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에 대한 생각-5

원순씨가 돌아가셨다. 자살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의 부음이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겹쳐지면서 “왜 그렇게 돌아가신 것일까”하고 물어보지만, 죽음의 이유는 그저 아득할 뿐이다.

의문에 대한 답 대신 “지도층에게는 죄를 묻지 말고, 서민은 반드시 품위를 챙길 필요없다”(刑不上大夫 禮不下庶人 : 禮記 曲禮)는 말이 떠올랐다.

맹자는 “지도자가 의롭지 못하고, 아래 것들은 죄를 마구 저지르고 있는데, 나라가 망하지 않았다면 이상한 일이다”(君子犯義 小人犯刑 國之所存者幸也 : 離婁上)고 말한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이나 박원순 시장의 죽음은 지도층에게 죄를 묻지 말라(刑不上大夫)는 것 같기 때문이다.

공자는 제자 염유(冉有)에게 “… 대죄를 지었을 때도 임금이 형벌로 그를 죽이지 않는다. 본인이 북쪽을 향하여 두 번 절하고 꿇어 앉아서 자결하여야 한다”(공자가어 중)고 한다.

죄를 묻지 않는다는 것은 이토록 무서운 것이다. 의롭지 못하고 수치스럽다면, 배를 가르고 죽는 것이 지도자라는 것이다.

그들의 죽음을 어찌 ‘논두렁 시계’나 ‘성 추행’ 따위로 능멸할 수 있겠는가.

xxiii-xmmxix 집으로

숙소 근처를 배회하다가, 일찍 숙소에서 나왔다. 숙소인 테르미니역 부근에는 흑인이 많다. 부랑자들도 많다. 몇년전만 해도 로마 시내에서 흑인을 보기가 어려웠는데, 갑자기 흑인들이 늘었다고 한다.

아프리카 난민들은 리비아나 튀니지에서 배를 타고 몰타, 시칠리아를 건너 이탈리아 반도에 도착한다. 난민들에게는 영 불 독 세 나라가 풍요롭고, 난민에게 포용적이라는 점 외에도, 자신들의 출신지가 이들의 식민지였던 탓에 언어소통 면에서도 유리하다. 그래서 이탈리아에 정착하지 않고, 국경선을 접한 프랑스와 독일 혹은 멀리 영국으로 서식지를 옮겨갔을 것이다. 하지만 난민 봉쇄로 국경을 넘을 수 없게 된 난민들이 이탈리아에 머물게 되면서 흑인 숫자가 비약적으로 늘어난 것이 아닌가 싶다.

테르미니역에서 피우미치노(레오나르도 다빈치) 공항으로 가는 승강장을 잘못 알아, 열차를 두대를 놓쳤다. 숙소에서 여유있게 나온 것이 다행이다.

공항행 특급열차는 느릿느릿 완행이다.

피우미치노 공항에 당도하니, 출국검색대와 출경세관 앞이 장사진이다. 시간이 지체되자 일부 승객들은 이러다 비행기를 놓치는 것이 아닌가 초조해 하기도 했다. 나도 간신히 세관을 지나고, 헐레벌떡 게이트에 당도하자 이미 게이트를 열고 탑승을 시작했다.

이탈리아는 어쩐지 시스템이 엉성하다. 그래서 이탈리아 사람들이 시끄러운 것 같다. 가만히 있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황은 생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불안하다. 물어보아야 한다. 그러면 옆 사람은 나도 잘 모른다고 한다. 그러다가 친해져서 함께 황당함을 감당하거나 아니면 이게 무슨 일이냐 따져야 하고, 때때로 하소연도 해야 한다. 그래서 좀 시끄러울 뿐이다. 그들의 말을 모르는 나는 하소연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탈리아는 매력적이다. 그들의 강렬한 태양만큼, 낡은 유적과 유적 옆에 자라나는 로마 소나무처럼, 충분히.

떠나올 때 비행기는 쫓아오는 밤을 피해 서쪽으로 서쪽으로 날았다. 이제 비행기는 다가오는 밤의 방향으로 파공음을 내며 날았다. 밤과 비행기가 충돌하기라도 한 듯 밤은 금새 왔다. 밤이 오자 비행기는 기수를 새벽이 오는 방향으로 돌렸다. 좁은 시트에 앉아서 밤을 보내기에 삭신이 예전처럼 튼튼하지 못한가 보다. 혼절하듯 자고 깨며 비행기가 동쪽으로 가는 기척을 느꼈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었다.

아침에 홍콩에 도착. 두 시간 쯤 지나 갈아 탈 비행기가 대기할 게이트로 갔다. 게이트가 열릴 시간이 되자, 레디스 젠틀맨, 몇번 항공기는 정비 문제로 출항이 안된다는 방송이 떴다. 새로운 비행기가 두세시간 후에 투입된다고 한다. 새 비행기가 투입되는 게이트는 멀어서 공항 내의 열차를 타야 당도했다.

결국 오후 한 두시경에 인천에 도착할 나의 여행은 오후 네시까지 늘어졌고, 들들들 짐을 끌고 집에 당도하니 저녁이었다.

저녁을 먹고 한 이틀인가 눕거나 잤다.

몸을 추스리자, 여행을 다녀왔던 일이 아득했다.

“여행을 해서 무엇하겠는가? 산을 넘으면 또 산이요 들을 지나면 또 들이요 사막을 건너면 또 사막이다. 결국 절대로 끝이 없을 터이고 나는 끝내 나의 둘시네를 찾지 못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 말했듯이 이 짤막한 공간 속에 긴 희망을 가두어 두자.”1장 그르니에의 ‘섬’ 중 175쪽

20191023~24