이 든다 싶으면,
    그것들을 외면해버리는 특성이 있거든요.
    모든게 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하니,
    제 마음이 문제라는 생각에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일어나기라도 한 것처럼요.
    그래서 그런 마음들을 외면해 버리는거예요. 없어야 할 일이니까요.
    그런데 최근에는 그런 고통들을 외면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수용이기 때문에, 그 수용이 아이러니 하게도 행복일 수 있겠다 싶구요.

    만델슈탐이란 사람이 궁금해 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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