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째려보며

취음선생의 對酒

“달팽이의 왼쪽 뿔 위에 촉씨(觸氏)라는 나라가 있고, 오른쪽 뿔 위에는 만씨(巒氏)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영토 싸움을 벌였는데 죽은 자가 수만이고, 달아나는 자를 추격하기를 보름이나 한 적도 있다 합니다.”

달팽이 더듬이 위의 전쟁(蝸牛角上之爭) 이야기는 장자 칙양(則陽)편에 나온다. 위 혜왕이 제 위왕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려 하자 한 현인이 위 혜왕에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장자의 우화는 장대하고 호방한 탓에 달팽이 더듬이의 두나라 간의 싸움에 너털웃음이라도 지을 수 있지만, 백락천의 詩, 對酒(술을 째려보며)에 나오는 구절에서 느끼는 심사는 다르다.

이 시를 쓸 당시 그는 시와 술과 거문고를 삼우(三友)로 삼아 ‘취음선생’이란 호를 쓰며 유유자적하는 나날을 보냈다고 하나, “입 크게 벌려 웃지 아니한다면 이 또한 바보가 아니겠오?”라는 반문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알지 못할 그의 시름이다.

     蝸牛角上爭何事     달팽이 더듬이 위에서 무엇 때문에 그리 싸우는게요?
     石火光中寄此身     부싯불 반짝하는 동안 이 몸뚱이를 세상에 걸쳐놓았은 즉
     隨富隨貧且歡樂     돈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기뻐하고 즐기노니
     不開口笑是癡人     입 크게 벌려 웃지 아니한다면 이 또한 바보가 아니겠오?

예전에는 장자의 이야기를 읽으면 천지가 크고 하해가 넓어 세상 사람들이 우물 안 개구리같다는 생각에 웃음을 지을 수 있었으나, 요즘 장자를 읽으면 나의 사소함이 서글프다.

하지만 나의 사소함으로 감당하는 천지와 광음과 청풍과 명월은 무진장이라…

This Post Has 4 Comments

  1. 흰돌고래

    어, 저 오늘 학원에서 가르치는 아이에게 ‘어린이가 읽는 장자이야기’책을 선물로 줬는데 ^^

    1. 旅인

      장자는 재미도 있으니 아이도 좋아할 겁니다.

  2. 원영­­

    취음선생이라는 호가 참 탐이 나기도 하고, 샘도 나고 그렇습니다.
    점점 줄어들려는 어깨는 운동을 해서 억지로 넓히기라도 하는데, 요즘 자꾸만 왜소해지는 느낌이 들어 영 찜찜합니다. 세월이 흐르면 바다에 드러누울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그것도 꽤나 큰 착각이었나 싶어지기도 하고요.

    1. 旅인

      저는 醉자만 나오면 속부터 쓰리니…
      왜소해지는 느낌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어린 시절에 하늘을 날고 바다를 걸어건널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을 갖지 못하고 지금처럼 좁고 답답한 생각만 했다면, 이 재미없는 세상을 여태 살아오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착각 또한 꽤 그럴 듯한 효용은 있습니다.

원영­­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